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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움켜 잡을만큼 강한 생명력

[완도의 자생 식물] 65. 자주쓴풀

  • 신복남 기자 sbbn2000@hanmail.net
  • 입력 2018.10.12 15:25
  • 수정 2018.10.12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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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한 가을날에는 아무 말이 없어도 즐겁다. 맑은 가을꽃과 말이 없어도 행복하다. 꽃과 열매가 하나가 되는 날에는 보는 것으로만 풍요롭다. 사랑하는 일도 보이지 않는 곳에 있나니 그냥 말이 없어도 충만하다. 마른 꽃처럼 흔드는 억새꽃이 가냘픈 바람으로 흔들어 놓아도 그들은 모두 하나 되어 춤을 춘다.

스산한 가을바람이 쓸쓸하다. 억새꽃이 석양 햇살을 모조리 모아 둔 곳. 쓸쓸히 저물어가는 가을날의 아쉬움만 더해간다. 이맘때 피는 가을꽃 중에서 키가 작은 꽃은 자주쓴풀은 주로 나무가 없는 산등성에서 부드럽게 지나가는 바람에도 가장 맑은 눈물로 꽃이 피어 있다. 단 한 번의 풍경으로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그러기에 너무 아름다운 풍경이 되고 만다. 봄부터 수많은 꽃은 피고 지지만 가을에 가을꽃을 보면 하늘에서도 피는 것과 같이 가장 깨끗하게 피는 꽃이 자주쓴풀이다.

가을 하늘 아래 가장 귀엽게 핀 야생화는 이질풀과 자주쓴풀이다. 이질풀은 빨갛게 피고 자주쓴풀은 연한 자주색을 띤다. 그리고 이질풀은 논두렁과 밭에서 많이 피지만 자주쓴풀은 산에서 많이 자란다. 자주쓴풀은 전국에 걸쳐 산기슭 양지바른 곳에서 주로 자라며, 용담과에 속하는 두해살이식물로 키는 15~30cm 정도다.

뿌리의 쓴맛은 용의 쓸개처럼 쓰다고 하는데 용담보다도 10배 정도 강하다고 한다. 줄기는 네모가 졌고 윗부분에서 가지를 친다. 가을에 가지 끝이나 잎겨드랑이에서 꽃대가 나와 피는 꽃은 위에서부터 밑으로 내려오면서 핀다. 짙은 색의 맥이 있는 다섯 장의 자주색꽃잎과 흑자색의 꽃밥이 달린 수술이 균형을 이루고 있어 조형미를 더한다. 수분생물을 유혹하는 두 개의 꿀샘은 보푸라기 같은 털로 싸여 있다. 한방에서는 쓴맛을 지닌 풀 전체를 식욕촉진, 설사 등 약재로 쓴다고 한다. 홀로 가을 길을 가는 사람들에게 지독한 그리움을 토해 내 용담꽃보다 쓴맛을 열 배나 간직한 자주쓴풀은 끊임없이 내면을 창조해 나가는 것이다. 겉은 가느다란 바람에도 흔들리지만 속은 하늘을 움켜잡아 놓을 만큼 강인한 생명력이다.

여름 내내 담벼락에서 능소화가 필 때도 아름답지만 질 때도 아름답다. 이에 반해 산에 꽃들은 그렇게 화려하지 않지만 수수하다. 바람이 산등성이를 넘어가는 풍경을 꽃잎에서 볼 수 있다. 때 묻지 않은 산에 꽃들은 자연의 속사정을 그대로 보여준다. 마른 풀잎에 간신히 달린 자주쓴풀꽃은 지난 세월을 아쉬워할 것도 없이 현재 살아 있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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