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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길, 단풍길 단풍이 다 져야 가을이 간다

청산슬로우길 9코스 단풍길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16.12.09 09:58
  • 수정 2016.12.09 1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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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도의 가을은 느리게 오고 느리게 간다. 시간이 더디가는 섬에서는 단풍도 늦게 들어 다른 곳에서 단풍이 다 지고 가을도 다 가고 올해도 끝난건가... 하며 우울함이 엄습할 때 즈음에야 가을이 시작되는 즐거움을 맛볼 수 있으니 슬로시티의 묘미가 여기서도 발휘된다고 할 수 있다.

청산도의 걷는 길 중 단풍길은 가장 계절의 변화를 쉽게 느낄 수 있는 길이다. 육지에서 보는 느낌과는 사뭇 다른 푸른 바다와 대비되는 청산도의 단풍길은 진산리에서 지리마을까지 3.2km, 55분이 소요된다.

단풍나무가 가을에 잎이 붉게 물들면서 최고의 절정을 뽐내기는 하지만 겨우내 이파리를 다 떨궈낸 가지 끝에 물이 오르고 이른 봄비에 빨간보석이 알알이 맺혀있는 마법같은 풍경과 새순이 올라오고 연초록빛 애기 손들이 시나브로 초록으로 짙어지는 아름다운 변화를 보면 4계절 내내 자기만의 색과 이야기로 오가는 이들에게 풀어내고 있으니 대견하고 감사한 길이기도 하다.

단풍길에 얽힌 이야기는 많다. 사철 푸른 나무만 많이 있던 남쪽 섬 청산도에서는 해마다 가을만 되면 섬아낙들이 단풍놀이를 가게 되고, 나갔다하면 늦가을 변덕스런 바람에 뱃길이 끊어지는 일이 다반사라 예정된 날에 돌아오지 않는 부인들을 기다리는 것이 불만이었던 섬의 남정네들은 면사무소에 청을 하여 단풍나무가 심어진 길이라는 우스개 섞인 이야기와 20여 년 전 당시의 면장님이 가로수를 정비할 때 일교차가 심하지 않은 따뜻한 섬 기후와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반대하는 주민들을 설득하여 단풍나무를 심게 되었고 서부도로와 동부도로를 쭉 둘러서 나무를 심어 놓았지만 동부 도로 쪽은 나락도 말리고 농작물에 그늘이 지면 안된다는 이유로 단풍나무가 점점 없어져서 지금의 단풍길 구간만 남게 되었다는 웃지 못 할 이야기도 전해진다.

그 이후에 이뤄진 가로수 정비 덕에 구간 별로 벚나무, 먼나무, 동백나무, 목백일홍, 후박나무 등이 심어져 있어 걷기와 더불어 드라이브하기도 매력적인 청산도가 되었으니 그나마도 다행이지 않은가.

단풍길은 시간이 지날수록 그 가치와 매력이 점점 더 커지는데 나무를 심는 일이야말로 도로를 정비하고 건물을 짓는 일보다 더 의미 일이라는 것이 다시 한번 입증이 된 셈이다.

청산도에서는 단풍길의 단풍이 다 져야만이 가을이 갔다. 라고 한다. 단풍길에 단풍이 흩날린다. 청산도에도 가을이 떠날 채비를 서두르나 보다.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은 늦가을의 풍경이 청산도에 펼쳐지니 괜히 마음도 심난하고 스산해진다.
 

김미경 / 전라남도 관광해설사

20여년 전, 단풍놀이를 떠나던 섬아낙들의 심사가 이해가 된다. 올가을 마지막 단풍을 보러 단풍길로 나선다.
꼭 멀리 가야만 여행은 아니지 않은가.
예쁘게 물든 단풍잎에 눈이 호강하고, 떨어진 이파리들의 바스락거림에 귀가 호강하니 새삼 면사무소에 단풍나무를 심어 달라 청했던 그 시절 남정네들이 고맙고, 단풍나무를 심어 준 20여년 전 면장님이 고맙고, 해마다 단풍놀이를 떠났던 섬 아낙들이 고맙고...
내 앞의 모든 것이 고마운 일 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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