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의 소나무로 호위된 작은 성, 인접한 바다의 숨소리는 귀를 녹일 듯 부드러우면서, 파도의 살결처럼 생경한 바람은 피부에 와닿자, 싱그러운 네롤리와 머스크의 우아한 만남으로 눈부시게 빛났다.당신의 새벽을 빌려와 끝이 없을 것만 같은 고독이 마침내 멈춰서는 순간, 눈빛으로 주고 받던 말들은 마음 속 미묘한 불꽃으로 일어났을 때, 그는 약속했던 자유, 해양치유였다.어른들이 하는 말 중에 "아야, 곡식은 쥔네 발걸음 소리 듣고 커야!"역시나 자다가도 떡을 얻어 먹는다는 어른들의 말은 틀림이 없다. 이곳에 이틀에 한번 꼴, 주말엔 반드시
주사위는 던져졌다. 해양치유.민선 6기부터 8기까지 완도군정을 한마디로 압축시킨다면 해양치유다. 지난 10년 동안 완도사람들이 가장 많이 들었던 말 또한 실체도 형체도 없었던 해양치유. 되네 안되네, 언제 하네 못하네, 숱한 곡절 속에서 마침내 다음 달 그랜드오픈을 앞둔 해양치유센터. 공무원들에 이어 사회단체와 일반 군민의 시범운영이 이루어지고 있는 가운데, 테라피를 받고 나온 주민들은 하나같이 "개운하네" 소리가 절로 나왔고, 몇몇 주민들은 입소문을 듣고 와 “왜 우리는 뺐느냐?”며 소소한 항의까지 있었단다. 주무부서장인 안환옥
입 밖으로 무게 없는 소리들이 날개를 달고 나오자, 가슴을 경작하는 손길이 닿는 곳마다 폭포의 중력으로 쏟아져 내려 만인의 어깨와 머리 위에서 춤추고 노닌다.가늘고 뾰족한 소리의 음표 하나 하나가 살갗을 뚫고 들어와 핏줄기를 따라 심장으로 돌진해 압도적인 힘으로 멈춰 섰을 때, 내 몸을 뚫고 들어오는 예술, 바로 우리의 소리다.그 소리에 익사 당하려고 할 때, 폭풍같은 음율은 사랑의 번개와 충돌이라도 한듯 맹열한 폭포의 끊임없는 소리 가운데 서 있고 그 소리의 중심에서 흠뻑 젖어 버린다. 그렇게 당신의 몸이 젖지 않는다면, 귀를 막
완도신문을 돋보이게 하는 텍스트를 꼽으라 한다면, 각 필진들의 글을 비롯해 감성적인 이들에게 잘 읽히는 신복남 기자의 야생화 이야기, 새로운 완도의 이야기를 전하는 정지승 문화예술활동가의 글이 좋아 보이는데, 원픽(하나만 고른다면)은 유영인 원장의 글 같다.권력자를 향한 쓰디 쓴 글은 그렇게 어렵지 않다. 사물의 본질과 핵심, 객관적인 면을 본 후, 언론적 정의를 발휘하면 되니까. 어려운 것은 현장을 누비는 것. 한 가지 주제의식을 갖고 십 년 이상 깊이 있게 연구하며 현장을 누비는 전문기자. 그런 이들이 데스크보다도 언론계의 전설
무소유의 법정스님이 살아 생전, 천억원을 받은 적이 있었다. 그 천억원이란 돈은 대원각이라는 큰 요정을 운영했던 김영한에게서 받게 된 것이었는데, 김영한이 누군가 하면. 시인들이 가장 사랑한 시인 백석을 한 남자로, 그녀는 북에 있는 정인을 한평생 그리워했다. 영한은 싯가 천억원에 해당하는 대원각을 무소유의 가치를 실현하던 법정스님에게 "받아라"했고 법정스님은 "못 받는다". 이런 실갱이를 십년동안이나 하다가 결국 법정스님이 받아 송광사의 재산으로 등록한 후 길상사로 변모됐다.대원각을 넘기고 얼마 후, 기자가 영한에게 묻기를 "천억
1905년: 의병장으로 활동하며 일제에 맞서 싸움1910년: 한일병합 이후 만주로 건너가 독립군 조직1920년: 봉오동·청산리 전투 승리1921년: 독립군 총사령관 임명1927년: 대한독립군단 부총재 임명1937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총리 임명 1943년: 카자흐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에서 타계 항일독립전쟁의 살아있는 전설이자, 일제강점기 독립군 최대의 전투였던 봉오동 대첩과 청산리 대첩을 승리로 이끌었던 대한독립군 총사령관 홍범도 장군.장군은 연해주 이주 100년만인 지난 2018년 고국의 품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최근 윤석
"정말로 행복한 나날이란 멋지고놀라운 일이 아니라진주알들이 하나하나 한줄로 꿰어지듯이소박하고 자잘한 기쁨들이조용히 이어지는 날들인것 같아요" 우리에겐 "주근깨 빼빼 마른 빨간 머리 앤~"이란 노래로 친숙한 1908년에 쓰인 빨간머리 앤이 하는 말이다.국립난대수목원 유치 확정에 이어 그 어렵다던 예타통과까지 마무리해낸 박은재 산림휴양과장.민선 7기와 8기 현재까지 최대 성과를 낸 부서장이기도 한데, 사실 혼자 잘나 그렇게 일을 잘하는가 싶었다. 또 조조의 품에 있던 관우, 김형인 팀장을 데려오기 위해 사방팔방 힘을 쓰는 모습을 볼 때
해상왕 장보고대사는 1200년전 한· 중· 일을 잇는 동북아의 해상권을 장악하고 우리 민족의 웅대한 기상을 떨친 무역상이자 군인이었고 정치가이자 항해가(航海家)이고 특히 당나라를 떠돌던 우리 유민을 거둔 박애주의자(博愛主義者)였다. 장보고대사는 대략 790년경 완도에서 태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어려서의 이름은 궁복(弓福). 궁파(弓巴). 장보고(張保皐)로 되어있고 일본의 역사서에는 장보고(張寶高)로 되어있다. 대사는 일찍이 그이 친구이자 동료인 정년(鄭年)과 서기 810년경 중국으로 건너가 무령군소장(武令軍少將 우리나라의 대~연
소안면에서 근무하다 고금면사무소로 자리를 옮긴 김현미 팀장. 지난 호에 소개된 김동일 님의 취재 차 고금면사무소를 방문했을 때, 뜬금없이 한 사람을 데리고 나타나 다짜고짜 하는 말이 "사회복지직인데요 고흥군청에서 근무했어요" "고금면에서 축양장을 하는 남편을 따라 왔어요! 이쁘지 않으십니까?"김 팀장의 말에, 묻기를 "타 지자체로 전출하게 되면, 한 직급 내려서 오잖아요"김 팀장은 "당연히 내려서 왔죠" 그 뒤로 "체전" "자원봉사" 기타 등등 무슨 말을 했던 것 같았는데, (전라도 말로 무엇인가 사끌라는 뉘앙스도 있어서 경계심에)
인간은 자신의 별이다. 정직하고 완전한 인간을 만들 수 있는 영혼은 모든 빛과 모든 힘과 모든 운명을 지배한다. 그에게는 어떤 일도 너무 빠르거나 너무 늦게 일어나지 않는다. 우리의 행위는 곧 우리의 천사. 선이든 악이든, 조용히 우리와 함께 걷는 운명의 그림자다.이 아름다운 말은 소문난 독서광인 버락 오바마 미국 전대통령이 가장 애독하는 책 중의 하나인, 랠프 월도 에머슨의 ‘자기 신뢰(self-reliance)’ 서문에 인용된 시다.언제나 사소한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생각은 일상의 감각이 더해져 한 사람의 태도를
내가 숲으로 간 것은 신중하게 살기 위해서, 삶의 정수만을 마주하고 싶어서, 그것이 가르쳐 주는 것을 내가 배울 수 있는지를 알아보고, 내가 죽을 때 진정으로 살지 않았음을 후회하지 않기를 바라서였다. 나는 진실로 삶이 아닌 삶은 살고 싶지 않았다. 삶이란 너무나 소중한 것이고, 삶에서 꼭 필요한 것이 아니라면 체념이라는 것은 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길게 살고 싶었고 삶의 골수를 모두 빨아들이고 싶었으며, 삶이 아닌 것은 모두 뿌리 뽑아 버리는 스파르타인들처럼 강인하게 살고 싶었다. 넓게 베어내고 가까이 잘라내 삶을 구석까지 몰고
천하를 살아감에 있어 반드시 그래야한다는 마땅한 법도 없고, 그래선 절대로 안 된다는 법도 없다. 있다면, 의로움을 잣대로 삼아 해야하고 안해야만 있을뿐.조선후기 과거시험에도 채택됐다는 삼국지.삼국지는 천하의 인걸들이 드넓은 전장에서 다양한 전략과 전술을 펼치며 천하통일을 목표로 싸움을 펼치는 인문고전으로써 오늘날까지 가장 사랑받고 있다. 삼국지의 백미 중 하나는 폭발적인 전투력으로 조조의 백만 대군을 필마단기, 창 한자루로 가로지르며 주군인 유비의 아들 아두를 구출해 온 장면. 최고의 명장면으로 꼽히는 상산 조자룡이다.유비마저 자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만큼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신약에 나오는 말씀인데, 우리의 길이란 함께 가는 서로의 등 뒤에서 만들어진다는 것.길을 가다 샘 곁에 심어진 나무가 풍성해져 가지와 열매가 담을 넘어 이웃에게 유익을 준다면, 그 길은 가도가도 눈부시게 아름답기만 하고 가도가도 그 삶은 눈물겹도록 사랑스럽기만 하다. 돌아보면 남는 것, 그건 내가 얼마나 그 순간을 사랑했느냐로 설령 지금 받고 있는 것이 오해의 돌팔매일지라도 사랑하고 있음으로 맞을 수 있는 것이다.7월 초 군의회에 방문했을 때, 낮선 남자의 모
흔히들 목표를 세우는 건, 답을 찾아가기 위해서라고 하는데, 답보다 더 중요한 건 답을 찾는 시간 속 몰입이고, 그 보다 더 중요한 건 답을 찾는 과정에서 주어지는 나의 성장이다.그래서 나의 성장이란 실패냐? 성공이냐 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되는 거라서, 그래서 지금 이 순간이란 정성과 집중을 다해 혼을 쏟아낸 정신으로 임하는가다.그러면 분명 성장하게 되는 것이고, 성장하게 되면 지금 내가 이해할 수 없었던 많은 문제들이 풀린다. 성장하려는 그 자세와 마음가짐이 태도인 것이고, 그래서 누군가를 떠올릴 때 실력이 아닌 태도의 말들을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저 안에 천둥 몇 개, 저 안에 번개 몇 개가 들어서서, 붉게 익히는 것일 게다. 저게 저 혼자 둥글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무서리 내린 몇 밤, 저 안에 땡볕 한 달, 저 안에 초승달 몇 날이 들어서서, 둥글게 만드는 것일 게다. 대추나무야. 너는 세상과 통하였구나!읽는 이에게 무릎을 치게할만큼 통쾌감을 주는 장석주 시인의 대추 한 알. 쉬운 것이라고는 없다. 무릇 하나의 생명이 된다는 건 온우주와 함께하고 있다는 말로, 누군가는 너를 돕고 있으니 너도 할 수 있어, 기다려
극단의 절도에 섰다는 건, 존재에게 주어진 전신전심전령(全身全心全靈)에 대한 성찰의 시간이 찾아왔다는 말. 그 성찰의 눈부신 비밀을 머금은 태도의 입술은 마침내 사상을 말한다. 인간이든 계절이든 어느 지점에 이르러 극한의 순간이 찾아오는 건, 본질에 대한 탐구의 시간이 필연적인 상황을 맞이했다는 말이기도 하다.다소 무모해 보이거나, 아님 정치적 이득을 얻기 위해서. 판단하기 어려운 측면이겠으나, 지도자라면 어떠한 말이 들릴지라도 마땅히 저리해야 한다.지난 27일, 국회 앞에서 8일 만에 단식 중단을 선언한 윤재갑 국회의원을 만나러
“모모는 철부지~ 모모는 무지개~ 모모는 생을 쫓아가는 시곗바늘이다~ 날아가는 니스의 새들이 꿈꾸는~ 모모는 환상가~ 그런데 왜 모모 앞에 있는 생은 행복한가”한 때 선풍적인 인기를 누렸던 모모라는 노래가 있었다. 경쾌한 선율에 모모를 철부지·무지개·시곗바늘·방랑자로 표현하며, 격동의 역사 속에서 나아갈 길을 고뇌하던 젊은이들에게 이러한 질풍노도의 표현으로써 많은 공감을 받았다.그런데 많은 이들이 모모가 누군데, 또 니스는 무엇인데하는 의문을 가졌는데, 여기서 모모는 프랑스의 소설가 로맹가리의 '자기 앞의 생'에 나오는 주인공 모하
기도는 나의 음악 가슴 한 복판에 꽂아 놓은사랑은 단 하나의 성스러운 깃발 태초부터 나의 영토는 좁은 길이었다 해도고독의 진주를 캐며 내가 꽃으로 피어나야 할 땅 인물 사진을 본 순간, 이해인 수녀의 민들레 영토가 떠오르는 귀인지상의 풍모.당신의 영토는 무엇이고, 어디까지인가의 물음이 주어진다면, 당신은 무엇이라 말하겠는가.서중호 아진산업㈜ 대표. 그는 지난달 31일 완도 문화예술의 전당에서 열린 제52회 완도군민의 날 기념식에서 명예 군민 증서를 받았다. 서 대표는 2014년부터 지금까지 전복 홍수 출하 시기 및 코로나19 장기화
본성의 완전한 자유를 따르는 이가 본질에 머무를 수 있을 때, 그는 가장 멀리 가 본 자다.지금 이 순간을 살기 위해 지금 내가 무엇을 해야하는지를 묻는 철학적 명제로, 초절정 무사들에게 주어지는 첫번째 계명은 어떤 순간이 찾아오더라도 "결코, 머뭇거리지 말라"다. 그 머뭇거림이 없는 상태가 됐을 때 검은 더 이상 검이 아니고 목적은 더 이상 목적이 아닌, 모든 상황에 대해 즉각적인 반응으로 기술과 정신과 마음이 하나된 일체, 그 일체를 얻을 수 있을 때까지 밤낮으로 수천 번을 베면서 기술을 익히고 기술 이후의 정신과 마음에 가 닿
극진 가라데의 창시자, 최배달의 스승인 전설적인 사무라이 미야모토 무사시가 그런 말을 한다."승리에 우연이란 없다. 1천일(日)의 연습을 단(鍛)이라 하고, 1만일(日)의 연습을 련(鍊)이라 한다. 단련(鍛鍊)이 있어야만 승리를 기대할 수 있다" "지금 이 순간, 싸우고 있는 적(敵)이 마지막이다. 싸움은 지금 이 순간뿐이라 생각하라. 목숨을 건 싸움에서 이번엔 졌지만, 다음엔 이긴다라는 말은 통하지 않는다" 무사의 도나 수행의 도가 다르지 않듯 단련은 내가 가보지 못한 끝을 가게 한다. 늘 문제는 끝을 안가서다. 끝까지 갔다고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