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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 가도 아직 소녀

[완도의 자생 식물] 28. 꽈리

  • 신복남 기자 sbbn2000@hanmail.net
  • 입력 2017.12.18 09:27
  • 수정 2017.12.18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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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마 아래로 햇살이 깊어지기 시작할 무렵이면 시골집 장독이나 울타리 밑 작은 화단에는 주렁주렁 열린 꽈리가 붉게 익어간다. 서리가 와도 열매를 감싸고 있는 껍질이 있어 상하지 않는다. 꽈리는 가지과에 속하는 다년생 식물이다. 한 번 화단에 심어 놓으면 매년 봄마다 새로 싹이 돋아나서 어른 무릎 위까지 자란다. 유월 하순이나 칠월쯤에 희고 작은 꽃을 피운다. 작은 꽃이라 잎에 가려져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못한다.

그러나 열매가 되면 흰 도화지에 주황색 물감을 풀어 놓은 듯이 아름다운 색감으로 감돌게 한다. 열매를 싸고 있던 껍질이 불그스레한 색깔을 뜨이기 시작하면서 꽈리는 탐스럽게 익는다. 그 모양은 흡사 “하트”심장의 입체모형을 닮았다. 열매는 껍질 안에서 익어 작은 유리구슬 정도의 크기로 아름다운 주홍색을 띈다.

동네 여자아이들은 너도나도 모두 그 열매를 따서 꽈리를 만들어 불었다. 지금은 거의 잊히진 얘기이지만 지난 70년까지만 해도 꽈리를 따서 불고 다니는 걸 흔히 볼 수 있었다. “뽀드득뽀드득”하는 소리가 흡사 개구리 울음소리를 닮았다 하여 집안 어른들이 뱀 나온다며 호통을 쳐서 불지 못하게 했지만 마을 처녀나 심지어 아낙네들까지도 몰래 꽈리를 만들어 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 뒤 고무로 만든 꽈리가 나와 계절과 관계없이 소리를 낼 수 있었지만. 이 식물은 호흡기와 비뇨기 질환을 좋고 생리통에 효험이 있다고 한다. 치자열매와 마찬가지로 꽈리 열매도 소담스럽기 그지없다. 시간에 따라 색이 변한다. 그 속에 생명이란 씨앗은 변함이 없다.

단지 세월이란 숙명 앞에 겸허하게 수용한다는 것뿐이다. 공산품이 도래한 지 오래된 일이다. 기본적인 의식주마저 인스턴트가 되어버린 지금 놀리기구도 천편일률적어서 곰곰이 생각할 겨를이 없다. 대량생산 소비는 각자의 개성을 사라지게 하여 조화의 미를 볼 수 없게 만든다.

계절에 따라 놀이기구를 만들었던 지난날은 자연에서 얻어 만들었다. 상상력의 발현에서 만들어진 꽈리만 보아도 자연의 소리와 가깝다. 이러한 과정은 정서 순환에 순기능을 담당하게 했다. 비록 꽈리를 불고 있지 않아도 주홍색 물감이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요전에 툇마루 기둥에 꽈리 열매를 바늘로 찔러 붙어져 있었다. 주인은 우리 어머니쯤 나이다. 그렇게 세월이 가도 마음은 아직도 소녀시대다. 한 여성으로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시간이 가면 꽈리는 퇴색되겠지. 그러나 그 존재감은 더욱 확연하게 비쳐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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