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다음날, 종일 겨울비가 추적거리면서 내리는 날이었다. 굴이 한창이라는 신지 석화포는 정말이지 굴더미였다. 배에서 내리는 굴, 트럭에 싣는 굴, 모여앉아 껍데기를 까는 굴, 한쪽에서는 일하면서 틈틈이 구워먹는 굴, 굴천지였다.
배 위에도 트럭 위에도 트럭 위에서 일하는 사람들 어깨 위에도 바닥에 쌓인 굴껍데기에도 비는 계속 내리고 있었다. 트럭에 굴을 싣던 한 사람이 "굴철엔 태풍이 쳐도 일한다"고 한다. 헌데 추적거리는 이 정도 비쯤이야…
한쪽에 비를 가릴 만한 천막이 있고 그 아래서 몇은 굴을 씻고 몇은 굴을 까고 있었다. 싱싱한 굴을 무더기로 곁에 두고 있어서 인심이 후한 걸까? 사진을 찍어도 말을 걸어도 웃으면서 농담도 섞어가며 받아준다. 막 구운 굴을 내밀기도 했다. 그러다가 한명이 저 사람 찍소, 하며 가리켰다.
추운 겨울 바람을 고스란히 맞으며 일해야 하는지라 두터운 옷에 모자에 목도리 마스크까지 하고 일을 하고 있으니 제대로 얼굴을 볼 수 없었던 그녀. 마스크를 벗자 고운 표정이 드러난다. 베트남에서 완도 남자 따라 한국에 온 지 5년째. 처음엔 날씨랑 음식 때문에 힘들었다는 그녀는 이제 "날씨 괜찮아. 돼지고기 된장 좋아해" 라고 말한다.
결혼 이후 친정 베트남엔 세 번을 다녀왔다고 한다. 작년 5월에는 엄마가 와서 석달을 머물다 가셨다. 그래도 당연히 엄마는 보고 싶다. 주머니를 가리키며 보고 싶으면 전화한다고 웃는다. 대답해주면서도 열심히 굴을 까느라 눈을 내리뜨고 웃는 모습이 참 고왔다. 아직 아이가 없어 아이 갖고 싶다고 말하면서도 살풋 웃는다. 저 미소가 예쁜 아이 엄마의 편안하고 푸짐한 웃음으로 바뀔 때쯤 또 볼 수 있을까.
발음을 정확히 못 알아듣는 기자의 수첩에 직접 자신의 이름을 적어준다. 부이 김안(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