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널 향한 그리움은 내마음의 온도

[완도의 자생 식물] 18. 물매화

  • 신복남 기자 sbbn2000@hanmail.net
  • 입력 2017.10.24 23:18
  • 수정 2017.10.24 2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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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매화.


가을의 꽃들은 그 자리에 가만히 있는다.
화려한 색깔도 내지 않는다. 철새들도 떠나버린 산자락에서 침묵만으로 일상을 맞이한다.
들판에 벼는 고개를 숙이고 산등성을 넘어가는 서산은 그 자리에 앉아 내 안에 나를 보라 한다. 그 화려했던 꽃물결들은 어디로 갔는지 물매화뿐이다. 단아한 꽃잎을 보면 아슬아슬하게 피었다. 다소 찬 기운이 느껴오는 가을 끝자락에 가냘픈 몸으로 핀 물매화를 산길에서 처음 만난다. 10월은 몸보다 마음이 추운 계절이다. 하지만 그리움이 잠들지 않아 마음의 불씨를 움켜잡는다. 찬바람이 먼저 와서 너의 옷깃을 만질 때 마지막 불씨를 불어본다.

너를 그리워하는 데에는 내 마음의 온도를 높이는 일이다. 찬 서리에 작은 꽃은 마음의 촛불이다. 그 안에 믿을 만한 세상이 있어 우연히 마주친 사람을 한 번쯤 기억하게 한다. 물매화는 매화꽃과 비슷하다 하여 물매화라고 이름 지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물매화는 높이 10∼40cm로 산지의 볕이 잘 드는 습지에서 자라는 범의귓과의 여러해살이풀이다. 다른 이름으로 풀매화, 물매화풀, 매화초, 다자매화초라고도 한다. 가을 끝자락에 아스란히 피웠다. 물매화는 가을의 풀꽃 중에서 귀엽고 앙증스럽다. 연둣빛 가는 줄기가 올라와 백매화꽃 모양으로 가을에 피어 있다.

보통 산지의 양지바른 습지에 봄의 매화꽃향기는 초록빛서 자란다고 했는데 여기에서는 바람이 잘 통한 산길이나 햇빛이 남쪽보다는 훨씬 덜 드는 북쪽 산언덕에서 많이 살고 있다. 마음속 뜰에서 간절히 원해야 만날 수 있는 꽃. 갑작스러운 만남에 놀란 물매화가 찬 공기와 그늘진 곳에서 애처롭게 피어 있다.

여러 날 동안 생각이 나서 다시 찾는 그리움도 쓸쓸한 모양인가 보다. 마른 꽃처럼 피어나는 노박덩굴 있는 길을 지나서 한참 숲길로 올라가면 물매화 피는 곳에서 엷은 가랑비 소리를 낙엽에서 들린다.

소쩍새 떠나버린 산자락에 서러운 눈망울로 피어 있는 이들은 쓸쓸한 사람이 지나가야 피어난다. 얼마나 많은 구름과 바람이 지나야 꽃이 될까. 봄에 핀 매화꽃은 하늘을 보게 한다. 가을에 핀 물매화꽃은 땅을 보게 하지만 바람과 구름을 보지 않을 수 없다. 그만큼 꽃을 보는 여운이 길다. 물매화 꽃 흔들려도 꽃잎은 흔들리지 않는다. 바람과 구름이 빗방울로 떨어진다 해도 꽃잎은 젖지 않는다. 하염없이 깊어지는 그리움만이 꽃잎을 젖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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