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앗, 생님 씨다! 찾았다, 생님 씨!

[뉴스후 1]세상을 만드는 손, 김생님 씨

  • 한정화 기자 wandonews@naver.com
  • 입력 2016.12.30 09:39
  • 수정 2016.12.31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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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30일 본지 제1052호 <세상을 만드는 손>에 김생님 씨의 '그랑께, 그랑께, 햇볕도 켜켜이 쌓여가고…'가 실렸었다. 해변공원에서 장어를 다듬는 생님 씨의 사진과, 두 아들 먼저 하늘나라로 보내고 살아온 사연이 나간 이후 신문사로 생님 씨를 찾아온 이가 있었다. 어떤 인연인지, 왜 찾는지 물어도 별 답이 없어 연락처를 알려주지 않았었다. 아니, 생님 씨의 연락처를 받아놓지 않아서 실은 알려줄 수가 없었다. 

그러던 차 지난 9일 읍내에서 생님 씨를 만났다. 등잔 밑이 어둡다더니 딱 그 꼴이었다. 매일 점심 먹으러 왔다갔다 하던  길목, 공중전화 부스 앞에 앉아 있었다.(사진)
반가운 마음에 무의식적으로 "생님 씨다!" 소리를 질렀다. 앉아 있던 생님 씨는 고개를 들어 쳐다보고 잠깐 설명을 드리자  아~ 하고 알아보는 눈치다. "오메! 또 찍어?" 한다. 겨울 찬바람 속에 앉아 있으니 양 볼이 빨갛다. 네거리라 바람도 피할 길이 없어보이는 길, 그나마 공중전화 부스가 바람막이였다. 앉아 있던 장소만 달라졌을 뿐 생님 씨의 일상은 여전했다.

약산이 친정인 그녀는 스물 다섯 살부터 생선을 팔기 시작했다. 스물 일곱 살에 결혼해 아이를 등에 업고 하나는 뱃속에 품고도 장사를 나갔다. 눈이 무릎까지 허리까지 차도록 내린 날도 장사를 거르지 않았다. 예전에는 마량까지 배를 타고 다니면서도 생선을 팔았는데 한번은 조금이라도 먼저 내려 장사를 해야겠다는 급한 마음에 배에서 서둘러 내리다가 물에 빠진 적도 있었다. 몇십분을 허우적대다가 빠져나오기도 했단다. 바다에 빠져 몇십 분을 어떻게 버텼냐 묻자, "약산 처녀들은 헤엄 잘 쳐. 젊을 때는 십리 길도 짱짱하게 걸었는데…"

이제는 어깨가 아파서 팔이 올라가지를 않는다. 검사나 수술 같은 건 엄두도 안 나고 매일 병원에 가서 주사를 맞고 온다.
그래도 집에만 있을 수가 없다.
겨울 바람에 볼이 얼고 손이 부르트고 신산하기 그지없어 겨울 한철이라도 쉬면 좋으련만. 워낙 젊을 때부터 해오던 일이라 좀이 쑤시기도 할 테지만 생님 씨가 꼬박꼬박 나와 이렇게 앉아 장어를 다듬는 이유는 "집에 가만 있으면 잡념이 많아져서"다. 아무리 세월이 지나도 어미 가슴 속에서 지울 수 없는 상처를 품었으니 오죽하랴.

요새는 손주 웅이와 건이 생각으로 재미난다. 군대 간 웅이는 외출이나 외박을 나오면 꼬박꼬박 할머니한테 전화를 한단다. 석달 전이나 지금이나 생님씨는 딴 거 없다, 건강하라고 한다.
자네도 먹고 사느라 애쓰네, 하며 "갈치라도 쫌 주까?" 하며 한 무더기를 쥐어주려 한다. 팔을 저으며 얼른 자리를 떴다.
마음만 고스란히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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