완도신문 하면 아무래도 정치기사 신문이라는 색깔이 짙다. 그래서 여자들은 잘 보지 않는 게 사실이다. 솔직히 나도 거의 읽지 않는다. 신문이라 하면 다양한 정보와 지식을 쌓기 위한 도구임에 틀림없다. 이런 부분이 좀 아쉽다.정치에 대한 견제와 채찍을 엄하게 다룬 부분은 충분히 인정하나, 그 외에 부분은 너무 미흡한 것 같다. 여성들도 신문을 관심 있게 볼 수 있도록 교육이나 건강등 생활적인 다양한 정보 부분도 매주 다뤄 줬으면 좋겠다.또, 우리 같은 주부들은 일주일 내내 읍내 에서만 지낸다. 때문에 주말이면 어디든 다녀오고 싶어진다
나는 7년 전에 인도네시아에서 완도에 와 살고 있다. 현재는 다문화 가족모임에서 인도네시아어 통역 일을 하고 있다. 그런데 나의 절박한 바람이 몇 가지 있다. 다문화 가정 대부분의 생활이 많이 힘들다. 다문화 여성을 위한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 주면 참 좋겠다.또, 일자리뿐만이 아니라 사회적 편견 때문에도 더 많은 고통을 받고 있는데, 다문화 가정 속사정을 완도신문이 지속적으로 관심 있게 다뤄졌으면 좋겠다.우리가 하소연하고 의지할 곳은 한정 돼 있어서,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어려움들이 너무나 많다.완도신문이 그 통로가 되어 주면 우리
과거 평교사 시절 완도에서 근무하다 타 지역으로 옮겨가 있다 지난 3월1일자로 다시 고향으로 왔다. 이제 정년이 4년 정도 남아 있으니 별 무리 없으면 이곳 완도고 에서 교육자로써 정년을 맞이할 것 같다.개인적으로 참 다행이고 운이 좋다고 생각한다. 평생 교육자로써 한 길을 걸어오며 수많은 제자, 학부모, 관계자들과 만나면서 많은 경험과 경륜을 내 고향 완도를 위해서 힘쓸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어 정말 뿌듯하다.부임한 지 이제 막 반년을 넘기고 있다. 마음과 달리 여러 문제에 부딪치게 된다. 그러나 이제 시작이다. 지역 인문계 고
“완도 변환소와 고압송전탑 문제”로 완도신문 지면에 저의 얼굴이 실리게 되었습니다. 완도지역의 주민들의 관심이 많은 사안이었습니다. 아직도 확실한 결론이 나지 않은 일이어서 많은 분들로부터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질문을 받곤 합니다.완도 주민의 건강권과 알권리, 행복추구권, 재산권 지키기 위해 주민들과 반대 대책위를 만들어 활동을 하였습니다. 미진한 반대 대책위 활동이었지만 주민들 스스로 반대 서명운동에 참여하시고, 사업 추진의 부당성도 적극 홍보 하시면서 주민들의 의식이 깨어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그리고 완도신문에서 주관하는
완도신문으로부터의 느닷없이 날라든 후기를 쓰라는 메시지 하나가 이제는 어떤 기대조차 하지 않아서 그저 고요하게 침잠해 가는 마음을 뒤흔들었다.가리포진에서 만들어 임진왜란 중에 사용되었고, 그 때 일본 사람들이 조선 사람들은 서까래를 뽑아서 화살로 쏜다고 했던 대장군전을 작년 말에 원형에 충실하게 복원 했었다. 그런데 그 사실이 완도신문에 보도 되어서 몇몇 사람은 관심을 가지고 보러 오는 경우도 있었고, 완도군에서도 문화재 계장이 무슨 생각으로 찾아 온지는 모르겠지만 한번 보고, 사진 두어 장 찍고 말았다. 그 후로는 잊히고 말아서
공직을 떠난 지 벌써 9개월이란 시간이 흘렀습니다.지난 공직 생활을 되돌아보고 자신을 성찰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나름대로 치열하게 살아온 공직생활이었지만 부끄럽고 아쉬움도 많은 세월이었습니다.공직생활을 마무리 할 무렵 완도신문에서 많은 지면을 할애하여 저의 공직 생활을 과분하게 재조명해주어 주변으로부터 과분한 격려와 칭찬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저의 진정성이 왜곡될 수 있어 굳이 인터뷰를 사양했었으나 저의 조그마한 희생과 헌신들이 지나치게 부각된 것 같아 민망하고 부끄러웠습니다.이 지면을 통해 완도신문에 감사드립니다.앞으
나이 들어가면 유년의 기억들은 사소한 것들조차도 소중하고 그립기만 하다. 부족했지만 부족함이 불행한 것인지 불편한 것인지도 모르고 계산하지도 따지지도 않았던 어린시절이 사무치게 절실하다.그런데, 추석이 다가오면 더 그렇다.완도초교 63회 친구들에게 유년시절의 이야기를 들어봤다.최정주 친구는 "노래방에 갈 때마다 첫 곡은 항상 나훈아의 ‘홍시’를 부른다. 그때야말로 청승맞지 않게 맘껏 엄마를 생각하고 또, 어린시절의 추억에 젖을 수 있다"고 했다.추석이 오면, 그때나 지금이나 정 많은 우리 민족은 마음 전하는 작은 선물에 인색하지
그 누가 소멸하는 것들의 목덜미를 번개처럼 나꿔 채 그것을 형상이라는 선명의 제단 위에 머물게 할 수 있을까! 화폭에 닿는 순간, 지속하는 소멸적 계기와 스러져 가는 재귀적 계기를 밝혀주는 이 비밀스럽고 신령한 힘을 무엇이라 할 수 있을까?보는 순간, 살아서 꿈틀꿈틀거리는 이 추동하는 에너지를 우리는 무엇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이 우주를 탄생시킨 쉼없는 생명력으로 매순간 번쩍이는 섬광을 만나는 사람, 화가 김종숙.이제 갓 서른을 넘긴 새색시처럼 보였으나, 1969년생이라고 했다. 청산면 동촌리가 고향이고 남편과 함께 슬하엔 아들 둘
첫날밤.수작을 부리는 그에게 말했다."여자의 마음은 좋아하는 남자를 따르는 게 미덕이지만, 아직 결혼도 안한 상태라 제 마음은 몹시도 혼란스러워요. 남자는 사랑하는 여자를 지켜줄 때가 가장 빛이 나지 않을까요?"그 말에 그는 당신이 맞다며 아무런 말없이 꼭 안아주면서 "그래, 그럽시다"그게 결혼을 결심하게 된 이유였다. 여자의 말을 따라주는 이런 남자라면 한 평생을 걸만 했다.그렇게 시작된 인연. 전화와 편지가 연일 이어지면서 지금 생각해보면 젊은 연인의 연애질에 우체부 아저씨의 고생이 참 많았을 것이다.우리의 사랑은 더욱
투명한 가을날에는 아무 말이 없어도 즐겁다. 맑은 가을꽃과 말이 없어도 행복하다. 꽃과 열매가 하나가 되는 날에는 보는 것으로만 풍요롭다. 사랑하는 일도 보이지 않는 곳에 있나니 그냥 말이 없어도 충만하다. 마른 꽃처럼 흔드는 억새꽃이 가냘픈 바람으로 흔들어 놓아도 그들은 모두 하나 되어 춤을 춘다.스산한 가을바람이 쓸쓸하다. 억새꽃이 석양 햇살을 모조리 모아 둔 곳. 쓸쓸히 저물어가는 가을날의 아쉬움만 더해간다. 이맘때 피는 가을꽃 중에서 키가 작은 꽃은 자주쓴풀은 주로 나무가 없는 산등성에서 부드럽게 지나가는 바람에도 가장 맑은
1. 결혼이야기가 보도된 후 심정은?누구에게나 소중히 기억되는 추억이 있을거라 생각됩니다. 별 특별할 것도 없는 우리부부 이야기가 소개되서 많이 부끄러웠습니다. 아무도 모르는 추억의 보물상자를 둘이서만 열어보는 재미, 가끔 옛이야기로 옥신각신 티격태격 아직까지도 서로의 속마음을 들키지 않으려는 재미가 다소 작아진 듯 해서 아쉽기도 하네요.2. 배우자의 최대 장점은? 가족애가 강하고 효심이 깊은 사람입니다. 아이들과 소통이 잘 되는 친구같은 아빠 모습도 장점인 것 같습니다.3. 사랑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사랑의 종류가 다양하겠지만
완도신문에 대서특필 될줄은 생각지도 못했습니다.완도신문을 본 동료들과 지역민들은 의외라는 반응과 잘보았다는 격려의 말씀들이었습니다. 복도를 걷다 지나치는 직원들이 “과장님! 완도신문과 엄청 친해졌네요”라고 웃으며 말했고 평소 친분이 있던 지역의 몇몇 선배들은 그동안 서로 소원했던 관계를 회복하는 계기가 되었다며 아주 잘했다는 격려의 말씀을 많이 해주셨습니다.식당이나 음식점에서 만난 군민들도 신문 잘보았다는 말씀을 건네오셨습니다. 완도신문의 영향력을 확인 할 수있었고 개인적으로 뿌듯한 시간들이었습니다. 관광정책과장으로 재임하면서 완도
자유한국당 이기환(61) 의원은 지난 6·13 지방선거에서 안산시 의원(바 선거구)으로 당선됐다. 이 의원은 제 5대 시의원을 한차례 당선된 바 있으며, 이번이 두 번째 시의원 당선이다.이 의원은 8년 만에 복귀에 대해 “의원 배지를 처음 달았던 각오를 잊지 않으려고 초선의원과 같은 마음가짐으로 의정활동에 임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매 순간이 새롭다. 의회를 떠나 있던 기간 동안 넓어진 시야와 폭넓게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시민들에게 봉사할 기회가 주어졌다는 게 감사할 따름이다. 의정활동의 열매를 시민들에게 돌려드린다는 심정으로 의원
더불어민주당 최영주 의원은 지난 6·13 지방선거에서 서울특별시의회 의원(강남구 제3선거구)으로 당선됐다.최 의원은 그동안 1987년 고향 완도를 떠나 강남구에서 지역주민과 정치인들과 함께 오랫동안 지역 활동을 하면서 강남의 변화와 개혁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다. 그러나 승리가 어려운 강남지역임에도 불구하고 2010년 지방선거 기초의원 후보로 출마하여 1위로 당선돼 민주당 최초 강남구의회 부의장을 역임했다.또한 더불어 민주당 강남을 지역 위원회 지역위원회 사무국장, 인재영입 위원장을 역임하였고, 2018.6.13 지방선거 광역의원
더불어민주당 정정희 의원(54)은 지난 6·13 지방선거에서 서울 강서구 의원으로 당선돼 지난 2014년 비례대표 구의원으로 강서구 의회에 입성한 후 비례대표 출신 최초로 구의원에 재선됐다.강서구에서 최초로 ‘소녀상 건립’ 운동을 시작해 좋은 호응을 받아 많은 사람들의 동참을 이끌었고, 롯데시네마 관계자들을 만나 ‘엄마랑 아기랑’ 주변 눈치 보지 않고 마음 편히 영화 볼 수 있는 공간과 시간을 갖을 수 있도록 했다. 또, 그 누구도 손대지 않던 7평짜리 ‘강서구 수화통역센터’를 널찍한 곳으로 이전시키는데 앞장서기도 했다. 비례대표
금당면 출신인 더불어민주당 송미희 의원(51)은 지난 6·13 지방선거에서 경기도 시흥시 의원(나 선거구)으로 당선됐다.송 의원이 정치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한 언론 인터뷰 내용를 확인해 보면 참 재미있기도 하고, 그 시절 추억을 되새겨 준다.“저는 완도군에 있는 금당도라는 작은 섬마을 출신이에요. 고등학교 졸업 무렵 두 곳에서 취업문의가 들어왔어요. 국회의원 비서직과 은행 직원. 벽촌에서 살던 저는 서울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있었기에 무조건 국회의원 비서직을 선택했어요. 국회는 서울 여의도에 있으니 국회의원 비서가 되면 어쨌든 서
완도읍 출신인 더불어민주당 김윤호 의원(47)은 지난 6·13 지방선거에서 광명시의회 의원(다 선거구)으로 당선됐다.김 의원은 당시 언론을 통해 “소명감으로 시작한 정치 초심을 끝까지 지키는 일등 일꾼이 되겠다”며 당선 소감을 전했다.또한 “부정부패 없는 투명한 삶 불의에 굴하지 않는 정의로운 삶 포용과 겸손으로 시민을 가족처럼 섬기는 삶을 실천할 것이며 훌륭한 선장은 거친 바다가 만들 듯 4년의 의정활동 바다에 새로운 항해를 위한 원칙과 공정 소통의 깃발을 들고 힘찬 출항을 시작할 것이다”고 의정활동에 대한 포부를 밝혔으며, 현재
더불어민주당 이강숙 의원은 지난 6·13 지방선거에서 서울 동대문구(다 선거구)에서 당선됐다.이 의원이 정치를 하게 된 계기는 80년대 초반 공직에 근무하는 남편과 결혼 후 서울에 상경하게 됐는데 현재 국회 국방위원장 동대문 갑 국회의원 안규백 위원장을 만나게 되어 정당 활동을 시작한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릴 적부터 어려움에 처한 친구나 이웃을 그냥 지나치지 못했던 강한 의협심이 지금까지도 제안에서 제가 누군가의 도구가 되어 씌여지길 원하지 않았나 싶다고 회고하는 이 의원.그가 생각하는 정치는 “누군가에게 힘이 되어 줄 수
이홍일 시의원은 광주 동구 제 1선거구의 더불어민주당 출신이다.현 소속위원회에서는 의회운영, 교육문화, 세계수영선수권대회지원 특별역을 맡고 있다.한국방송통신대학교 행정학과와 광주대학교 행정학과 졸업했다.제4대 광주북구의회 의원으로 전) 노무현대통령후보 지원 연설원이었고, 전) 문재인대통령후보 광주시 공동선대위 부위원장, 전) 더불어민주당 중앙당 부대변인, 현) 누리문화재단 운영위원, 광주광역시 장애인 테니스협회 부회장을 맡고 있다.현) 불교환경연대 후원회원과 대한적십자사 후원회원, 노동실업광주센터 후원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현)
더불어민주당 이제남 의원(65)은 지난 6·13 지방선거 경기 용인시(가 선거구) 의원으로 당선된 재선의원이다. ‘용인의 슈바이처’라 불리기도 한데 용인서울병원 이사장으로 지역사회의 어려운 이웃을 위해 꾸준한 선행을 실천해 왔기 때문이다.고액기부자 모임인 ‘아너 소사이어티’ 회원으로 가입한 이 의원은 2014년 지방선거 당시 자신이 시의원으로 당선되면 의정활동비를 기부하겠다고 한 약속에 따라 매월 330만원씩 경기공동모금회에 기부해 왔다. 이 의원은 “의정비를 기탁함으로써 시민들의 자녀들이 학업을 하는데 있어 도움이 됐으면 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