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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수술 후 반년 쉬는데 근질근질 죽을 것 같어

지방소멸대응프로젝트 해녀이야기 조정희 해녀(69)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23.06.15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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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도군에는 55개의 유인도가 있고 그 중에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을 활발히 펼친 섬이 세군데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규모가 적은 대모도(大茅島) 서리마을.


그곳에 독립운동가 장석칠 선생의 집안 며느리로, 서리마을 부녀회장으로, 또 유방암을 이겨낸 해녀로 억척스런 삶을 살아가는 슈퍼우먼이 있다. 천사의 미소를 가진 제주도 구좌읍 하도리가 고향인 조정희 해녀다.


완도읍과 모서리를 오가며 생활한다는 조 해녀는 읍에서 낮 배로 방금 들어왔다며 첫 인사를 건네는데 천사의 미소가 따로 없다.


″일로 와, 뜨건께 션한 맥주 한잔 해.″ 
얼음 맥주와 함께 토마토와 구운 김을 내 온 조 해녀는 "오매 그란디 안주가 변변 찬내 잉″
″술은 사양하겠습니다″
″그래도 한잔 하랑께, 그라고 맥주는 냉장고에 한나(가득) 들어있응께 몇 개 갖고 가 배에서 마셔...″


″제주 애기들은 돈벌이가 아니어도 자동적으로 수영을 배우고 갓 물질을 해. 해녀가 되기 위한 예비수업인디 나도 다른 애기들과 마찬가지로 초등학교 때부터 수영을 잘 했어. 물질은 할머니에게서 조금 배웠는데 첫 원정물질에서는 엄청 고생을 했당께″


조 해녀는 18세가 되던 1972년 충남 안흥으로 대망의 원정물질에 나섰다고 한다. ″마을의 상군 해녀들을 따라서 무작정 갔제. 그때는 전복이 개당 100원 정도 했는디, 물론 적은 돈은 아니었지만 나는 기술이 없어 그마저도 많이 잡지를 못했어. 상군들은 자기들만 아는 전복이 있는 바다로 잠수하고 우리 같이 신참들은 무엇도 모르고 잠수를 하니 고생을 할 수 밖에 없었제. 그래도 안흥을 두 번 갔는데 거기에서 전복 따는 기술을 완전히 배웠어.″


조 해녀는 그러나 안흥에서 물질의 어려움보다 다른 곳에서 암초를 만났다고 한다.
″안흥은 제주와 달라서 오전과 오후 하루에 두 번 물질을 해. 나는 초짜라 소중이를 입고 물질을 했는데 그때가 4월이었어. 갑자기 눈이 펑펑내리는 거여. 얼마나 추웠는지 바로 고무옷(슈트)을 주문했제. 그때만 하더라도 어두운 시절이라 봄에 주문한 옷을 여름에 받었당께.″


조 씨는 두 번의 원정물질에서 바다에 대한 자신감을 얻고서 20살이 되던 1974년 대모도로 원정 물질을 와서 아저씨를 만나 바로 연애를 했다고 한다.


″20살이 되던 봄에 모서리에 도착해서 방을 얻고 같이 온 해녀들과 물질을 시작했는디, 그란디 마을의 한 청년이 과자를 계속 사오는 거여. 그때는 해녀도 50명 쯤 있었는디 마을의 청년들도 무지 많았어. 날마다 과자를 사 나른 사람이 지금의 남편이여.″
결혼은 스물 두 살때 했다고 한다. 


″나는 부모의 정을 못 받고 살었어. 아버지가 워낙에 술을 좋아해서 내가 여섯 살 바로 밑에 동생이 세 살때 엄마가 육지로 가버렸어. 그 후 아빠도 엄마를 따라서 떠났고 나는 결혼 전까지 동생을 돌보면서 할머니와 함께 살았어.


결혼식은 사진관에서 사진만 찍었제. 그때 제주에서는 전라도 사람을 싫어했는데 전라도 사람과 결혼한다고 하면 이상한 사람이라고 흉을 보고 그랬어.″      

      
결혼해서는 주변 섬으로 가끔 난바르를 다녔다고 한다. ″제주에서는 난바르라 하면 3~4일씩 배에서 먹고 자고하면서 물질하는 것을 말하는데 여기서는 주로 당일치기로 배를 타고 주변 섬을 다녔어. 소안도, 넙도, 사수도 등 모든 섬을 새벽에 갔다가 저녁에 돌아왔지.″

 

조 해녀는 한때 부산으로 터전을 옮겼으나 적응이 어려워 다시 완도로 돌아왔다고 한다.
″결혼하고 애들 낳고 생활하다 30대 중반에 부산으로 터전을 옮겼는디. 그때 시댁 식구들이 7남매인디 모두 부산에 살고 있어서 갔는디 도시생활이 우리하고는 맞지 않아. 그래서 몇 년을 살다 다시 완도로 돌아왔어, 나는 여기 모서리가 편하고 좋아.″ 
부산과 완도, 모도에 각각 집이 있는데 부산 집에는 막내딸이 살고 있다고 한다.


″막내딸이 완도수고를 나왔는데 수고에서 여자로서는 제1호 기관사 자격증을 땄어. 그래서 제주 다니는 블루나래호 기관사를 하다가 부산으로 가서 지금은 부산 항만공사 자회사에서 일하고 있어.″ 


딸이 결혼 생각을 안하고 있어서 큰 걱정은 안하곤 있지만 그래도 마음에 걸려 있다고.       
이러한 슈퍼우먼에게도 아픈 과거가 있는데 목숨이 걸린 큰 수술을 했다고 한다.
″딱 15년 전인디. 물질을 갔다오면 피곤하고 컨디션이 영 안 좋아. 그래서 병원을 갔는디 큰 병원에 가보라 하듬마. 그래서 화순 전남대학교 병원을 갔는데 이것저것 검사를 한 후 유방암이라는 거여." 


"말 그대로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떨어진 것이제. 아니 왜 내가 암에 걸리지? 그러나 곧 마음을 다잡고 수술을 하기로 하고 수술을 했어. 그때 형제간들이 찾아 왔는디 인자 내가 죽은다고 형제간들은 난리가 났고 아조 복잡했어. 다행히 수술이 잘 돼 주치의가 집에서 편히 쉬라 듬마" 


"그래서 집에서 반년정도 쉬고 있는데 집에만 있으려니 몸이 근질근질하고 답답해! 그것 때문에 죽을 것 같어. 정기 검진 때 주치의에게 그 이야기를 했더니 그러면 스트레스 받지 말고 물질은 무리하지 말고 조심히 다시 하라 하듬마. 집에 와서 몇 일 있다 물질을 나갔는데 마음이 그리 편하고 좋아. 그래서 지금까지 이렇게 건강하니 잘 살고 있당께.......″


남편이 선박 매매상을 하고 있어 경제적으로 안정되고 편하지만 물질은 힘이 닿는 한 계속 할 예정이란다.          


″막배가 금방 오것네, 얼렁 달려가~~~.″


멀리서 들려오는 막배의 기적소리를 듣고서 비탈길을 달려 뱃머리로 향했다.                


 다도해해양문화연구원 유영인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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