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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넌, 달빛에 아름답다

[스토리텔링 완도]2016 주도전설 #1

  • 김형진 기자 94332564@hanmail.net
  • 입력 2016.12.30 08:36
  • 수정 2016.12.30 0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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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달렸을까?
가리말을 몰아쳐 내달리기를 한나절.
목이 타올랐다. 하지만 어서 빨리 장보고 장군에게 가야만했다. 반나절을 더 달렸을까? 장도를 얼마두지 않고, 그제서야 가리말을 너무 몰아쳤구나 싶었다. 어느 우물가에 이르러 말을 매어 놓고서 물을 긷던 한 여인에게 마실 물을 청했다. 여인은 한 줌의 버들잎을 바가지에 띠워 손맵시 있게 바가지를 훑어내린 후 정성스레 전해주었다.
버들잎이 떠 있는 물을 호호 불어가며 다 마시고 나서야, 감사의 목례와 함께 다시 말을 몰아 다그쳤더니 어느 덧 장도가 눈앞에 보였다.
군영 안으로 들어서는데 그때부터 자꾸만 머리 속에서 떠오르는 생각이란.
'아, 그 물 맛 한 번 좋구나!'
'무엇이 이리 물맛을 좋게 했을까?'
'내가 목이 너무 말랐었나!'
'내가 체할까봐 천천히 마시라고 버들잎을 띄운 여인의 마음이었나?'
'아니면 백옥같은 그녀의 얼굴이었나?'
'섬섬옥수 가녀린 그녀의 손등이었나?'
천하일미의 물맛을 맛보았다고 생각한 그는 장보고가 가장 총애했던 윤우였다.
그날 이후, 그녀의 모습이 머리 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밤이면 달빛 실어 창을 두드리고 꿈속 같이 속삭이다 홀연히 사라지는 묘령의 여인은 눈앞에서 어른어른.
'아, 수천 미터 하늘 위에서 내리꽂히 듯 쏟아지는 저 달빛은 그녀의 환생인가' '내 마음에 그녀가 들어와 사는구나!'
만월. 큰 달이 떠올랐다. 하늘과 바다의 경계가 사라진 깜깜한 장도 앞바다에는 빛들이 반짝였고 스며드는 하얀 파도와 크고 작은 바위에 부딪혀 사라지는 포말들, 그리고 바다 한가운데에 빠진 달의 반영. 두툼한 융단 같은 물결 위로 하얀 달그림자가 일렁이면서 사방으로 부서지는 달빛.
부서지는 달빛은 날개짓하며 윤우의 심장으로 날아와 천둥처럼 두드렸다.
순결한 달빛의 향기로 마치 아름다운 그녀의 향기처럼 푸르고 또 푸른 밤, 장도에서 배를 띄워 앞바다를 주유하던 윤우의 배는 어느 덧 주도까지 와 버렸다.
무심히 바라보는 주도의 숲 사이로 새어 나오는 엷은 불빛. 그 빛에 홀리어 자신도 모르게 주도에 배를 댄 채 그 빛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는 윤우. 불빛이 새어나오는 곳은 장보고가 하늘에 제를 지내는 천제단.
그곳엔 소복의 차림의 한 여인이 보였으니 바로 하늘의 제를 담당하는 천신녀 이영.
그런데 윤우의 눈에 들어온 천신녀 이영은 꿈에도 그리던 그녀가 아닌가!
"아, 당신은!" "당신은... 바로 그때!"
윤우의 비명같은 인기척이 그녀에게 들렸을 법도한데 전혀 반응없이 제를 올리던 이영.  '아, 바람은 그녀의 숨결을 몰고와 그녀의 이름을 이리도 애타게 불러댔구나!'
달빛 속에서 나타난 그녀는 어둠에 가리운 채 뚜렸하진 않았지만, 밤하늘의 달빛은 맑은 그녀의 눈동자를 더욱 빛나게 했고 기품어린 그녀의 모습은 더욱 부드럽게 윤을 내주고 있었다.
"아, 그대여!" "나는 그대를 애타게 그렸소. 나는 그대를 본 이후로 줄곧 그대만을 그렸으니까!"
그러자 그윽하고 촉촉한 달빛의 입술이 열리듯한 그녀의 온유한 음성!
"상공, 저 또한 상공이 장보고 장군 곁에서 가장 용감하고 가장 지혜로운 분임을 압니다"
"아, 그러면 그때 물을 떠 주었을 때도 나를 알고 있었던 말이요?
그 말에 찬바람을 이겨낸 얇고 가녀린 초생의 달빛처럼 수줍게 얼굴을 돌리는 그녀.
"오, 거룩한 달빛이여!"
"나의 눈에 당신의 얼굴은 흐릿하고 떨리고 있지만, 당신은 분명한 하늘의 증인! 나는 당신이 비추는 저 하늘의 별빛과 지상의 모든 꽃잎들 앞에 맹세합니다"
"지금 내 앞에, 내 눈이 바라보고 기억하는 모든 순간들이 내 영혼의 기쁨으로 돼 있음에..."
"이제, 삶은 이보다 더한 기쁨은 없음이니 어느 날 찾아오는 그 어떤 고통이나 비탄 마저도 이 순간의 기억으로 씻어주리니"
"내 삶에 더 이상의 미성과 미광을 듣지, 보지 못한다할지라도 나는 당신을 보며 이날을 회상할 것입니다."
"오오 그때, 나는 그 얼마나 기쁨인지!"
"그대여, 우리 함께 저 달빛을 갈아 마시며 이날을 기억합시다. 사랑합니다"

(1월  특집판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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