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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동하는 음율 수정처럼 빛나고 상아처럼 매끄러워

추억이 아닌 꿈꾸는 완도청년, 완도의 시시상청 최현희국악학원의 최현희 원장

  • 김형진 기자 94332564@hanmail.net
  • 입력 2023.10.19 15:33
  • 수정 2023.10.20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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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 밖으로 무게 없는 소리들이 날개를 달고 나오자, 가슴을 경작하는 손길이 닿는 곳마다 폭포의 중력으로 쏟아져 내려 만인의 어깨와 머리 위에서 춤추고 노닌다.
가늘고 뾰족한 소리의 음표 하나 하나가 살갗을 뚫고 들어와 핏줄기를 따라 심장으로 돌진해 압도적인 힘으로 멈춰 섰을 때, 내 몸을 뚫고 들어오는 예술, 바로 우리의 소리다.


그 소리에 익사 당하려고 할 때, 폭풍같은 음율은 사랑의 번개와 충돌이라도 한듯 맹열한 폭포의 끊임없는 소리 가운데 서 있고 그 소리의 중심에서 흠뻑 젖어 버린다. 
그렇게 당신의 몸이 젖지 않는다면, 귀를 막고, 소리 중의 소리를 들어 보라.
누군가 들어보라면서 유튜브 동영상을 보내왔다. 유튜브 제목은 2021학년도 전남대학교 국악학과 졸업연주회에서 흥보가 구만리 中 최현희.


흥부가 구만리는 중중모리로 유색황금눈에 새들이 날아 들어와 울음으로 우는 대목, 아름다운 새소리를 재치 있게 묘사함으로써 신선하고 화사한 멋을 한껏 살려내고 있는데, 안정적인 중하성(아랫소리의 음)부터 시시상청(최고조의 고음)까지 거뜬하게 소화해내는 탁월한 목청이다.


마치 은빛 물고기가 찬란한 아침햇살에 뛰어오르 듯 생동하는 음율은 수정처럼 빛나고 상아처럼 매끄러워 만인을 기쁘게 한다.
이 장면은 제비가 강남으로 떠나면서 작별을 고하는 대목이다. 이별을 그려내기에 계면조로 되어 있지만, 자연의 섭리에 따라 헤어지는 것임으로 지나치게 슬프지 않게 묘사하는 것이 특징인데, 다시 만날 기약을 하면서 염려와 섭섭함, 그리움을 표현해 내는 것을 덕목으로 친다.

다른 고전과 함께 흥부전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권선징악으로 옛날 사람들은 사람다운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이러한 소리를 통해 계몽하려 했다.
그래서 판소리는 하는 사람의 인성이 돼 있지 않으면 안되는 게 본질이고 본질을 찾아가는 여정이 판소리의 진수. 그렇기에 판소리 스승들은 그것부터 가르친다. 기교나 재주가 너의 혼과 정신을 넘어서면 절대 안된다고. 판소리를 한다는 건, 소리의 득음 과정을 통해 도(道)에 이르는 길. 


그래서 예인으로 불리며, 예인의 첫째부터 마지막은 그러한 인성과 기본을 벗어나지 않아야한다는 것. 


몇 해 전, 고금면의 매숙 님의 말이, 우리 딸 노래해요! 그 말에 가수지망생인가 싶었는데, 국악이라고 했다. 완도읍내에 학원까지 냈다는 말을 전했는데, 글과 예술 모두 인연 따라 오는 것이라서 기회가 있겠지 싶었다. 그러다 지난 15일, 완도에서 열리는 전국체전 역도 경기장에서 우연히 최현희 원장을 만났다. 역도 경기를 담기 위해 자원봉사 중이라는 동생을 응원차 왔다고 했다. 


최 원장의 엄니 고향의 오빠라고 밝히며 삼촌이라 여기라했더니, 뭐가 부끄러운 듯 얼마 있지 않아 홀연히 떠났다.
자신의 이름을 내 건, 최현희국악학원의 원장. 1996년생. 고금면이 고향이라고 했다.
완도읍내에서 최현희국악학원을 운영하면서 학생들의 수업을 돕고 있으며, 국악인으로서 국악공연과 학교에서 강사로도 활동하고 있다고. 


갸야금을 연주하면서 노래를 부르는 가야금병창을 전공한 국악인이라고 했다. 
국악은 초등학교 1학년 때 고금초등학교 방과후학교를 통해서 가야금병창을 처음 접하게 되었다고. 어릴 때라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음악을 좋아하고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해서 가야금병창을 꾸준히 배웠다고. 엄마의 말은 책을 그렇게 열심히 읽었다고 했는데, 최 원장은 학교에서 계속 배우다 방과후학교 강사로 오신 이의 스승을 찾아 본격적으로 배웠다고 했다. 


초등학생 때부터 중학교까지 버스를 타고 광주를 오가며 가르침을 받게 되었고 방학 때는 한 달 내내 광주에 올라가서 산공부를 하면서 대회를 나가거나 공연을 했다고. 어려웠던 순간에 대해 최현희 원장은 "대학교를 졸업하고 완도로 돌아오니 생각보다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습니다. 공연이나 수업이 없었고 학원을 차리려고 하니 읍에 마땅한 자리가 없어 학원을 차리는 데에도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졸업 후, 6개월 동안 하는 것 없이 쉬는 기간이 있었는데 그동안에 할 수 있는 일도 없었고 찾아주는 사람도 없어서 쓸모 없는 인간으로 느껴졌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하지? 국악인으로 생계를 이어갈 수 있을까? 이 사회에서 한 사람의 몫을 할 수 있을까?"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었습니다. 지금은 감사하게도 공연에 불러주시는 분들도 계시고 학원생도 조금이지만 함께하며, 외부수업도 나가고 있습니다"
"내 자신이 한심하게 여겨지는 감정 때문에 참 힘들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기뻤던 순간에 대해 최현희 예인은 "공연을 할 때 제 노래를 듣고 눈물을 흘리거나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흥겹게 춤추는 분들을 볼 때, 아 소리가 타인의 감정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고 있구나" 


그렇게 희로애락을 느끼는 모습을 봤을 때 예인으로서 기쁜 순간들인 것 같다고.  
더불어 "독주회와 공연 등에 시간을 내서 찾아와주는 지인분들을 보면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구나 싶어 이 자리를 빌어감사함을 전합니다" 


"고마운 사람은 참 많지만, 가장 고마운 사람을 꼽아본다면 저의 부모님. 최일권 아빠와 김매숙 엄마가 아닐까요? 태어날 때 저에게 음악적 재능을 물려주시고, 자라면서 하고싶은 모든 걸 할 수 있도록 물심양면 지원해 주셨고, 대책없는 결정을 할 때도 항상 지지해 주시고, 완도에 돌아왔을 때 저를 알리기 위해 여기저기 소개하는 모습은 부모님의 딸로 태어난 것이 그렇게 뿌듯할 수 없었습니다" "할 수 있는 건 노래밖에 없었던 제가 국악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온전히 부모님의 덕입니다" 


예인 최현희 님은 "국악이 어렵게 느껴지는 장르라는 걸 잘 알지만, 저의 공연이나 수업을 통해 완도군민께서 국악이라는 것을 쉽고 재밌게 접할 수 있도록 하는 다리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노래와 가야금에 관심 있으시다면 최현희국악학원 많이 찾아주세요"
"계속 완도에 살았었지만 대학을 졸업하고 완도에 내려와서 새롭게 알게 된 분들이 참 많습니다. 제가 공연할 수 있도록 저를 발굴해주신 분들, 저를 지지하고 사랑해주는 가족, 스승님, 친구, 이모, 삼촌들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부끄럽지만 부끄러움이 없는 소리, 최현희 예인이다. 그 소리는 원한과 증오를 뚫고 들어가 몸과 소리의 생기 속에서 궁극의 열린 창을 열어 하늘의 음계를 자유로이 오르내리고, 땅의 오선지를 마음껏 내달리면서 섬광같은 화살로 인간상 칠정오욕을 모조리 꿰뚫으며, 그래서 듣는 순간에 당신과 내 몸이 만드는 떨림과 울림 안에서 일월성신과 천지신명을 만나 온 세상 맑은 바람이 되어 존재의 신명을 완성시키는 순간이 오기를 희망한다.


그래서 다만, 다할 수 있는 만큼 사랑하고 사랑할 뿐이라고. 천상과 지상을 넘어선 영혼의 득음을 응원합니다. 완도의 시시상청 최현희 소리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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