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 꽃이 물결을 이루고 있다. 바로 애기똥풀 마을이다. 들에는 보리뺑이가 줄지어 핀다. 아이들이 논둑길로 노란 모자를 쓰고 마치 소풍 가는 모습처럼 보인다. 초록 잎에 노란 꽃이 동심을 자극한다. 애기똥풀은 마을 가까운 곳에 모여 산다. 줄기와 뿌리는 독성이 있어 쉽게 달려들지 않는다. 독이 있으면 다른 꽃보다 더 아름답다. 이는 양귀비과다. 양귀비도 꽃이 아름답다. 독을 잘 풀어 다른 매개물을 통해서 먹으면 약효가 줗은 선한 존재가 된단다. 지상에서 독이 없는 동식물은 없다. 조금씩 독은 갖고 있다. 독은 살아가는 유일한 방법이
나는 내 길을 선택했다. 식물은 자기 위치를 선택했다. 그냥 거기서 계속 머물러 있지 않는다. 벌과 새들을 통해 길을 걷는다. 옆에 식물들은 천천히 걷지 않고선 보이지 않는다. 시간은 보는 데에서 열린다. 굽이 돌아가는 강물처럼 천천히 흐름이 우리의 마음을 평화롭게 한다. 삿갓나물과 우산나물은 천천히 우산을 편다. 햇빛과 빗물을 가린다. 우산을 넓게 펼쳐 태양의 열을 많이 받아야 한다. 큰 나무들 밑에서 살기에 햇빛 보기가 힘들다. 자기 몸보다 잎을 넓게 하여 광합성을 만든다. 살기 위해선 유전인자가 유리한 쪽으로 발전한다. 사람들
서로 좋아 손을 절대 놓지 않는다. 옆에 있던 나무가 가지에서 만난다. 그 인연의 끈을 절대 놓지 않는다. 다른 나무의 종류에서 가지끼리 만나더라도 비비기만 하지 서로의 영양분을 공유할 수 없다. 가지끼리 만나 하나의 몸이 되어버린다. 이것을 연리지라고 한다. 나무에 접을 붙어 엉겨 붙게 하는 접붙임은 인위적 방법이다. 이것도 살 확률은 반반이다. 그런데 자연적으로 만나 살 확률은 아주 낮은데 살아 있다면 더 좋은 환경이 될 수밖에 없다. 혼자 사는 것보다 둘이 힘을 모아 살면 뿌리도 더 많아질 것이고 가지도 튼튼하게 된다. 두 나
봄의 소리는 사랑스럽게 들린다. 서로 좋아해서 듣는다. 노래를 잘 부르려면 잘 들어야한다. 영어를 잘하려면 잘 들어야 한다. 상대방의 말을 잘 듣는 사람은 그 사회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자연의 소리는 잘 다듬어지는 언어와 같다. 그걸 잘 표현하는 사람은 문인이라 하는 데 우리가 살아갈 보편적 가치인 것이다. 봄은 조용히 들으라 한다. 자두 꽃 피는 모습을 보면 귀가 열 개라도 부족하다. 유심히 관찰하다 보면 귀가 열린다. 꽃이 피는 열정은 참으로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열정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모든 힘을 쏟아부어 꽃을 피운다.
개나리 진달래 피면 우리는 버들가지 강가에서 세월을 이야기하리. 너무 빠르게 흐르는 시간을 위하여 서운하지 않게 마중하세. 봄은 만남이다. 또한 헤어짐도 맞는 말이다. 동백꽃 떨어진 날에 임의 눈물은 한참 머금고 있다. 그만큼 삶의 열정이 있다. 살아간다는 것은 자기 주관적 표현을 하고 사는 것이다. 봄은 여기저기 나의 마음을 열리게 한다. 어느 시인처럼 봄처럼 부지런히 살아라! 하고 한다. 뜬금없는 놀라움은 목련꽃이다. 우리들 가슴에 놀라움은 필요하다. 그 책임은 봄꽃이다. 시골길을 가다 보면 진다래 꽃이 불현듯이 나타난다. 가슴
시대가 변해도 새싹이 돋는다. 그 새싹은 변함이 없다. 그러나 변하는 것은 봄을 기다리는 마음이다. 새롭게 돋아난 새싹에서 우리는 희망을 품어본다. 희망과 이상은 늘 변한다. 새롭게 변한다는 것은 정직함과 깨끗함이다. 그래야 열정의 에너지를 얻는다. 눈물은 깨끗한 열정에서 나온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자기만의 길을 걷는다. 그게 가장 깨끗하고 정직함이 주는 외로움이다. 그러나 이상과 희망이 있기에 앞으로 나아간다. 새 봄의 새싹처럼 가장 부드럽게 미소를 짓는다. 새봄의 새싹은 천성과 성실함이다. 자연이 주는 환경에서 부지런히 씨를
마음의 끝에서 전하는 정은 깊어서 끝이 없다. 늘어진 수양버들 아래 흐르는 물 위에 전해오는 느낌이 많다. 봄의 꽃향기가 깊다고 하지만 손끝에서 전하는 마음은 어이 씻을 수가 없다. 이 세상 모든 것들은 서로 전해 줄 것들이 많다. 보이지 않지만 그 어떤 것보다 가치 있는 것들은 노력하지 않으면 결코 보이지 않는다. 깊은 계곡에 피는 노루귀는 사람들 눈에 쉽게 뜨이지 않는다. 심산유곡에서 깊은 상념에 빠져 있다. 돌 틈 사이에서 가장 깨끗한 낮달과 마주 보고 있다. 서릿발 내리는 곳에서 내 발이 되어준 산은 유일한 나의 몸이다. 열
봄의 풍경의 절정이 춘삼월인데 음력 3월이다. 옛 노래 중에서 낙화유수가 있다. 노랫말을 들어보면 비록 흘러간 노래이지만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인공지능 시대에서 더 잘 맞는 노랫말 인 것 같다. 꽃다운 인생살이 고개를 넘자. 사람은 낙화유수 인정은 포구 보내고 가는 것이 풍속이더냐. 영춘화 야들야들 피는 들창에 이 강산 봄소식 편지를 쓰자. 지금 같으면 사진과 동영상을 보내고 싶은 사람에게 보내겠지. 사람들은 너무 빠르게 지나가는 세월을 아쉬워하면서 아직 봄나들이 갈 시간은 남아있다고 위안을 삼았지. 강 나루터에 앉아 봄 강물을
들꽃들이 강물로 흘러간다. 상처는 있으면 있는 대로 서로 가슴으로 안고 있기에 울지는 않는다. 풀씨 하나의 기쁨이 수많은 눈물바다가 되었다. 생명은 수없이 연결된다. 그 작은 풀씨 한 개라도 그 자리에 있어야 한다. 어느 날 그 자리에서 다시 태어날 때까지 대지를 꼭 안고 있어야 한다. 실개천에서 봄 길을 열기 위해 물살을 거슬러 올라가기야 한다. 어린 나뭇가지가 봄 길을 열고 수채화를 그린다. 뚝새풀 억세다고 하지마라. 그 옆에 별꽃도 있고 황새냉이 꽃도 있단다. 봄 피리 꽃도 있나니 아직 동심은 사라지지 않았다. 아직 여울물이
매화꽃 사이로 동백꽃이 보인다. 보이는 사람 없어도 꽃을 만지는 사람이 있다. 들꽃들은 반겨줄 사람 없어도 아주 작은 목소리로 노래한다. 기쁜 일 슬픈 일 모두 함께 새싹으로 올라온다. 그리움이 없는 사람도 진달래꽃 보면 가슴이 설렌다. 마른 풀잎 아래 산자고 여린 잎에 눈물이 슬픔을 안고 있다. 며칠 동안 숨 가쁜 빗물이 슬픈 가슴을 적힌다. 고향 같은 봄비가 꽃피는 고향을 그리워한다. 내 운명을 못 본 척한 봄은 순한 물길로 열린다. 태초의 말들이 내 운명의 씨앗을 뿌렸겠다. 시간은 햇빛으로 저 너머 꽃구경 손님이 문득 찾아와
아름답게 채색되어진 풍경이 그립다. 과거에는 지금과 비교해 보면 그렇게 가격이 나가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그때가 더 소중하게 여겨진다. 봄을 소중하게 기다려지는 것은 과거에 아쉬웠던 부분을 채우고 싶은 것이다. 살아오면서 잘못한 것과 흔들릴 때가 많았다. 한 생명을 지탱하기도 힘들었던 시기다. 주위와 관계를 맺고 서로 협력하여 삶을 꾸리는 것은 확률적으로 더 어렵다. 경험적으로 지난 삶도 어려운데 미래라고 더 쉬운 일은 아니다. 불완전한 세상 속에서 행복해지는 방법을 찾는다. 지난날 이루지 못했던 아름다운 이야기를 찾아서 봄을 기
하루의 일상이 풍경화다. 학교에서 풍경화를 그릴 때가 엊그제 같은데 이제 추억의 그림이 되고 만다. 삶을 열렬히 사랑할수록 풍경화는 아름답다. 당장 내 앞에 이익이 안 되는 것들이 지나고 나면 그것이 내 옆에 평생 간직하고 산다. 초등학교 때 운동회는 추억하기에 마침 좋다. 이때 사진 한 장의 촌스러움이 이게 나였다는 사실이 웃음이 나온다. 나이에 따라 풍경화는 다르다. 봄에 벚꽃이 피어있는 것을 보고 봄을 알았다. 길 따라 피어있는 코스모스를 보고 가을을 알았다. 아름다운 인연과 함께 피어있는 꽃이 젊은 날의 풍경화다. 그런데 한
눈에 덮인 생명들은 세찬 바람을 피할 수 있다. 많은 생명은 눈 때문에 추위를 피할 수 있다. 자연은 늘 변화무쌍하다. 자연환경에 적응하면서 살아왔다. 운명은 스스로 오는 것 같지만 받아들인 쪽은 자기 결정권도 있다. 결정권 범위 안에서 최대한 삶을 꾸려간다. 나무는 비가 오면 비가 오는 대로 눈보라가 치면 그런대로 살아간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자기 운명의 결정권이 나온다. 나도 모르게 왔더라도 보낼 때 그냥 보낼 수 없을 경우가 많다. 나무는 아름다운 계절의 결정권을 갖고 있다. 연분홍 치마를 입고 산 능선을 타고 내려온 봄이
바람의 눈빛이 스쳐가는 소리는 한참 지나서야 들린다. 밀려오는 간격의 차이를 금방 알아차리지 못한다. 밀려오는 파도가 오기도 전에 너는 저만치 가버린다. 사늘한 댓잎소리에 빨갛게 달아오른 너의 얼굴이 그립다. 댓잎 소리 머물 때 하얀 연기가 저녁나절을 알린다. 넉넉하지 못한 그때 그 시절에 하얀 연기가 밥 한 솥만큼 반갑다. 뜨근뜨근한 사랑방에 모여 있는 얼굴들은 쌀밥 한 톨에 희망을 걸었다. 줄인 배를 채우는 것은 미래에 대한 기대감이다. 느린 걸음으로 다가오는 저녁 풍경은 쓰레기 된장국만큼 포근하다. 대나무는 삶의 밑천이다. 어
오늘은 무슨 색이 보일까. 매일 아름다운 사람을 기다리듯 아름다운 색이 보이기를 기대한다. 무지개를 보면 마음이 그쪽으로 날아 움직인 것 같다. 밤이면 꿈에서 보이고 아침에 일어나면 새로운 세상이 펼쳐진다. 하루를 살아가면서도 곰곰이 생각하지 않으면 똑같은 날이 되고 만다. 새롭게 무엇을 찾아내는 일이 자연스럽게 되기를 바라면서 길을 떠난다. 매일 여행할 수 있는 데에는 상상할 수 있는 세계가 있기 때문이다. 상상할 수 있는 기본은 자연이다. 여기에는 시대가 변해도 흔들림이 없다. 공정과 상식 그리고 배려는 사회 국가적 차원을 넘어
사람과 바다가 만나는 곳에서 지금까지 기다림의 연속이다. 파도 소리, 풍금 소리, 바다 새와 함께 춤을 추는 곳은 영원히 지울 없는 사랑이다. 연둣빛 바닷물은 앞으로 갈 길을 열었다. 새벽 고깃배가 들어오는 불빛으로 살아가는 유일한 방법이다. 그러나 이제 마음을 밝히는 여명이 되고 만다. 바다가 보이는 언덕에서 풀빛이 돋아나고 민들레 하늘로 흘러간다. 늘 푸르고 그 많은 민들레 씨앗은 어디에서 있을까. 바닷바람이 밀려오면 그냥 흘러보냈다. 고깃배가 떠나가도 곧 돌아올 것으로 생각했다. 세월은 가깝게 있다가 어느 날 멀리 떠나버리고
기다림의 연속은 길 위에 있다. 사람과 사람 사이로 걸어왔다. 서로 보이지 않는 끌림이 있다. 형언할 수 없는 순간만이 있었다. 꽃과 나무 사이에 이름 없는 바람이 와서 또 길을 떠난다. 두꺼운 입술이 너를 사랑한다고 말할 때 너는 아직 가냘픈 작은 여인이었다. 산이 움직이는 것은 네가 붉은 열정이 아직 살아있기 때문이다. 덥석 땅에 떨어지는 너의 모습은 아직 갈 길이 멀다. 짧고 긴 여운이 번갈아 가며 너는 아직 울림이 깊다. 너의 입술과 심장 사이는 얼마나 먼 거리인가. 이제 손을 잡을 때가 됐다. 그러나 족히 닿을 수 없는 거
그동안 무심히 지나오다가 이제 떠나버리고 없을 때도 그 가치를 무심히 바라본다. 서로 열렬히 사랑한다고 인식하고 있으면 그건 때가 되면 식게 마련이다. 삶은 사회 통념적인 것이 아니다. 자신이 어떤 존재임을 끊임없이 되묻기 위해 길을 떠난다. 매일 길 떠나는 방랑의 여정과 같다. 찬비 속에 나뭇잎은 시간의 끝을 놓지 않고 있다. 시간 위에 운명의 길동무는 내 안에 있다. 오늘 일어나는 일을 섬세하게 들여다보고 이들 곁에 조용히 떠나는 것과 또한 다가오는 것을 생각한다. 서로 마주 오는 것을 지날 때와 멈춰있는 사물을 섬세하게 관찰한
넘침이 많아서 불행하다. 스스로 만족할 줄 모른다. 추운 겨울날 스스로 견뎌내는 사철나무가 있다. 하늘이 주는 햇빛으로 광합성을 하고 우리 삶에 지대한 영향을 준다. 우리 지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우연한 결과들이 많다. 나무는 이산화탄소를 흡수하여 단백질을 만들어 낸다. 약 20몇 억 년에 이러한 광합성의 부산물로 산소가 대기 중에 축적되어 오존층을 형성했다. 30몇 억 년에 이르는 생명의 역사가 속에서 수많은 우연의 결과가 쌓이고 쌓인 결과 지금의 현대의 이르렀다. 생명은 위대하다. 운명과 운명의 조합으로 지금까지 이어져 온 것이
길가에 야생화를 보듯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굳이 설명할 필요 없다. 이미 그 해답은 다 알고 있다. 나의 길을 가다가 갑자기 의문이 생기면 그냥 그 길로 내버려 두는 것이다. 나 혼자 의문을 되묻고 자문자답하는 식으로 삶은 그대로 흘러가는 것이다. 지상의 모든 물질은 연결되어 있다. 그렇다고 마음과 생각이 연결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인간은 자유의지가 있다. 자기의 운명은 자기 결정권에 있다. 그만큼 책임지는 일이 많다는 것이다. 이성이 미덕인 합리주의 시대에서 우리는 한 개인의 가치는 말살됐다. 자기 표현력이 없는 사람들에게 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