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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는 밭으로 사용되던 토지들을 사들였다. 펜션을 짓기 위해서다. 이후 국가가 김씨의 땅 주변 토지를 사들인 뒤 연구원을 설립하였다. 그리하여 김씨의 땅은 주변 통행로가 없는 맹지가 됐다. 김씨는 문제의 땅 위에 팬션을 짓기 위해 관할관청에 개발행위 허가신청을 냈다. 관할구청에서는 주위 토지 통행권을 확인받은 뒤 다시 신청하라는 보완요구를 받았다. 김씨는 연구원측에 통행권을 요구했다. 그러나 연구원측은 종전처럼 영농을 위한 통행로로 사용할 수는 있지만 개발행위를 위한 사용에는 동의할 수 없다며 거부했다. 김씨는 과연 팬션을 짓기위한
신우철 신임 군수에 대한 기대가 크다. 그는 군민 화합과 소통을 강조했다. 취임 직후 읍면을 순회 때 행정선 대신 여객선에서 주민과 직접 만나 대화를 나누며 소통하는 모습에 인상 깊었다. 신 군수가 지속가능한 양식산업을 육성하기 위한 각종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것도 희망적이다. 내만의 전복 양식장과 외만의 해조류 양식장 간의 맞교환 방식의 어장재배치, 어장청소와 함께 친환경 미생물을 이용한 어장수질 개선, 바다환경 변화에 적응력이 강한 우량종묘개발 보급, 전복가공생산 공장 준공, 친환경 양식 기술 도입 등이 그것이다. 신 군수는 완
완도군민을 대변하는 대표언론, 완도신문의 창간 24주년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완도신문은 지방자치가 태동하는 시점인 1990년도에 지방자치를 추구하며 중앙으로부터 독립된 지역언론 그리고 지역민을 대변하고 지역발전에 기여하고자 하는 완도군민의 뜻을 모아 창간하였습니다.특히 완도신문은 편집규약과 강령을 지켜나가면서 독자인 지역민의 알권리를 충족시키고, 치우침이 없는 공정성 있는 기사, 지역적 특성에 맞는 지역별 계층별 다양성 존중이라는 언론 본연의 원칙을 지켜온 것이기에 창간 24주년의 의미가 더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완도신문은 완도군
완도신문이 올해 24주년을 맞는다. 같은 해에 태어나 현재 완도에 살고 있는 24살 청년들을 만났다. 그들에게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사는지 물었다. 먹고 사는 문제인 경제(돈벌이)에 대한 얘기가 주류를 이루었다. 고향을 어떻게 변화시키고 발전시겠다는 공동체 의식보다 개인적인 영역을 중시했다. 완도가 살고 싶은 곳이기는 하나 자식들의 교육을 위해서는 언제든지 고향을 뒤로 하고 도시로 떠날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재 살고 있는 그리고 앞날을 걱정하는 언론이나 책임 있는 인사들이 완도의 청사진을 새롭게 제시하지 않으면 완도미래는 불확실할
관해어자난위수(觀海於者難爲水) 큰 바다를 본 사람은 작은 개울물을 이야기하지 않으려 한다.석담 신관현 작가는 “군민주로 창간한 완도신문이 24년 동안 크고 작은 우여곡절 속에서도 주민들 편에 서서 꿋꿋하게 버텨준 것에 대한 감사한 마음을 담았다.”고 했다. 덧붙여 “어떠한 난관에 부닥치더라도 언론 본연의 역할을 충실히 할 것”을 주문했다.작가석정 신관현소안출신전라남도미술대전 특선2014우수작가신춘기획초대전(라메르미술관)동서미술현재전대한민국부채예술대전미협이사장상한국예술대제전 대상대한민국전통미술대전 초대작가한국미술제 초대작가국제깃발전
세상은 참 ‘시끌사끌’합니다. 사방팔방에서 뉴스가 쏟아집니다. 신문도 잡지도 가지가지인데, 방송도 종류가 어마어마합니다. 컴퓨터를 켜면 오만가지 인터넷 사이트들이 헤아릴 수 없을 만큼의 정보를 보여줍니다. 그 뿐이 아닙니다. 온갖 소식들이 사람을 졸졸 따라다니며 성가시게 합니다. 휴대용 전화기를 비롯한 디지털 전자기기들이 밤낮없이 신호음을 울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쩔 때는 눈 딱 감고 귀 틀어막고 사는 게 차라리 속이 편하지 싶습니다. 하지만 세상 돌아가는 형편에 촉각을 곤두세우지 않고서는 밥벌이가 여의치 않으니 어쩔 도리가 없습
창간 스물네 돌을 맞아 독자 여러분들께 전화를 드렸다. 안부 인사이자 감사 인사였다. 그리고 완도신문에 대한 진솔한 평가를 들었고 앞으로 우리 신문이 나아갈 방향에 대해 여쭈었다.서울, 경기, 광주 등지와 완도 여러 섬에 사는, 대개 10년, 15년 넘은 애독자들이다. 귀는 어둡고 눈은 침침해도 돋보기로 신문을 본다고 했다. 매주 완도신문을 기다린다고도 했다. 감사한다. 또한 부끄럽다. 우리 독자들이 완도신문을 기다리는 그 마음의 절반만큼이라도 우리는 정성을 다해 신문을 만들었나 하는 반성 때문이다.대부분 독자들은 우리를 칭찬했다.
“재욱씨는 전생에 완도사람이었던 것 같아요.”신흥사에서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한문학당 선생으로 있을 때 절에 다니는 할머니 한 분이 하신 말씀이다. 2000년도에 몸과 마음이 아파서 잠시 쉬려고 내려왔던 완도. 한 달 정도만 머물다가 떠날 생각이었는데 여러분의 따뜻한 마음이 좋아 1년을 꼬박 완도에 살았다. 그 때 주지스님은 내 전공이 한문학인 걸 아시고는 ‘이곳 아이들한테 한문을 가르쳐 볼 생각이 없느냐’고 하셨다. 덧붙여 ‘이 곳 아이들은 도시 아이들에 비해 아무래도 교육이나 문화의 혜택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는 말씀도 하셨던
얼마 전 서울의 회원 변호사 20여명과 함께 청산도를 다녀왔다. 섬 전문가인 필자의 강연을 요청해와 답사에 동행한 것이다. 1박2일 동안 슬로길을 걸었다. 나는 이미 수차례 걸었던 길이지만 민변 회원들은 대부분 청산도가 처음이었다. 섬에 왔는데 물가에서 놀기보다 길을 걷는 것에 대해 몇몇 사람은 불만을 표출하기도 했지만 그들도 시간이 지날수록 청산도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었고 나중에는 걷기를 잘했다고 했다. 그들이 청산도에서 감동 받은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들이 이구동성으로 칭송한 것은 청산도가 함
내가 이 책을 접하게 된 동기는 중학교 1학년 당시 서당에서 접하게 되었다. 그 때 난 천자문을 읽고 있었는데 옆에 있는 서당 동기생이 한자 읽는 소리가 마음에 와 닿아 지금 무슨 서책을 읽고 있느냐고 물었더니 명심보감이라 하였다. 난 주저없이 천자문을 접어두고 명심보감 서책을 읽기 시작했다. 한참을 읽고 나니 훈장 선생님께서 물으시었다.훈장 선생님께서 말하시기를 지금 읽고 있는 책의 뜻을 알고 읽느냐고 물으시었다. 나는 멈춧거리면서 “아 글쎄요” 라고 대답하였더니 훈장선생께서 ‘마음을 밝혀주는 보배로운 거울’이다 라고 말씀하시면서
공무원인 김씨는 관리사무소 숙직실에서 잠을 자다 바로 옆 세탁실 밑에 설치된 전기자동차 충전기 부분의 발열로 발생한 화재로 인해 질식해 사망했다. 부인 박씨는 공무원연금공단에 유족보상을 청구했다.공단은 “사고 당시 김씨의 혈중 알콜 농도가 0.159%로 근무 중 음주라는 중과실이 강씨의 사망에 경합된 것으로 보인다”며 유족보상금을 2분의 1로 감액 결정했다.박씨는 불복해 소를 제기했다. 공무원이 업무 중 음주 상태에서 사고로 사망했더라도 음주와 사고 원인 간에 인과관계가 없으면 중과실을 적용해 유족보상금을 감액할 수 없다는 것이 박
예전에는 시골마을의 집 울타리는 돌로 쌓아올린 돌담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새마을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1970년대 이후에는 마을 안길을 넓히면서 담장을 허물어 담장을 다시 쌓을 때 돌담이 아닌 블록으로 쌓아올린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우리 조상들의 지혜와 애환이 깃든 돌담들이 많이 사라져 지금은 시골마을에 가도 제대로 된 돌담을 구경하기가 힘들게 되고 말았다.사라져가는 우리들의 아름다운 근대문화유산을 체계적으로 보존하고 관리하기 위해 생긴 것이 ‘등록문화재’ 제도다. 이는 문화재청장이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지정문화재가 아
요즘은 세태가 많이 변했지만, 아직도 명절하면 선물꾸러미를 들고 설레는 맘으로 가족과 친지를 찾는 풍경이 먼저 떠오른다. 민족의 대명절인 한가위는 풍성한 결실에 행복해하며 주위를 둘러보고 따뜻한 마음을 전하는 가장 큰 명절이다.하지만 아직 민족의 대명절인 한가위를 제대로 즐길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이 글을 쓰는 현재까지는 그렇다. 세월호 유가족들이 그렇고 세월호 유가족들과 아픔을 함께하는 많은 국민들이 그렇다.4월 16일 진도앞바다에서 수백 명을 싣고 운행하던 세월호가 차디찬 바다로 가라앉으면서 시작된 불행은 가족들에겐 청천벽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