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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 사이 붉디 붉음으로 피어

[완도의 자생 식물] 31. 동백

  • 신복남 기자 sbbn2000@hanmail.net
  • 입력 2018.01.10 09:49
  • 수정 2018.01.10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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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와 나무 사이에 흰 눈이 휘날리면 그 너머 어렴풋이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나무와 나무 사이에 꽃이 피면 옛사랑이 떠오른다.

나무와 나무 사이에 열매가 맺으면 그리움이란 무게는 가지를 휘게 한다. 나무와 나무 사이에는 유한한 공간이다.

하지만 심연을 관통할 수 있는 무한한 공간이기도 하다. 나무와 나무 사이에서 세속적 욕망을 벗고 아름다운 향기로 다시 태어나게 한다. 나무와 나무 사이에는 봄을 기다리게 하고 보고 싶은 사람을 더욱 보고 싶게 한다. 비가 오면 그냥 비를 맞고 바람 불면 바람 부는 대로 나무 사이의 길을 걸으라 한다. 멋은 한 계절을 앞서는 데에 있다.

꽃망울이 꽃향기보다 더 깊게 다가오는 데에는 아직 기다림이 남아있다는 여지다. 나무와 나무 사이에는 현실적 공간을 뛰어넘어 나를 관조할 수 있는 거울이기도 하다. 우리는 나무와 나무 사이를 평생 걸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끊임없이 심연을 다듬고 다듬으면서 항상 깨어있으라 한다. 동백나무 사이는 어린 날에 추억의 공간이다.

나무도 그리 크지 않고 오목 불룩한 부분이 많아 오르기에 좋다. 나무에 오르는 목적은 꽃을 보기보다는 꽃 속에 단맛을 보기 위해서다. 연한 동백나무 잎들이 뭉쳐 어른 손바닥만큼 커진다. 이것을 동백 떡이라고 불렀는데 그리 흔하지 않다. 맛은 약간 떫으면서 상큼한 맛을 낸다. 동백기름은 맛뿐 아니라 지방산이 함유돼 있어 성인병 예방과 노화방지의 효능을 가진 기능성 식품이다. 또한 나무에 칠에도 좋다.

나무의 부패를 방지하고 중후한 색깔을 낸다. 어린 날에는 단맛을 느끼고자 동백꽃 찾았다. 이십대에 동백꽃 같은 시절에는 그 자체가 꽃이었는지도. 어느새 삼십 대와 사십대가 지나버렸다. 중년이 돼 버린 동백꽃은 떨어진 동백꽃도 아름답게 보인다.

이십 대처럼 감수성은 못 미치겠지만 가장 깨끗하게 핀 동백꽃을 보고 있으면 아직도 두근거린다. 동백나무 사이 길은 텅 빔과 가득 채움의 순환이 존재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도 어떠한 관계를 갖느냐에 따라 그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 혼자 즐길 수 있는 것도 생성과 소멸을 반복해 가면서 심연을 들여다보는 데에 있다.

잎과 잎 사이에, 꽃과 꽃 사이에, 나무와 나무 사이에 하염없이 비가 오기도 하고 가장 깨끗한 눈도 온다. 세월을 붙잡을 순 없지만 그 세월을 앞서기도 하면서 뒤서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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