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설레게 좋았던 옛날 추석엔

[추석 특집]완도초교 63회의 유년시절 이야기

  • 손순옥 기자 ssok42@hanmail.net
  • 입력 2018.10.12 15:43
  • 수정 2018.10.12 15:54
  • 글씨크기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나이 들어가면 유년의 기억들은 사소한 것들조차도 소중하고 그립기만 하다. 부족했지만 부족함이 불행한 것인지 불편한 것인지도 모르고 계산하지도 따지지도 않았던 어린시절이 사무치게 절실하다.

그런데, 추석이 다가오면 더 그렇다.
완도초교 63회 친구들에게 유년시절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최정주 친구는 "노래방에 갈 때마다 첫 곡은 항상 나훈아의 ‘홍시’를 부른다. 그때야말로 청승맞지 않게 맘껏 엄마를 생각하고 또, 어린시절의 추억에 젖을 수 있다"고 했다.

추석이 오면, 그때나 지금이나 정 많은 우리 민족은 마음 전하는 작은 선물에 인색하지 않았다. 대개 일주일 전부터 발품 팔아 달걀 한꾸러미, 삼양설탕,청자담배, 양말, 소주 됫병 등을 돌리느라 덩달아 아이들도 바빴다.

아이들은 하기 싫은 심부름을 다니느라 입이 댓발은 나오곤 했다.

경자라는 친구는 집안이 넉넉하지 않아 추석이면 어린 마음에도 ‘우리 집은 이번 추석에 떡이나 송편을 할까 안할까’가 무척 궁금했단다. 지금에야 어느 집이건 간에 떡과 송편을 안하는 거지 못한 집은 거의 없으니 말이다.

그 시절엔 밤새 탱탱 불린 쌀을 대야에 이고 혹은 리어카에 싣고 새벽 댓바람부터 줄을 서야 떡을 할 수 있었다.

그나마 방앗간에서 줄 설 수 있는 것 또한 그나마 있는(?)사람들의 은근한 척도였을 만큼 참 어려웠던 시절이었다. 평소에는 거의 하지 않으면서 마치 명절에는 꼭 해야만 하는 절차 같은 목욕,이발, 추석 빔 같은 것들‥이런 모든 기억들이 우리를 행복하게 한다.

우린 왜 이리도 그 시절이 그리운 걸까? 복잡한 세상, 버거운 삶으로부터 벗어나 잠시나마 그 지점으로 돌아가 아무 생각 없이 쉬고 싶은 마음일지 모른다. 지금도 여전히 완도에 살고 있는 영희는 "일 년에 한 번 유일하게 새 옷을 얻어 입을 수 있는 기회"라고 추석 한 보름 전부터 엄마 심부름을 군소리 없이 했단다.

읍내에 몇 안 되는 옷가게에 진열해 놓은 옷을, 요즘말로 ‘찜’해 놓고 열심히 엄마한테 칭찬 받을 일만 했었단다.

옛날에는 다 앉은뱅이 책상이라 오래 앉아 있으면 금새 다리가 저려오지만 근거도 없는 침을 코 끝에 묻혀 가며 엄마가 확인할 때까지 책상에 앉아 있었단다. 얼마나 새 옷이 입고 싶었었는지 요즘시대엔 상상도 못할 일.

추석에는 노는 놀이도 남달랐다.
좁은 읍내였지만 여기에서도 동네마다 노는 놀이가 갈렸다.
공회당(요즘말로 하자면 회관)이나 군청 근처, 넓은 방앗간 뜰이나 대체로 여럿이서 같이 할 수 있는 넓은 장소를 끼고 살았던 친구들은 강강수월래와 꼬리잡기 놀이를 했었다고.
그런데 넓은 장소 보다는 바다가 앞마당처럼 가까이 있는 석장리 친구들은 휘영청 보름달이 중천까지 떠 오길 기다렸다가 작은배 띠어놓고 노를 저으며 놀았다고 했다.

상상만 해도 설레게 좋았을 것 같다.
지금에야 낭만이라는 표현을 할 수 있지만 그땐 낭만인지 뭔지도 모르고 그저 친구랑 무얼 하고 놀든 지간에 같이 있는 것 자체가 즐겁기만 했었다.

해지고 컴컴해질 때까지 놀다가 저녁 먹으라는 엄마 고래 소리에 저녁밥 먹고, 또 슬그머니 나갈 핑계 찾고 있을 때 쯤, “누구야 노~올~ 자~!” 신호에 잽싸게 뛰쳐나가는 뒷통수에서 엄마 소리가 들린다. “눈에 불썻냐?(켰냐) 이 썩을놈의 새끼야~”
그 시절엔 엄마들 욕(꾸지람)의 농도가 상당했었는데 그땐 심한지 몰랐다.
엄마들이 즐겨 하던 욕이 갑자기 생각난다.
군산에서 살고 있는 이불집을 하셨던 현숙이 엄마는 “칵 신어(신발로 밟아 분다) 분다~잉! ”
부끄럽지만 우리 엄마는“이 쌔빠질 년아~” 또 다른 엄마는 “이 염병할 놈의 새끼 참말로 어짜까 ~잉”
요즘 사람들이 들으면 기겁할 일.

어릴 적 나는, 동네가 양 옆으로가 산인 내천꼬랑(또랑)에 살았었다. 그러다 보니 집들은 대부분 경사에 빼꼼 할 틈도 없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유달리 시장에 나가 장사 하시는 엄마들이 많았었던 동네였다.
그래서인지 저녁 무렵이면 종일 밖에서 벌이로 지쳐 들어오신 엄마들의 욕과 매타작이 시작되는 시간이다.
어느 집이건 간에 혼나는 건 무조건 맏이 몫이니 맏이가 만만했다.
참 지독하게 독한 꾸지람이었는데도 철없는 아이들은 무덤덤했다.
저녁이 되면 으레 듣는 소리다 보니 한 귀로 흘려버린 내공이 생겼었는지 모른다.
이제는 그런 욕조차도 그리우니 세월이 참 유수처럼 흘렀다.

지나간 옛것들이 그립고 그립기만 하는 추억속의 한 페이지 추석이다. 소중한 가족 친지 친구들과 행복한 추억을 쌓아보자!
먼 훗날을 위하여~!

저작권자 © 완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