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와 나무 사이에 흰 눈이 휘날리면 그 너머 어렴풋이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나무와 나무 사이에 꽃이 피면 옛사랑이 떠오른다.나무와 나무 사이에 열매가 맺으면 그리움이란 무게는 가지를 휘게 한다. 나무와 나무 사이에는 유한한 공간이다.하지만 심연을 관통할 수 있는 무한한 공간이기도 하다. 나무와 나무 사이에서 세속적 욕망을 벗고 아름다운 향기로 다시 태어나게 한다. 나무와 나무 사이에는 봄을 기다리게 하고 보고 싶은 사람을 더욱 보고 싶게 한다. 비가 오면 그냥 비를 맞고 바람 불면 바람 부는 대로 나무 사이의 길을 걸으라 한다.
하늘과 바다가 있는 곳이면 송악이 있다. 태곳적부터 송악은 그런 운명인 줄 모른다. 서로를 알아볼 수 없는 운명 말이다. 우리는 고상한 미래를 꿈꾸면서 불안해한다. 열렬히 사랑하면서도 그 사랑에 대한 운명을 확신할 수 없다. 온전한 사랑을 나눌 시간적 한계가 공간적 한계도 가져온다. 몇 사람들만으로 세상을 이해하고 깨달아야 할 운명에 처한다.사시사철 변함이 없는 사철나무도 계절에 따라 많이 바뀐다. 바람과 물 그리고 햇빛의 양에 따라 그 모습들이 다르다. 미미하게 스쳐지나가는 자연 속에서 사랑과 복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가야 당연한
뚝새풀은 남도에서는 독새기라고 한다. 인간적으로 몰인정 하는 사람에게 독새 같은 놈이라고 한다. 독새라는 말은 독사 또는 독수리의 방언도 있다. 이른 봄에 폭신폭신한 초록 들판이 되어 사료가 없던 시절 가축의 먹이로 이용했다. 그런데 왜 둑새기풀을 독한 놈으로 말해 왔을까? 아마 보리밭에 앉아 있는 어머니가 안타까워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하늘 종일 보리밭을 매도 둑새풀은 보리밭에 그대로 앉아 있다. 그만큼 둑새풀이 많았다는 뜻이다. 모내기 전 논에는 온통 둑새풀 천지였다. 연한 녹색의 이삭에 흰색, 갈색 꽃밥이 덮여 있다.뚝새풀은
처마 아래로 햇살이 깊어지기 시작할 무렵이면 시골집 장독이나 울타리 밑 작은 화단에는 주렁주렁 열린 꽈리가 붉게 익어간다. 서리가 와도 열매를 감싸고 있는 껍질이 있어 상하지 않는다. 꽈리는 가지과에 속하는 다년생 식물이다. 한 번 화단에 심어 놓으면 매년 봄마다 새로 싹이 돋아나서 어른 무릎 위까지 자란다. 유월 하순이나 칠월쯤에 희고 작은 꽃을 피운다. 작은 꽃이라 잎에 가려져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못한다.그러나 열매가 되면 흰 도화지에 주황색 물감을 풀어 놓은 듯이 아름다운 색감으로 감돌게 한다. 열매를 싸고 있던 껍질이 불그
7월의 한밤중에 치자꽃 향기는 막혔던 가슴을 시원하게 뚫는다. 한번 스쳐가는 향기인데도 영원히 기억되는 꽃이 치자꽃이다. 꽃은 단잎으로 소소하게 피면서 그리 수다스럽지 않고 단아한 모습이다.집안 뜨락에 한 그루쯤 심어 습도가 많은 여름 날씨에 쾌청한 분위기를 만든다. 산속 깊은 산사를 찾으면 치자꽃 향기가 먼저 맞이한다. 옷깃만 스치는 사람 사이에서 치자꽃 향기는 잊을 수 없는 관계일 수 있다. 치자꽃 향기 옆에 그 사람이 좋은 일이든 슬픈 일이든 기억된다. 아마 슬픈 일이면 세월이 흘러 넘실대는 강물이 되었을 것이다. 필 때와 질
괭이밥은 추위도 잊은 채 양지바른 담 밑에 아스라이 몇 송이 꽃을 남겨 놓고 있다. 12월에도 괭이밥 잎들은 땅에 엎드려 멀어져가는 해를 바라보며 간신히 피어 있다. 잎이 파란 이 야생화는 사람 사는 곳에서 많이 보인다.잎이 약간 빨간 괭이밥은 주로 텃밭에서 자라 어머니들의 손을 바쁘게 만든다. 잎이 조금마고 키가 작은 괭이밥은 잔뿌리가 많아 단단하게 터를 잡는다. 시멘트 사이에서 가느다란 햇살만으로 살아간다. 생명력이 강인해 도시 어느 곳에서도 잘 견뎌낸다. 햇볕이 아늑하게 내려앉은 돌담에서 노란 꽃잎은 재잘대는 아이들의 웃음처럼
11월의 산 숲에는 작은 우주가 생겨난다. 빨갛게 마지막 여운을 달아놓은 산가막살 열매, 나지막하게 부엉이 소리에 묻어 있는 노린재나무의 검은 열매, 5월의 향기를 모두 모아 놓은 찔레꽃 열매, 마지막 한 해를 보내기 아쉬운 듯 올가을의 서정을 고스란히 담아둔 빨간 명감나무 열매, 절반은 노랗고 그 나머지는 바래버린 낙엽에서 우수에 잠겨있는 댕댕이덩굴 열매는 점점 넓어지는 겨울 공간에 아스라이 아늑한 마음을 채워가고 있다. 봄여름에 보이는 것들은 허공으로 돌아가고 지금까지 비워두었던 것들은 마른 나뭇가지에 작은 우주처럼 생겨나고 있
굽이 돌아가는 강물에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산언덕은 바람에, 골짜기 물길에 굽이 돌아간다고 아무 말 하지 않는다. 산 위에서, 하늘에서 세상이 굽이 돌아간다고 아무 말 하지 않는다. 그저 바라만 볼 뿐이다. 굽이 돌아가야 부딪치지 않는다. 자연은 이렇게 수없이 가르치고 있는데 금수강산을 망가트리고 있다. 11월은 추풍낙엽의 계절이다. 아무리 높은 권세라도 10년을 가지 못한다. 입이 열 개 있어 봐야 소용없다. 자연은 진실만 말한다. 문명의 탈을 쓰고 자연을 망가트린 죄는 영원한 죄다. 지금 이 땅은 우리들의 땅이 아니다.길이 후손
늦가을은 느림의 미학이다. 그냥 시간이 멈춰있는 듯 시계는 한 곳에 집중되어 있다. 아름다움이란 내일이 아니다. 순간순간 눈 마주침이다. 늦가을은 단순하면서도 풍요로운 마음이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는 산감이 주홍색을 띠고 있다. 바로 앞에서는 마른 꽃처럼 달린 노박덩굴 열매가 가을을 장식하고 있다. 느린 걸음 옆에 주홍색으로 변한 꽈리 열매도 볼만하다. 해가 점점 남쪽으로 치우쳐 주홍색을 띠는 열매들이 가을빛을 통과시키고 있다.느린 가을 햇빛이 창호지를 통과해 내 마음마저 비쳐오면 차분해진다. 늦가을에는 돌아가야 보인다. 바른 선으
용담 꽃은 가을 산등성에서 투명한 가을빛에 뚜렷하게 보인다. 용담 꽃보다 아주 작은 구슬붕이 꽃은 봄에 핀다.크기는 다르지만 꽃 모양과 색깔이 비슷하다. 용담 꽃은 산등성에서 피고 구슬붕이는 산 아래에서 핀다. 이 두 꽃은 길가에서 핀다. 봄 길을 가는 사람들은 부지런한 사람이다. 가을 길을 걷는 사람들은 뒷모습은 쓸쓸하지만 아름다운 마음을 노래한다. 용담꽃 주위에는 억새꽃도 있고 자주쓴풀도 있고 산부추도 있다. 이들은 한결같이 가을 정취를 노래하고 있다. 산등성에서 마른 풀잎 사이에 가을 하늘을 고스란히 담는 용담꽃은 느린 가을
계절에 따라 옷을 입는 자연에서 우리의 마음도 옷을 입는다. 이른 봄에 새순은 순한 마음이 자랄 수 있도록 돕는다. 봄은 온유한 마음을 갖지 않고서는 진정한 봄을 느낄 수 없다. 봄은 마음에서 미리 준비해야 온전히 맞이할 수 있다. 그 기다림은 봄의 길이를 늘일 수 있다.그래서 기다림은 외롭지 않다. 5월이 되면 연초록의 순한 잎들은 꽃물결보다 더 아름답다. 그래서 시인들은 초록꽃이라고 부른다. 그 연한 꽃잎들은 강한 햇빛을 받고 엽록소를 만들어 녹음의 계절, 여름을 맞는다. 엽록소를 많이 함유해야만 가을에 이르러 단풍이 들 수 있
기다림은 사물을 깊게 보게 한다. 기다림이 가장 가까운 데에서 출발한다. 밤하늘에 별을 보게 하는 데에는 가슴 깊은 곳에서 기다림이 있다는 뜻이다. 가장 작은 풀잎에 이슬방울을 보게 하는 데에도 기다림의 연속이다.기다림은 기다림을 낳는다. 얼마나 걸었으리라 어느덧 너의 얼굴에 내 가슴을 묻힌다. 그것은 꽃 전체 무더기가 아니었으리라. 나에게 너의 얼굴 하나였다. 그래서 이름 없이 흔들어 대는 너의 품에 안기고 만다. 가장 부드러운 바람이 지나갔다. 사나운 개 짖는 소리도 지나갔다. 여름 지나 가을에 들어서서 철모른 들꽃이 되었다가
가을의 꽃들은 그 자리에 가만히 있는다.화려한 색깔도 내지 않는다. 철새들도 떠나버린 산자락에서 침묵만으로 일상을 맞이한다.들판에 벼는 고개를 숙이고 산등성을 넘어가는 서산은 그 자리에 앉아 내 안에 나를 보라 한다. 그 화려했던 꽃물결들은 어디로 갔는지 물매화뿐이다. 단아한 꽃잎을 보면 아슬아슬하게 피었다. 다소 찬 기운이 느껴오는 가을 끝자락에 가냘픈 몸으로 핀 물매화를 산길에서 처음 만난다. 10월은 몸보다 마음이 추운 계절이다. 하지만 그리움이 잠들지 않아 마음의 불씨를 움켜잡는다. 찬바람이 먼저 와서 너의 옷깃을 만질 때
취나물은 봄나물 중에 최고로 꼽는다. 여기에서는 산나물이라고 부른다. 산에서 나는 나물로는 제일 맛이 좋아 산물이라고 부른지도 모른다. 냉장고가 없는 시절에는 햇볕에 말렸다. 지금에야 여러 방법으로 저장한다.때와 관계없이 먹을 수 있어 풍요로운 시절이다. 그러나 아쉬움도 남는다. 시절에 맞게 그리고 간소하게 먹여야 하는데 너무 복잡해졌다. 입은 하나인데 뭘 그리 복잡 다양하게 만드는지 모르겠다. 다음 주는 추석 명절이다. 고향을 찾는 사람들은 부모님이 있어 찾아오겠지만 그리운 추억도 있다.이른 봄에 말려놓았던 취나물과 밥 한 그릇이
산 너머 사는 사람들은 누구일까. 매일 해가 뜨고 보름에 둥근 달이 환하게 비쳐 오면 산 너머 마을로 가고 싶어진다. 그런 그리움이 살아오면서 많이 없어졌다. 나이를 먹으며 따라 고운 마음도 없어졌다고 볼 수밖에 없다. 매일 부딪치는 세상은 그리 녹록하지 않다. 이것을 잘못 받아들이면 스스로 인생이 어려워질 수 있다. 그래서 내심 원칙을 세운다.미리 판단하지 않는다. 살아가면서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그리고 어릴 날에 순수했던 마음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산 너머 사람들은 다 아름답게만 여겼다. 새가 울고 꽃이 피면 산 너머 산
산에는 꽃이 핀다. 주인 없이 산에는 꽃이 핀다. 하늘과 골짜기 물만이 있으면 꽃이 핀다. 누구에게 자랑도 하지 않는다. 자기의 도량대로 핀다. 어쩌다 산길에서 보이는 꽃은 수줍다고 얼굴을 붉힌다. 산에서 수행하는 자를 보고 세상이 싫어서 산으로 들어간 줄 안다. 그러나 세상을 바로 알기 위해서다. 침묵과 상상력이 풍부하게 늘어서 있는 산등성은 무한한 세계다. 그 세계는 복잡함이 없다. 고요함과 맑은 상상력이 산과 산으로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산에선 홀로 자기를 온전히 채울 수 있다.산등성에서 바싹 마른 꽃잎은 본래의 모습 그대로
꽃 자리에 열매가 맺는다. 꽃과 열매가 동시에 있을 때는 그 열매는 끝까지 달려 있을지 모르는 상태다. 꽃이 막 떨어지고 홀로 달려있어도 이때도 낙과될 확률이 높다.점점 자라면서 제 몸 크기만큼 살아남을 수 있다. 이렇게 오기까지 보이지 않는 도움이 있었다. 꽃이 피어 적절한 시기에 벌과 나비가 와야 한다.또한 날씨도 매우 중요하다. 게다가 어린 열매들은 얼마나 부드러우냐. 벌레들의 좋은 먹기 감이 되고 만다. 2중 3중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이러한 과정들은 모든 생태계가 통상 겪는 일이다. 생사의 지경은 꽃과 열매가 동시에 열려
이 꽃이 피기 시작하면 벼가 고개를 숙인다. 누런 들판 사이로 간간이 보이는 쑥부쟁이는 가을의 서정성 대표한다. 이 야생화의 필두로 그다음에는 구절초가 핀다. 은행잎이 물이 들면 감국도 노랗게 핀다. 가을의 국화는 제각각 멋이 있다. 쑥부쟁이는 가을 들판을 담고 구절초는 산 빛을 담는다. 수다스럽게 핀 감국은 느린 가을 하늘을 담는다.해국은 은빛 바다를 머금는다. 쑥부쟁이는 초가을부터 늦가을까지 핀다. 그래서 가을 들꽃이라 불린다. 논두렁에서 만난 쑥부쟁이는 간소하다. 간소하기 말 나위 없는 구절초는 주로 산에서 피어 산국화라고도
까마득한 밤하늘을 지나 푸른 하늘이 내 집에 있다. 붉은 꽃, 하얀 꽃, 노란 꽃들도 들어와 있다. 숲속에 초록 잎 위에 생각의 집이 있다. 오늘은 어떤 집을 지을까 그런 고민은 하지 않는다. 오늘 분량의 집은 내 안에 있기 때문이다.내 앞에 초록의 점들이 에워싸일 수도 있다. 생각의 점들이 희미한 산등성이를 넘어가면 기다리는 손님 같은 사람이 금방 달려온다. 8월의 저녁 더위가 약간 가면 외마디 풀벌레 소리가 들려온다. 내 속 뜰에서는 벌써 가을 노래를 하고 있다. 8월의 숲속에 콩란은 마음의 분량을 키우고 있다. 오롯이 자기들의
초록 위에 초록도 꽃이 될 때가 있다. 갓 새싹이 자라 초록의 꿈들을 펼칠 때 그 마음이 초록 비단이 된다. 가장 가난한 장독대 옆에서도 초록은 그대로의 꽃이다. 녹두꽃 저고리 옆에서 하얀 햇살을 품은 초록은 마당 한가운데서 씨를 익힌다.빨아간 치마에 녹두꽃 저고리는 참으로 가난하면서 가장 찬란한 풍경. 한 생애의 비애와 애한이 서려 있다. 초록의 물결 위에 갑자기 찾아온 빨간 꽃잎은 슬픔과 설움을 한 묶음 풀어 놓는다. 가장 깨끗한 햇빛과 가장 순한 물이 만나는 날에 꽃이 된다면 얼마나 좋으랴.그러나 그런 꽃잎은 꽃이 아니다. 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