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국제해운문학상 대상 수상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한 이후로 언어의 곡진함과 세계를 바라보는 진실함으로 독자들을 시적 사유의 장으로 이끄는 힘을 지니고 있다는 평가를 받아온 청산도 출신 유은희 시인이 이번에는 디카시집을 펴냈다. 시집 떠난 것들의 등에서 저녁은 온다에서도 “사물과 사람이 자연스럽게 넘나들며 치환되는 신화적 상상력”으로 “무르고 허물어지는 인간의 마지막 자존을 따뜻한 시선”으로 열어온 시인이 이번에는 디카시를 통해 그의 감성과 사유를 펼쳐 보인다. 시인은 평소 시적 장면을 만날 때면 지나치지 않고 사진에 담아오며
″낼 오전 10시에 만납시다. 잉~″″뚝″감기 때문에 고생하고 있다는 은영이 엄마한테 만나자는 전화가 간단명료하게 왔다. 다음날 늦여름 비가 장대비처럼 쏟아지는데 아침 일찍 또 전화가 왔다. ″오늘 진도로 물질을 가사쓴께 아침 먹고 바로 만납시다″″뚝″″감기로 병원에 왔어요, 김병곤 의원으로 오씨요.″″뚝″비가 세차게 내리는 가운데 완도읍내에선 『은영이 엄마』로 더 잘 알려진 고정임 해녀를 만나로 나섰다. 피부가 좋은 해녀분들을 많이 만났지만 유난히 백옥 같은 피부를 가진 고정임 해녀를 남편분과 함께 만났다. ″연세가 어떻게 되세요
강정(江汀) 물이 강을 이룬다. 즉 물이 아주 풍부하다는 말이다.서귀포시 강정동은 제주도에서도 물이 풍부하여 논농사를 지을 수 있는 몇 안되는 풍요로운 고장으로 예로부터 사람들의 인심이 후한 곳이다.완도읍 1부두 물양장에는 항상 문이 잠겨있는 잿빛 컨테이너가 하나 놓여 있다. 이곳이 완도읍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해녀들의 근거지이자 공동체. 이곳에서 제주 서귀포시 강정동 출신 윤순정 해녀를 만났다.″우리 누님은 집이 어디세요?″″세림 해변(아파트)인디″″아니 완도 말고 제주도요?″″서귀포 강정동이여″″예~! 진짜요?″″거그 통물아세요?
″사진이 예쁘게 나오게 머리를 좀 손질 했으면 좋겠습니다.″″내 머리는 꼽슬이라 고대끼를 너사쓴디″″???″조영자 해녀와 만남은 이렇게 시작됐다.고대끼는 미장원에서 미용사가 머리를 만져야 한다는 말이었다. 지금은 은퇴한 조영자 해녀의 삶은 기구하다면 기구하고 드라마틱하다면 정말 오뚜기 같은 삶을 살아온 삶이었다.조 해녀는 1940년 서귀포시 영흥리(오늘날의 강정동)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내가 태어난 곳은 서귀포시 영흥리로 중산간지대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바닷가도 아니었어요. 어릴 때 할아버지가 마을 구장(이장)을 하였는데 4.3사건
완도와 제주의 중간에 홀로 떨어진 완도군의 대표적인 오지이자 태고적 자연이 그대로 보전되어 전라남도 선정 『가고 싶은 섬 여서도』!이곳에서 여서도의 마지막 해녀로 살고 있는 정천심 해녀는 인생을 사는 동안의 고생을 어떻게 말로 다 할 수 있느냐며 몇 날 몇 일을 해도 다 할 수 없을만큼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고 했다. 여호산(여서도의 진산, 352m)의 푸르름이 절정에 달한 7월의 어느 날 정천심 해녀를 만났다.″여그는 뱃길이 멀고 너무 싸난께 옛날부터 들어오먼 애 배서 나간다는 데여, 우스개 소리겠지만 그렇고롬 교통이 안 좋았어.
완도군의 240여개 마을 중에서 아름다운 마을을 꼽으라면 세 손가락 안에 드는 마을이 있다.소안도의 동남쪽에 위치한 비단처럼 곱고 아름답다는 미라(美羅)마을이다. 그곳에 마을 앞바다와 서남해안을 내 집 앞처럼 드나들며 60여 성상을 물질로 살아온 김인례 해녀가 살고 있다. 몇 해 전, 은퇴한 김인례 해녀를 만나기로 하고 소안행 카페리에 올랐다. 그런데 소안에 도착하자 하늘이 뚫린 듯 장대비가 세차게 내렸다. 분명 완도읍은 맑았는데 이게 왠 조화?마침 친구가 마중을 나와 김인례 해녀가 살고 있는 미라마을로 향했다. ″오매 나 미치것네
아시아 최초의 슬로시티 청산도에 도착하여 배에서 내리면 해녀식당이 있다. 이곳이 제주도 우도 출신 상군해녀 오정열 해녀가 운영하는 청산도 맛집이다. 청산도 주변에서 나오는 해산물을 지금도 오씨가 가끔씩 잡아서 손님상에 가득 내놓기 때문이다. 제주어린이들이 다 그렇듯이 오정열 해녀 역시 초등학교 입학 전에 수영을 배워 초등학교 때는 동네 언니들을 따라다니며 미역을 따고, 소라를 잡았다고 한다.″우리가 애릴 때는 물질을 배우는게 약간 도제식이었어요. 두서너살 나이를 더 먹은 언니들이 가르켜 주면 따라하는 식이죠.″ ″저는 해녀를 할려고
앙드레 말로가 인간의 조건에서 “아무도 구하지 못하는 고뇌는 어리석은 것이다”는 명언을 남겼는데, 우리에게는 그 보다 훨씬 아름다운 말이 전한다.위선피화(爲善被禍) 오소감심(吾所甘心).단종이 숙부인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영월에서 유배 중 죽임을 당했다. 이때 수양대군이 이르기를 “만약 시체에 손을 대는 자가 있다면 삼족을 멸한다”고 엄명을 내렸다. 추상같은 엄명에 그 누구도 감히 단종의 시신을 거두는 이가 없었다. 이때 영월의 충신 엄흥도가 단종의 시신을 수습해 장사를 지내려 하자, 아들과 가족이 나서 간곡하게 만류하는데,
山紫水明(산자수명)비록 산은 높지 않더라도 세가 좋고 섬이지만 물이 좋아 예로부터 아름답기로 소문난 보길도!이곳에도 평생을 물질로 가정 경제를 꾸렸던 토착 해녀들이 있다. 지금은 은퇴를 했지만 한때 이곳에서 상군(上君) 해녀로 이름을 날리며 보길도 일대의 바다 곳곳을 누볐던 한강님 해녀를 만났다.″나는 3년 전에 물질을 그만 뒀어. 나이도 있고 보길도에서는 나 혼자 물질을 하고, 또 대전에서 살고 있는 딸이 죽어도 못하게 하는 바람에 60 평생을 함께한 바다를 그만 뒀당께.″한 해녀의 친정은 보길도의 부속 섬 예작도라고 한다.″우리
30년 동안 청산바다를 무대로 파도소리, 바람소리를 친구로 삼아 살아온 사람이 있다.군살하나 없는 몸매에 태양에 그을 린 구릿빛 얼굴을 가진 장덕호의 윤준범 선장이다.그는 지난 30년간 청산바다 이곳저곳에 해녀들을 실어 나르며 물질을 해왔다. 청산도가 고향인 윤선장은 대학을 다니다 군대에 입대하고 전역 후 아버지의 가업을 이어받아 장덕호의 선장이 됐다고 한다. ″대학 2년을 마치고 의무경찰을 지원하여 갔습니다. 전역을 하고 학교 복학기간과 맞지 않아서 집에서 아버지 일을 도와주던 중, 아버지께서 대학복학을 하지 말고 아버지를 도와
완도군에는 55개의 유인도가 있고 그 중에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을 활발히 펼친 섬이 세군데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규모가 적은 대모도(大茅島) 서리마을.그곳에 독립운동가 장석칠 선생의 집안 며느리로, 서리마을 부녀회장으로, 또 유방암을 이겨낸 해녀로 억척스런 삶을 살아가는 슈퍼우먼이 있다. 천사의 미소를 가진 제주도 구좌읍 하도리가 고향인 조정희 해녀다.완도읍과 모서리를 오가며 생활한다는 조 해녀는 읍에서 낮 배로 방금 들어왔다며 첫 인사를 건네는데 천사의 미소가 따로 없다.″일로 와, 뜨건께 션한 맥주 한잔 해.″ 얼음 맥주와 함
지난 6월 5일 당목ㆍ해동ㆍ가래경로복지센터를 방문하여 위문품 전달과 어르신들의 안부를 살폈습니다.대한적십자사 완도지구협의회(회장 김희주)에서 라면을 기증해와 약산적십자봉사회(회장 신경순) 회원들과 함께 라면과 생수를 전달했습니다.다시마 수확철이라 어르신들이 많이 계시진 않았으나 함께 공동생활을 하니 쌀을 많이 지원해 주기를 행정에 건의했습니다.
한여름 내내 따가운 태양을 등에 업고서 너만을 생각했다. 밤이면 은하수 별빛에게 간절히 기도했다. 스산한 새벽을 지나 찬란한 아침 동살에서 너를 열었고, 데코레이션 치는 서쪽하늘의 노을 속에서 너를 보냈다.너로 인해 나는 온 몸이 황금빛으로 물들었다.유자 한 개엔 무엇이 들어 있을까? 무엇이 들어 있길래, 그는 황금빛 동체의 빛나는 살결을 가졌을까?손바닥에 올려놓고 가만히 눈을 감으면 바람과 천둥과 비와 햇살과 외로운 별빛도 그 안에 스몄네. 농부의 새벽아침 발걸음까지 들려오니, 하늘과 땅과 인간이 모두 공존하는 유자엔 온우주가 담
우리지역 덕우도 해녀들이 고생하여 채취한 보기 드문 대홍합입니다. 정말 맛있어 보이네요. 덕우도는 생일도의 보물섬이죠. 이곳에 사는 어르신들은 연세가 많아 힘들어 하시지만 그래도 고향 바다를 지키는 파수꾼 역할을 하고 계시죠. 우리의 엄니, 아부지는 넓은 바다를 바라보면서 자식들의 건강과 삶을 염려하고 늘 잘 되기만을 기도하고 있답니다. 날마다 생일도 네이버 밴드에서
군 보건행정과 소속 간호공무원들이 코로나 백신 접종 현장에서 국제 간호사의 날을 맞아 손가락 하트를 보내는 모습.
완도군행복지재단에서는 지난 주 본보에 소개된 신지면 동촌리에서 오손도손 살고 있는 109살의 이월여 엄마와 90살의 김종천 아들의 이야기를 접하고, 이들을 위로하기 위해 지난 24일 동촌마을을 찾아 작지만 생활에 유용한 생필품을 전달했다고 밝혔다.
“현실을 받아들이기조차 어려울 때는 아무 말도 위로가 되지 않겠지만, 일단 주변의 도움을 받아야 그나마 견딜 수 있는 힘이 생겨요.”완도읍 당산리에 살고 있는 박모 씨는 두 아이의 엄마다.남편의 잦은 폭행으로 이혼을 하게 되었고 두 아이를 양육하는 과정에서 심한 우울증을 겪었다.삶을 놓고 싶었던 적도 많았지만 두 아이들을 생각하면 있는 힘을 다해 살아야 했다.한부모 가정으로 기초생활수급비를 지원받다 초등학교 급식 보조로 일을 하게 된 후 수급 자격이 상실되었고, 주거 또한 난방이 안 되고 마을과 떨어진 열악한 환경이다 보니 외로움과
지난주 R봉사회 전임회장 A씨는 본보의 “R봉사회 전회장 부정·비리로 회원 ’공분‘”제하의 기사에 대한 해명자료를 제출하면서 상급단체 광주전남지사 조사 자체를 인정하지 못하고, 조사과정에서 책임질 부분 있으면 처벌 받겠다고 말했고, 사과도 했다고 주장했다.그러나 R봉사회 광주전남지사협의회 회장(이하 광주전남 회장)은 “객관적 증거가 있고, 우리의 판단은 공금횡령에 가깝다고 판단했다”며 “전국적인 성금을 모은 공금으로 회장이 이런 경우는 처음이다”고 안타까워했다.R봉사회 광주전남 회장에 따르면, 7월25일자로 완도지구협의회 현 회장으
완도신문 2016년 12월2일자 “R봉사회 전회장 부정·비리로 회원 ‘공분’” 제하의 보도와 관련하여 완도신문에 반론권을 얻어 아래와 같이 해명하니 회원 여러분의 오해 없으시기 바랍니다.견적서는 본인이 청산에 들어가서 크기나 넓이 등을 대략 파악해서 도배, 장판 및 가구 취급점에다 전화로 물어봤었고, 견적서는 통상 컴퓨터에 저장된 공식 사용한 파일로 제정비 작성한다. 예전에도 모든 문서들을 다 그래왔었고 사업장 견적서는 팩스 보낼 때 어려움이 있다.어디든지 마찬가지지만 공사가 대략 끝나면 곧바로 정산을
투명하지 못한 회계가 발단이 된 R봉사회 전 회장 A씨 사건이 완도의 여성대표단체 회장직 사퇴 논란으로 번져가고 있다. 또 다른 R봉사회 전임 회장 1명과 완도여성대표단체 전임 회장 3명이 소속된 고문단 그룹이 R봉사회 전 회장 A씨의 R봉사회 회원 자격이 상급단체에 의해 박탈됨에 따라 여성대표단체의 회장 자격이 없다고 문제를 제기한 것. 완도여성단체를 대표하고 있는 본단체는 1986년 발족해 총 8곳의 여성단체가 모여 구성됐다.R봉사회 전 회장 A씨도 소속된 8개 단체 중 한 단체의 회장으로 여성대표단체 회장으로 추천돼 당선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