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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면장의 편지, 백석의 손목 잡았던 의원의 손길 같았다

딸이 근무하는 고금면사무소 찾아 1일면장 송기주 조정애 님

  • 김형진 기자 94332564@hanmail.net
  • 입력 2023.09.27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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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소유의 법정스님이 살아 생전, 천억원을 받은 적이 있었다. 그 천억원이란 돈은 대원각이라는 큰 요정을 운영했던 김영한에게서 받게 된 것이었는데, 김영한이 누군가 하면. 시인들이 가장 사랑한 시인 백석을 한 남자로, 그녀는 북에 있는 정인을 한평생 그리워했다. 영한은 싯가 천억원에 해당하는 대원각을 무소유의 가치를 실현하던 법정스님에게 "받아라"했고 법정스님은 "못 받는다". 이런 실갱이를 십년동안이나 하다가 결국 법정스님이 받아 송광사의 재산으로 등록한 후 길상사로 변모됐다.


대원각을 넘기고 얼마 후, 기자가 영한에게 묻기를 "천억원이 아깝지 않으세요?" 그러자 자야 김영한은 "천억원? 그건 그 이의 시 한 줄 값도 안돼"


정말 천하 여걸다운 풍모. 아름답게 빛나는 려인(麗人)이다. 그 백석이 젊었을 때의 일. 타향에 살고 있던 백석이 어느 추석 무렵, 그날따라 몸이 엄청 아파 밤새 끙끙 앓았다. 다음 날 아침 한 의원을 찾았는데, 의원의 상이 마치 부처 같이 온화하더란다. 


의원은 말없이 백석의 맥을 짚어 보더니, 한참동안 병명이 무엇이다 말하지 않으면서 백석의 얼굴만 바라보고 있다가 조용히 "고향이 어디냐?"고 물었단다. 백석이 "어데입니다"했더니, 다시 의원은 "그곳은 누구의 고향인데, 혹 그를 아느냐?"고 물으면서 그와 둘도 없는 사이라고 했단다. 


그 말에 백석은 "우리 아버지입니다"
그러자 의원은 가볍게 웃은 후, 다시 백석의 손목을 잡아 진맥하더란다. 그 순간 백석의 병은 씻은 듯이 다 나아 버렸다. 백석은 향수병에 걸려 있었던 것. 


아버지 친구의 손을 잡은 것만으로 마치 아버지를 만난 듯 향수병이 치유된 것.


8월 말쯤 본지에 소개된 고금면사무소 송은미 주무관의 부모님이 지난 12일 고금면사무소를 방문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 소식을 듣고 바람처럼 날아갔는데, 면장실의 탁자 위에는 먹음직스러운 떡과 포도가 놓여 있었다. 
아버지는 "우리 은미를 아껴준 고금면민에 대한 이바지다"고 했다. 방문한 사연은 신문 보도 후 고수영 고금면장이 쓴 편지 때문이었다고.


얼추보니 악필같은 달필의 필체로 4장의 편지. 그 편지와 함께 딸이 소개된 완도신문 그리고 도지사 표창장과 고금면의 일반현황이 함께 동봉돼 있었다고 했다. 그리고  편지 말미에 고수영 면장이 은미 씨의 부모님을 고금면에 꼭 초청하고 싶다는 당부까지.

 

자녀를 둔 부모 마음이 그렇다. 곁에 있음 작은 거 하나라도 직접 챙겨 줄 수가 있는데, 타향에 나가 곤란한 일을 겪으면 어쩌나 늘 걱정하는 처지란 것. 
그런데 저러한 편지를 받게 되면, 걱정하고 우려했던 마음이 단박에 씻겨 나갈 터.

 

고 면장의 편지는 마치 백석 시인이 밤새 끙끙 앓다가 다음날 찾아간 병원에서 의원이 잡아 주는 손길과 다르지 않았다. 


고흥이면 고금까지 대략 2시간의 거리, 한달음에 달려갈 수 있는 거리지만, 그게 또 쉬운 게 아니라서.
아버지는 다감했고, 엄마는 단단해 보였는데, 편지를 보고서 딸이 한 직급 내려서 갔다는 걸 알았단다. 속상하며 울컥했다고. 딸에게는 늘 “적당히 항상 중간만 하면 된다”라고 말해 왔는데, 그 부모에 그 딸인지라 인구 4천명이 넘은 고금면민들의 복지 증진을 위해 주어진 업무에 최선을 다하고 면민들로부터 사랑과 칭찬을 받고 있었다. 그게 너무 대견스러워 중간만 하면 된다고 했던 말이 너무 미안하고 부끄럽다고 했다.


고 면장이 쓴 편지에는, 설군 이후 처음 개최된 전남 도민체전과 전남 장애인체전. 양대체전의 성공을 위해 송은미 주무관이 이른 새벽부터 자원봉사를 준비한 모습이란 너무도 감동스러웠고 그 덕분에 양대 행사가 매우 성공적으로 끝났으며, 고금면에서는 은미 씨의 솔선수범과 선행을 전남도에 올려 도지사 표창까지 받게 되었다는 이야기. 


그러며 평소 딸의 모습이 어려운 소외계층과 민원인에게 늘 부모형제처럼 따뜻하게 맞이해 주고 있어 면장으로서 이런 훌륭한 직원과 함께 근무할 수 있는 게, 참 행복하고 자랑스럽다는 말과 함께, 부모님을 딸이 근무하는 고금면사무소에 일일면장으로 초청한다는 내용이었다고. 


송은미 주무관의 아버지, 송기주 1일 면장은 고흥군 농촌지도소에서 공직자의 생활을 시작하였다고 했다. 지역에서 3년 정도 공직생활을 하다가 타지역으로 발령을 받았는데, 그때 은미 씨의 할머니인 어머니가 이상 행동을 보였다고. 어머니를 모시던 장남은 집을 떠났고, 다른 자녀들 또한 어머니를 모시지 않은 상황에서 은미 씨의 엄마, 조정애 님은 "여보, 우리가 모셔요" 그 말에 송기주 1일면장은 공직생활을 그만두고 어머니를 모시며 정미소를 운영하였단다.


송기주 1일 면장에게 어머니는 자신을 낳아줬으며 또 자신을 살려내 제2의 인생을 살게 해 준 분이라고 했다. 송기주 1일면장이 23살 때 아내 조정애 님과 연애하던 시절, 임파선암 진단을 받았단다. 아들이 암인 것을 안 엄마는 전남대 병원과 광주기독교병원, 전주의 병원까지 잘한다는 병원이란 병원을 모두 찾아다니며 아들을 살려내려 갖은 애를 썼는데, 그때 끓여낸 누룽지와 개를 잡아 밀가루와 버무린 음식을 마련하며 이루 말할 수 없이 고생했다고. 


항암치료와 여러 의술을 병행하면서 몇 년동안 시련과 아픔을 겪었다고. 그걸 견딜 수 있었던 것은 어머니의 정성과 희생. 결국 완치 판결을 받았는데, 당시 아내가 된 조정애 님이 보여준 모습 또한 멋지기 그지 없다. 


정애 님은 이런 희생과 인내로 아들을 살려준 시어머니를 어떻게 혼자 지낼 수 있게 하겠냐면서 치매에 걸리신 시어머니를 송은미 주무관이 1살 때부터 모셨다고. 지금이야 치매라는 단어도 있고 이상한 행동에도 설명이 되지만, 45년 전엔 치매라는 단어를 모르는 시절, 고생을 너무 많이 했단다.


어머니의 이상행동을 보면서 행복해야 할 가정 생활이 더 어려워지고 가정에서 돌보는 것이 힘들 수도 있다고 고민하던 상황에서 22년 모시던 어머니를 갑작스런 교통사고로  떠나 보내게 됐는데, 앞으로 노인복지가 심각한 현실이 되겠구나 싶어 고흥군 최초로 노인복지시설을 설립하였다고 했다.


이야기를 듣다 보니 은미 씨의 엄마, 조정애 님이 대단해 보였다. 아들과 딸이 혈연으로 맺어진 게 정연(情然)이라면, 며느리와 사위는 의(義)로 맺어진 의연(義然).
정이라는 건, 내 마음이 저절로 되는 것이고 의라는 건, 내 의지가 발현되어야 가능한 도리의 정신. 


정으로 하는 건 쉽다. 그러나 의로 한다는 건 정보다 천배는 더 어려운 법. 
연애시절 암 투병으로 2세를 낳지 못한다는 말에도 맺어진 인연을 따라 시집을 가 아들 딸을 낳아 훌륭하게 키워냈다. 보통 사람이 하기는 어려운 일. 


20년 전 고흥에서 처음으로 사단법인 사회복지시설을 신설하는 과정 또한 매우 힘들고 어려웠으며 자립으로 운영했던 자료와 연탄배달, 김장 봉사 등 그동안 자원 봉사를 했던 자료 등을 바탕으로 전남도로부터 어렵게 법인설립 허가를 받았다고 했다. 


현재는 고흥에서 통합재가복지센터, 요양원과 재가복지센터, 요양보호사교육원, 지역아동센터를 운영하며 지역사회복지에 선한 영향력을 줄 수 있게 노력을 하고 있다고. 끝으로 할 말이 없냐는 말에 부모님은 "우리 은미를 딸처럼 며느리처럼 사랑해주신 완도군민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했다.


고수영 면장의 마음도 도타웠다. 요즘 세상, 누가 한 자 한 자 손편지를 쓰겠는가. 1일면장으로 모시는 그 마음씀도 돋보였다. 이왕이면 명패를 만들어서 명패를 선물로 드렸으면 좋았을 터, 자신의 명패 위에 검은 종이에 이름을 새겨 붙여놨다. 그럴 줄 몰라 그러했겠냐만, 이 얼마나 아름다운 정경인가! 대한민국 봉사상 중 가장 권위 있는 청백봉사상이 그냥 주어지지 않았다. 


사진=최현빈 님

 

고향/백석

나는 북관(北關)에 혼자 앓아 누워서 
어느 아침 의원(醫員)을 봬었다 
의원은 여래(如來) 같은 상을 하고 
관공(關公)의 수염을 드리운 채
먼 옛적 어느 나라 신선 같았는데 
새끼손톱 길게 돋은 손을 내어 묵묵하니 
한참동안 맥을 짚더니 문득 고향이 어데냐 한다 
평안도 정주라는 곳이라 한즉, 
그러면 아무개씨 고향이란다 
그러면 아무개씨를 아느냐 한즉, 
의원은 빙긋이 웃음을 띠고 
막역지간(寞逆之間)이라며 수염을 쓸는다 
나는 아버지로 섬기는 이라 하자 
의원은 또 다시 넌지시 웃고 
말없이 팔을 잡아 맥을 보는데 
손길이 한없이 따스하고 부드러워 
고향도 아버지도, 아버지의 친구도 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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