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도를 다녀온지 벌써 4일이 지났군요. 세월이 빠르게만 느껴집니다. 하지만 이번 완도방문으로 큰 보람이 있었다고 느껴지는군요.첫째는 그 옛날 거북선이나 장보고 대사가 만들었다는 당나라와 일본을 오가던 배를 재현했다는 청해진 선박연구소 마광남 소장이 경험을 살려 직접 배를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사석에서 들었을 때 흥미진진했습니다.사실 제가 쓴 영문 대하소설, 또한 일명 자동차 삼국지로서 포드, 토요타, 니싼, 지앰, 볼보, 폭스바겐, 르노 벤츠 등 자동차 회사가 나오지만 대다수의 자동차회사 설립자들은 그 무슨 경제학이나 공
지난 6일 오전 완도타워에 올랐을 때이다. 사람들이 한 장소에 모여 있어 가까이 가보았더니 완도읍장이 관광객에게 빙 둘러싸여 있었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사진 찍는 것도 잊고 들어보니 타워에서 보이는 곳 이곳저곳을 소개하는 관광가이드로 변신해 있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읍장인 것을 관광객들은 모르고 있다가.누군가 완도읍장님이라며 말을 하자 알게되었다. 경상도에서 왔다는 한 가족이 기념촬영을 청해서 사진을 찍어 주었다. /독자 제공
1896년 완도군이 설립되기 이전, 완도의 섬 지역은 각각 영암, 해남, 강진, 장흥 등에 분산되어 관할받았고 전라우수영 등이 있어 그로 인한 이중의 세금부담과 여러가지 고통에 시달려 왔다. 다행히 고금도에 잠시 있었던 이도재 공 덕분에 지금의 완도군이 설군되었고 내년이면 만으로 완도 설군 120주년이 된다. 군청을 고금도에 뒀을 경우, 완도군이 아니라 고금군이 되었을 것이며 지금과 상당히 다른 역사로 기록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설군 당시 고금도 유림들의 반대로 가리포 진지가 있는 현 완도읍에 완도군청이 들어섰다는 글을 보면, 관리
주민등록증에 ‘전라남도 완도군’이 찍힌 지 두 달 남짓이다. 멀리서 보면 아름답던 것들이 가까이서 어울리다 보니 빈틈이 보이기 시작한다. 아이들과 부모들을 만나면서 듣게 되는 가장 큰 아쉬움은 교육 인프라의 부족이다. 부모들의 교육열은 광주나 서울 못지않다. 가정 경제에서 사교육에 투자되는 비중도 만만치 않다. 문제는 이를 충족시킬 만한 환경이 뒷받침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어른들을 위한 것, 눈에 보이는 것에는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고 있지만 다음 세대인 아이들의 필요에는 인색한 것이 완도의 현실이다. 전국 출산율 5위가 무색하다.그
선거 때 입후보자나 정당이 유권자에게 행하는 공적인 약속이 공약(公約)이다. 아무리 작은 지역의 선거라 해도 유권자가 모든 입후보자의 능력이나 경력에 대하여 충분히 알 수 없기 때문에 유권자들은 입후보자의 공약에 의하여 입후보자의 정견(政見)이나 인물을 파악하게 된다. 따라서 공약은 투표의 중요한 선택기준이 되며 책임정치의 중요한 구실을 하게 된다. 그러나 공약은 선거에서 이기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해 당선만을 위한 선심공세로 변질되어버리는 경향이 있다.마찬가지로 군수의 공약은 군민과의 공적인 약속임으로 특별한 사정변경이 없으면 지켜
물은 생명 유지의 기본이 되는 것으로 물이 없다면 생명도 유지될 수 없다. 미국공학원이 20세기 인류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한 가장 위대한 ‘기술업적 20선’에 상수도를 선정했듯이 상수도를 통해 우리가 매일 마시는 물은 몸속의 병원균과 오염물질을 내보내고 면역성을 높이는 등 우리 몸을 보호하고 건강의 질을 높이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고 있다.2013년 3월 K-water 완도수도관리단이 완도군으로부터 지방상수도 업무를 일괄 수탁해 운영관리하면서 34%에 불과했던 유수율이 현재 61%로 높아져 고질적인 제한급수가 완전 해소되었으며 여기에
완도신문 지령 1000호의 소식을 듣고 완도교육을 책임지고 있는 저로서는 그동안 완도교육의 발전과 완도민의 행복을 위해 많은 노력을 경주해 온 완도신문에 대해 참으로 고맙고 반가운 마음을 금할 길이 없었습니다.매회 신문을 발행하면서 우리 지역의 애환과 기쁨을 알리기 위해 얼마나 힘든 시간을 보냈으며 한 컷 한 컷의 탄성들로 엮어간 역사의 흔적 속에서 인고와 감내로 탄생한 논평들이 우리 완도의 발전을 가져왔을 것으로 생각합니다.완도신문이 완도의 지역사회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사건과 현상에 대한 객관적인 정보제공과 논평을 기대하며 완도인
더욱 용력을 내어 달려라등불 되리라, 파수꾼 되리라자유 깃발 높이 들고, 진실의 북 둥둥 울리며그대 행진 시작했었지선한 눈빛들, 생기 잃고 흔들리는 곳에위로와 희망을 흩뿌리며두 눈 부릅뜨고 발로 뛴 25년샘 같은 지성, 올 곧은 공의, 골 깊은 애향온 몸으로 쏟았던 그 치열한 걸음들 모아1,000호의 보람 단, 군민 마당에 내려놓는다뒤를 돌아보면벼랑의 소나무처럼 위태하게 서서고단하게 싸워 온 하루하루매서운 칼바람 그칠 날 없었지만정론 등불 끄지 않고주민과 함께한 어깨동무 풀지 않았지갈채도, 채찍도 양약이 되어저는 다리 곧게 펴고 정
현송(玄松) 신동철 화백은 “지난 시간동안 많은 우여곡절 속에서도 주민들 곁에 자리 잡고 있어준 것에 대한 감사에 마음을 전한다”고 했다. 덧붙여 “역사가 살아 숨 쉬는 청해진의 문화적 가치에 대해 지역주민들이 자긍심을 가지며 살아갈 수 있도록 언론이 관심을 가져줄 것”을 당부했다.고금 농상리 출신으로 중국 베이징 중앙미술학원을 나온 신동철 화백은 시립미술관 경희궁 본관(서울), 당대미술관(베이징, 중국), 세종문화회관 광화문갤러리(서울), 무등갤러리(광주) 등에서 개인전 및 200여회의 단체전을 가졌다.
1990년 완도신문을 창간한 이래 1,000호를 발간하게 된 것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초창기 이경국 사장은 넘친 의욕이 강했으나 경영상 어려움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이 어려움을 그간 잘 극복하고 지금은 지방화 시대에 걸맞은 신문으로 장족의 발전을 보이고 있습니다.지금 우리는 지방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이에 부응하여 완도신문은 완도의 말시장에서 바른 여론을 형성시켜 주민 상호 간 소통하고 지자체와 주민 간 소통을 꾀하는 사명의식을 다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말시장에는 참말과 거짓말, 좋은 말과 나쁜 말이 공론하고 있는데 완도신문
군민여러분 안녕하세요. 노화도가 고향인 박준영이라고 합니다. 저는 노화도에서 자랐고, 그곳에서 고등학교까지 마쳤습니다. 현재는 수원에서 개업변호사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완도신문 1000호를 기념하는 지면으로 고향분들께 인사드릴 수 있어 영광입니다.아버지께서 2001년 굴삭기사고로 돌아가셨습니다. 돌아가시기 3일 전 마지막 통화를 기억합니다. “공사현장에서의 일은 새벽잠을 1분이라도 더 청하고 싶을 만큼 고되었지만 하루도 빠지지 않고 자식들을 위하여 눈물로 기도했다. 너희들은 잘 살 것이다.” 전 눈물의 기도를 먹고 자란 자식이었습니
요즘 각 지방자치단체마다 축제가 한창이다. 전국적으로는 매일 평균 3건 이상의 축제가 사시사철 열린다. 대한민국은 한마디로 축제공화국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그렇다면 요즘처럼 무더운 날씨에 땀 흘려가며 축제를 하는 이유가 뭘까? 일차적으로는 관광객 유입을 통해 지역경제를 활성화하고 또한 지역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효과를 기대하기 때문이다.이 같은 명분으로 각 지자체가 앞 다퉈 축제를 펼치고 있지만 아쉬움은 있다. 그것은 지역공동체의 주인공인 주민이 빠졌다는 점이다. 축제의 판을 벌이기 위해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지만 정작 중요한 주민들
지역언론의 중심적인 자리매김을 위하여 독자와 함께 노력하는 완도신문 지령 1000호 기념호 발행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사회가 발전하고 성숙될수록 언론이 차지하는 비중이 더욱 높아지고 있음을 볼 때 지역의 발전은 언론의 역할과 깊은 함수관계에 있다고 할 것입니다.특히 완전지방화시대를 맞아 많은 사람들이 언론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는 언론에 대한 군민의 기대가 그만큼 크다는 것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합니다.따라서 지역의 여론을 바르게 읽는 완도신문의 시각과 안목이 지방자치의 무대를 긍정적ㆍ발전적으로 이끌어 갈 것으로 믿습니다
지역신문의 사명과 임무는 지역주민이 알고자 하는 일을 알리고 사회적 여론을 있는 그대로 분석평가하고 전달하는 것입니다. 앞으로 우리 완도군민의 사랑을 한 몸에 받으면서 주민들의 아름답고 다정한 벗으로서 그 소임을 다해주실 것을 당부 드립니다.저는 지난 도의원생활 1년 동안 군민의 편에 서서 군민을 위하고 군민과 함께 가는 지방정치인으로서 최선을 다해왔습니다.이 모든 일들은 지난 26년 동안 전남도청 산하 공직생활로 도와 시 군 행정에 익숙한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전남도의회 예결위원으로서 완도군 지역발전을 위해서 예산과 정책
완도인의 눈과 귀, 입으로 그리고 지역의 중심언론사로 사명감을 다해온 완도신문이 벌써 스물다섯돌을 맞아 1000호를 발간하게 되었다니 정말 경이롭고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그동안 어려운 여건속에서도 이처럼 군민의 대변지인 완도신문이 정론직필의 정신으로 자리매김하기까지는 김정호 발행인님을 비롯한 임직원들의 피눈물나는 땀방울과 열정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저는 믿습니다.완도에 있어서 완도신문은 지역민을 위한 맑은 공기요 청량한 물임을 잊지 말고, 어떤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고 우뚝 서 있는 향토 언론의 뿌리 깊은 나무로 자리 잡길
김, 미역, 다시마, 톳, 전복 등은 청정바다 수도 완도의 대표적인 친환경적인 양식품종이다. 과거에 비해 김과 톳의 시설량은 감소했지만 미역과 다시마, 전복 등은 오히려 크게 증가했다.전복양식의 증가는 미역과 다시마에도 영향을 미쳐 이용도는 물론 시설시기 등 양식순환에도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즉 미역의 경우 2013~2014년 2년 연속 조기시설 이후 초기에 엽체탈락으로 큰 타격을 입었다. 종사를 3~4회 반복적으로 시설을 했지만 번번히 실패로 끝났다.전복도 심상치 않다. 최근 전복양식에서 가장 많이 듣고 있는 키워드는 '
이번 호로 완도신문 발행이 1000호를 채웠다. 지역신문치고는 보기 드문 예다. 먼저 완도신문사 구성원들에게 축하의 말씀을 전한다. 완도신문은 창간이래 수많은 난관과 우여곡절을 겪었다. 완도신문사 편집책임자와 기자가 명예훼손으로 고소되고, 신문사 재산이 압류됐던 때가 가장 어려운 시기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런 위기를 잘 극복하여 오늘 보란 듯이 1000호를 발행할 수 있게 된 것은 완도신문 구성원들의 노력도 컸지만, 무엇보다도 3천여 완도신문 애독자들의 든든한 후원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필자도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완도신문을 사랑
이 글이 실릴 2015년 8월 21일자 완도신문의 지령은 천호가 된다. 창간호가 1990년 9월 8일에 나왔으니 지금까지 햇수로 따져도 근 25년이 지났다. 이는 어린 아이가 한 몫을 할 수 있는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을 만큼의 기간이기도 하고, 지금과 같은 형태의 지방자치가 시작되어 진행되어온 시간의 궤와 비슷하기도 하다.처음 군민 주주 형식으로 모금을 하여 부족하나마 그 자금을 가지고 발행하기 시작한 이 신문의 역사는 이 나라의 순수한 지역 언론의 시발점이었으며 그 때부터 여태껏 발행해오고 있는 ‘홍성신문’과 ‘해남신문’과도 어
1000호 발행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완도신문이 ‘진리는 반드시 따르는 자가 있고 정의는 반드시 이루는 날이 있다’는 사훈을 가지고 창간해 지역 주민들의 눈과 귀가 된지 벌써 1000호를 맞이했습니다.어려운 여건속에서도 지역역사를 기록해야한다는 사명감으로 노력해 오신 완도신문 발행인을 비롯한 관계자 여러분의 노고에 격려의 말씀을 드립니다.전국의 수많은 지역신문 중 1000호를 발행한 신문사가 약 10여 곳 밖에 안되는 상황에서, 완도신문의 1000호 발행은 더욱 뜻 깊은 일이라 할 것입니다.오랫동안 변함없이 군민의 알권리 충족을 위
▲참석위원 : 배철지 위원장, 정안숙 부위원장, 김영신 간사, 장남세, 김숙희, 박주성 위원▲본지 임직원: 김정호 발행인, 박남수 편집국장, 김영란 부장, 위대한 기자완도신문 1000호 발행과 관련해 지난 4일 제3차 독자권익위원회가 열렸다. 위원회는 21일 발행된 1000호를 기념해 김정호 대표로부터 본지 창간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과정과 주요 연혁 등을 보고 받고 올해로 창간 25년을 맞는 완도신문에 대한 평가와 앞으로의 방향에 관해 토론했다. -편집자 주배철지 위원장 – 김정호 발행인의 보고를 들었습니다. 완도신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