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고금 일덕암리 고금초등학교 건너편에 있는 이도재 공 적거지가 유배기간 이도재 공이 머물렀던 곳이 아니다는 주장이 제기돼 논란이 되고 있다.고금 청용리 박종술 씨는 이도재 공을 도와 완도 설군의 일익을 담당한 침천 김광선 선생의 자서행록 기록에 청용리 용지정사에서 머물렀다는 내용을 근거로 현재의 적거지가 아니라는 주장이다. 박씨에 따르면 김광선 선생은 자신의 박씨 문중의 사위로, 당시 이도재 공이 고금현을 통해 용지정사에 머무를 것을 통보받았다며 이도재 공이 고금도 여러 곳에 기거한 것으로 알고 있으나 현재의 적거지는 어떤 근거
크리스마스 다음날, 종일 겨울비가 추적거리면서 내리는 날이었다. 굴이 한창이라는 신지 석화포는 정말이지 굴더미였다. 배에서 내리는 굴, 트럭에 싣는 굴, 모여앉아 껍데기를 까는 굴, 한쪽에서는 일하면서 틈틈이 구워먹는 굴, 굴천지였다.배 위에도 트럭 위에도 트럭 위에서 일하는 사람들 어깨 위에도 바닥에 쌓인 굴껍데기에도 비는 계속 내리고 있었다. 트럭에 굴을 싣던 한 사람이 "굴철엔 태풍이 쳐도 일한다"고 한다. 헌데 추적거리는 이 정도 비쯤이야…한쪽에 비를 가릴 만한 천막이 있고 그 아래서 몇은 굴을 씻고 몇은 굴
이도재 공 적거지가 현재의 일덕암리가 맞느냐, 안맞느냐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이도재 공의 증손 이경훈 옹(82)을 만나고 왔다. 현 이도재 공 적거지 위치 근거자료를 제공한 고금도 손준우 선생(86)이 적거지 지정 당시 고금도 일기 형식의 이도재 공 자료에 그곳 위치가 나와 있다는 발언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이 옹은 한국산업은행에서 17년간 근무하고, 1975년 김우중 회장과 인연을 맺고 대우그룹에서 부회장, 회장까지 23년동안 재직했다. 말년에 경기도 광주 오포읍 능평리 선산 근처에 송호재를 짓고 기거하고 있는 중이다. 이 옹
완도군은 올해 2월3일자로 설군 120주년을 맞이했다. 그러나 5월 장보고수산물추제와 군민의 날 등 행사에 밀려 따로 기념행사조차 진행하지 않아 설군 120주년에 대한 아쉬움을 남기고 있다. 그런 와중에 설군 주역인 이도재 공에 대한 연구를 진행해 설군 주역에 대한 종합적이고 명확한 평가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일부에서 제기되고 있다.온당한 역사적 평가를 받지못한 이도재 공으로서는 당시 완도군이 여러 도서로 나뉜 상태에서 섬사람들의 애환을 온몸으로 느껴 도서만으로 이루어진 완도군을 설군한 공으로서는 설군 120주년을 맞아 서러운 대목이
지난 9월 30일 본지 제1052호 에 김생님 씨의 '그랑께, 그랑께, 햇볕도 켜켜이 쌓여가고…'가 실렸었다. 해변공원에서 장어를 다듬는 생님 씨의 사진과, 두 아들 먼저 하늘나라로 보내고 살아온 사연이 나간 이후 신문사로 생님 씨를 찾아온 이가 있었다. 어떤 인연인지, 왜 찾는지 물어도 별 답이 없어 연락처를 알려주지 않았었다. 아니, 생님 씨의 연락처를 받아놓지 않아서 실은 알려줄 수가 없었다. 그러던 차 지난 9일 읍내에서 생님 씨를 만났다. 등잔 밑이 어둡다더니 딱 그 꼴이었다.
사법시험에 합격해 변호사가 되면 세상이 좀 달라질 줄 알았다. 그러나 전라도 섬마을 노화도에서 태어나 대학 졸업도 못하고, 딸린 가족들이 너댓명... 고향사람들이나 친구들은 다 내 의뢰인이 될 줄 알았는데, “너까지 게?”라는 식으로 쳐다만 보았다. 세상 인심이 변호사가 되었는데도 이른바 학벌과 인맥이 부족한 ‘빽’없는 설움을 절감했다.그러다보니 돈을 벌어야 하니 국선변호사 일을 맡았다. 누구보다 열심히 국선변호 일을 맡아 수입도 조금 짭짤해 졌다. 그런데 수원 노숙소녀 살인사건을 맡으면서 그의 인생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처음엔 사
훈훈하고 칭찬하는 완도사회를 만들기 위한 칭찬릴레이!'칭찬합시다'가 지난 호까지 19번째 칭찬 주인공을 탄생시켰다.칭찬합시다에 대한 구독자들의 대체적인 반응은 칭찬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본보의 기획에 호의적이었으며, 비판과 견제라는 언론 고유의 특성을 살려가면서 한편으론 더 부드럽게 지역민을 포용해 가는 지역언론이 돼 주기를 바란다는 의견을 개진해 줬다. 뉴스 후에서는 본보의 칭찬합시다 코너에 대해 독자들에게 물었다.완도초교 조진희 학부모 운영위원은 "한 어머니가 유치원 모임에 참석했답니다. 유치원 선생님이 그 어
“바람 나는 이유를 알겠더라”지난 시간들을 돌아보며 말하는 한미옥 씨(54세). 20여년 전 아이들이 아직 어릴 때였다. 멀쩡한 직장에 다니던 남편이 사고를 쳤다. 결혼 초부터도 돈에 대해서는 애초에 계산할 줄 모르고 가족은 물론 누구에게건 아까운 줄 모르고 베풀기를 좋아하던 남편에 대한 불만이 사그라들지 않던 차에 빚보증으로 덜컥 빚을 떠안게 된 것이다. 남편의 월급 통장은 압류되고 이자가 이자를 낳고 빚은 점점 불어났다. 마이너스 통장은 마이너스에서 헤어나오질 못하고 자식들은 어리고, 집안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경제가 어떻게 굴러
"역사에는 두가지부끄러움이 있다.하나는 부끄러움이무엇인지 모르고저지른 역사또 하나는부끄러운 역사임을알고도 그걸 고치지 못하는 역사다.우리는 후손에게부끄럽지 않은역사를 가르쳐야 할 의무가 있다."반기문 유엔총장 동상, 비판 일어나김종식 전군수 흉상, 반 총장 비슷반기문 유엔총장이 2010년 고향인 충북 음성에 동상을 세운 것을 두고 뒤늦게 비판의 목소리가 일고 있다. 반 총장이 19대 대선주자 지지도에서 1,2위를 다투며 부상하면서 6년 전에 세운 동상에 대해 살아 있는 사람에 대한 성역화, 우상화하려 했다는 것이다.반기문 총장
3대째 독실한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난 나. 중·고등학교 당시엔 가정적으로 어려움도 있었다.하지만 늘 기도하셨던 어머니와 미션스쿨(염광 여자 중, 고등학교) 선생님들과 교회 목사님의 가르침과 영향으로 나의 학창시절은 큰 어려움없이 이겨내고 헤쳐 나올 수 있었다.꿈은 목사가 되는 것이었다.여자로서는 흔치 않는 꿈이었지만, 목회를 한다는 건 나의 사명이었기에 대학 또한 주저없이 한신대 기독교교육과를 선택했다. 지금의 남편(전민 목사)은 한신대 신학대학원에 입학하여 같은 상담학회를 통해 만나게 되었다. 당시 남편은 목회상담학회 회장이었고
얼마나 달렸을까?가리말을 몰아쳐 내달리기를 한나절.목이 타올랐다. 하지만 어서 빨리 장보고 장군에게 가야만했다. 반나절을 더 달렸을까? 장도를 얼마두지 않고, 그제서야 가리말을 너무 몰아쳤구나 싶었다. 어느 우물가에 이르러 말을 매어 놓고서 물을 긷던 한 여인에게 마실 물을 청했다. 여인은 한 줌의 버들잎을 바가지에 띠워 손맵시 있게 바가지를 훑어내린 후 정성스레 전해주었다.버들잎이 떠 있는 물을 호호 불어가며 다 마시고 나서야, 감사의 목례와 함께 다시 말을 몰아 다그쳤더니 어느 덧 장도가 눈앞에 보였다.군영 안으로 들어서는데 그
본보에서는 12월 한 달 간, 각계각층의 독자 300명에게 본보에서 보도 된 뉴스 중 10대 뉴스를 선정 의뢰했다, 2016년 완도신문 10대 뉴스에서 1위는 한국 사회를 근본적으로 바꿔낼 수 있는 에너지원으로 충분했던 박근혜 대통령 탄핵 촛불집회였다. 2위에는 지역사회의 큰 논란이 됐던 의장단 선거 금품수수 사건이 차지했고, 전복집단폐사의 경우엔 큰 이슈였지만, 해당 지역의 주민 외에는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다.1. 들불처럼 번진 완도 시국선언, 촛불집회와 탄핵소추안 가결12월 9일은 국회의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여부에
하늘 높이 비상할 때,죽도록 암담할 때,오로지 행복한 것은누군가를 사랑하는 마음이라고 했던가요2016년이 마지막을 향해 갑니다우리는 당신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보냅니다
세상에서 가장 큰 슬픔은 무엇일까. 그는 부모 없는 슬픔이라고 한다. 오십에 가까운 나이니 조금 일찍 부모를 여의었나 싶지만 조금 일찍이 아니었다. 아버지는 그의 나이 세 살, 어머니는 열다섯 살 때 병으로 돌아가셨다.다섯 살 위인 막내 누나의 보살핌으로 중학교를 간신히 마치고 바로 상경했다는 김현윤 씨(사진). 그때부터 도둑질 빼고는 다 했다. 봉제공장이며 어디며 가리지 않고 일했다. 고등학교 대신 야학에 다녔다. 얼굴은 물론 '아버지'라고 불러본 기억도 안 나는 아버지, 그리고 그리운 엄마. “어린 마음에 술 담배
국제해조류박람회 조직위 사무국의 가장 큰 고민은 교통 부분이다.서길수 사무국장은 “2014년에 비해 주차공간이 줄어든 게 가장 심각한 고민”이라고 밝혔다. 현재 항만터미널은 공사중이고 공설운동장은 인조잔디가 깔려 있는 상태라 주차장 사용이 어렵고 수협FPC 건물이 들어선 공간도 이전에는 주차장으로 쓰던 공간이기 때문이다.서 사무국장은 “목표 관람객 수 이상의 인원이 방문했을 경우, 차량이 일시에 2만 대 이상 진입할 경우 주차난은 피할 수 없어 주차 공간 확보가 가장 시급하다. 14년도 박람회 기간 중 5만4천 명이 방문한 것으로
당신은 나의 죽음 속으로 오셔요.죽음은 당신을 위하여의준비가 언제든지 되어 있습니다.만일 당신을 쫓아오는 사람이 있으면당신은 나의 죽음의 뒤에 서십시오.죽음은 허무와 만능이 하나입니다.죽음의 사랑은 무한인 동시에 무궁입니다. 홀연히 집을 나온 만해. 서울로 향해 가는데 수원 쯤에 이르러 굶주림에 지쳐 하루를 묵게 됐다.하루를 묵으며 앞일을 생각했다. 물론 아내의 출산에 대해서는 안중에도 없었다. 본디 자각과 해탈이란 나를 알아가는 과정에서 시작된다.'나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만해의 오셔요(윗 시)에선 인간사
12월 어느 날, 완도읍사무소(읍장 심만섭)에 편지 한 장이 배달됐다. 편지의 사연은 이러했다.완도읍 중도리에 사는 이정례 할머니가 농어가목돈마련저축 재계약에 필요한 서류를 떼러 건강보험공단을 방문했다가 정기총회로 일을 보지 못하고 허탕을 치게 됐다. 할머니는 나머지 서류를 준비하러 읍사무소로 향했는데, 2명의 직원의 도움으로 떼지 못한 건강보험공단 서류뿐 아니라 세무서 서류까지 수월하게 서류준비를 끝마치게 된 것. 그래서 할머니는 완도읍사무소에 “2명의 직원을 칭찬해 달라”는 내용으로 감사 편지를 전달하게 됐던 것이다.이번 칭찬릴
열세 살. 어린 그에게 시련이 왔다. 시름시름 아프기 시작해 광주로 어디로 안 가본 병원이 없을 정도였지만 어디에서도 원인을 찾아내지 못했고 차도가 없었다. 학교도 못 가고 누워있기를 3년. 그때부터 다리를 절기 시작했다. 한창 성장할 나이였으나 오른쪽 다리 뼈가 더 이상 자라지 않았던 것이다. 뒤늦게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입학했으나 학업을 중단했다. 몸도 불편했지만 또래들은 고등학생인데 자신은 중학생으로 3년 어린 아이들과 다니는 게 힘들어서였다. 집안에 스스로를 유폐했다. 길고 어두운 시절이었다.열아홉에 상경해 봉제공장을
자식들이 장성(長成)하더라도 늙으신 부모 어깨 한번 주물러 드리기 어렵다. 물론 마음이야 다들 굴뚝 같을지 모르지만,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그런데 그 역할을 대신해주는 이가 있다. 이번 칭찬릴레이 주인공은 완도엄니들 효자손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이민주 씨(44)다.이씨는 물리치료자격증과 스포츠맛사지 자격증을 모두 가지고 있는 완도이비인후과 물리치료사다. “특별히 제가 잘하는 건 없어요. 치료기법이 약간 차이가 있을 뿐”이라고 겸손해 하는 그다. 오히려 “먹거리가 좋아서 그런지 다들 건강하세요. 순박하시고 정말 열심히 사시는
청산도의 가을은 느리게 오고 느리게 간다. 시간이 더디가는 섬에서는 단풍도 늦게 들어 다른 곳에서 단풍이 다 지고 가을도 다 가고 올해도 끝난건가... 하며 우울함이 엄습할 때 즈음에야 가을이 시작되는 즐거움을 맛볼 수 있으니 슬로시티의 묘미가 여기서도 발휘된다고 할 수 있다.청산도의 걷는 길 중 단풍길은 가장 계절의 변화를 쉽게 느낄 수 있는 길이다. 육지에서 보는 느낌과는 사뭇 다른 푸른 바다와 대비되는 청산도의 단풍길은 진산리에서 지리마을까지 3.2km, 55분이 소요된다.단풍나무가 가을에 잎이 붉게 물들면서 최고의 절정을 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