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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금 이도재 공 적거지 진위 논란

고금도 박종술씨.손준우옹 주장 달라...이도재공 관련 종합·체계적 연구 필요

  • 박주성 기자 pressmania@naver.com
  • 입력 2016.12.30 10:03
  • 수정 2016.12.31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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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고금 일덕암리 고금초등학교 건너편에 있는 이도재 공 적거지가 유배기간 이도재 공이 머물렀던 곳이 아니다는 주장이 제기돼 논란이 되고 있다.

고금 청용리 박종술 씨는 이도재 공을 도와 완도 설군의 일익을 담당한 침천 김광선 선생의 자서행록 기록에 청용리 용지정사에서 머물렀다는 내용을 근거로 현재의 적거지가 아니라는  주장이다. 박씨에 따르면 김광선 선생은 자신의 박씨 문중의 사위로, 당시 이도재 공이 고금현을 통해 용지정사에 머무를 것을 통보받았다며 이도재 공이 고금도 여러 곳에 기거한 것으로 알고 있으나 현재의 적거지는 어떤 근거도 없다고 말했다. 일부에선 적거지 집을 팔아먹기 위한 방편으로 현재 위치가 선택됐다는 소문도 있었다는 얘기도 덧붙였다.

반면, 현 적거지가 세워질 때 위치자료를 제공한 손준우 옹은 이도재 공 자료를 수집, 연구하기 위해서 당시 오병탁 교장의 요청으로 이도재 공 후손을 만나 고금유배시 일기형태의 자료에서 일덕암리 최평우 씨 집에 기거했다는 내용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난패수록인가... 자세한 책 제목은 오래돼 생각이 안나지만, 그 책 사본을 가져와 해석해 보니 용지정사 언급은 없고, 현재 적거지 위치만 나와 있었다”는게 손 옹의 주장이다. 양측의 주장을 확인결과 박씨가 말한 김광선 선생의 자서행록의 기록은 사실이나 초반에 임시로 잠시 이도재 공을 모셨던 곳으로 확인된다. 자서행록을 연구한 완도문화원 정영래 이사가 정리해 놓은 ‘심제 이도재’란 글에 이런 내용이 나와 있다.

‘1886년 이도재가 고금에 유배되어 오던 당시에는 김광선은 사업의 실패로 생활이 궁핍한 실정에 처해 있었다. 강진현에서는 이도재를 용지정사로 유배지를 배정하였다. 그러나 김광선은 강진 현에 찾아가 “지금의 가정형편으로는 도저히 도재 영감을 모실 수 없다”라고 하였다. 사정을 알아들은 강진 현에서는 덕암리(적거 유적지, 덕암리 9441-1번지)로 결정되었다’ 손옹의 주장에 나온 기록도 확인하기 위해 경기 광주에 기거하는 이도재 공의 증손 이경훈 옹을 만났는데, 일기 비슷한 책이 유물로 남아 있고 그 내용에서 ‘농상리 최평우 씨’라고 표기된 것은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번 이도재 공 적거지 논란에서 몇가지 씁쓸한 점이 발견된다. 자료가 있으나 그 유무도 확인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과 설군 주역 이도재 공에 대한 종합적·체계적 연구가 없다는 것이다. 이도재 공은 섬 사람들의 애환을 몸소 유배기간 중 느껴 여러 도서를 묶어 하나의 군을 설립해 주었는데, 그 후손들이 120년이 지나 이도재 공을 대하는 모습은 과연 올바른 것인지 의문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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