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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잎 삭신이 격한 감정으로 눈물을 흘릴 때

  • 신복남 기자 sbbn2000@hanmail.net
  • 입력 2024.01.19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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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눈빛이 스쳐가는 소리는 한참 지나서야 들린다. 밀려오는 간격의 차이를 금방 알아차리지 못한다. 밀려오는 파도가 오기도 전에 너는 저만치 가버린다. 사늘한 댓잎소리에 빨갛게 달아오른 너의 얼굴이 그립다. 댓잎 소리 머물 때 하얀 연기가 저녁나절을 알린다. 


넉넉하지 못한 그때 그 시절에 하얀 연기가 밥 한 솥만큼 반갑다. 뜨근뜨근한 사랑방에 모여 있는 얼굴들은 쌀밥 한 톨에 희망을 걸었다. 줄인 배를 채우는 것은 미래에 대한 기대감이다. 느린 걸음으로 다가오는 저녁 풍경은 쓰레기 된장국만큼 포근하다. 대나무는 삶의 밑천이다. 


어린 눈에도 돈으로 보이는 것은 생존의 본능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댓잎과 함께 걸어왔다. 그 가난한 시절에도 댓잎처럼 쓰러지지 않았다. 바람 불면 쓰러졌다가 다시 일어서는 연약함 속에 강인함이 나의 어깨를 다독인다. 모든 생활 도구와 놀이 기구는 대나무에서 만들었다. 


가난과 함께 걸어온 댓잎은 이상을 꿈꾸었다. 아주 작은 자리에서 효용의 가치를 최대한으로 올린다. 아마 대나무의 근성이다. 


옹기종기 모여 있는 집들처럼 이들도 살갑게 모여 산다. 뿌리는 서로 억세게 붙어있다. 그 사이에서 돋아나는 새순은 연근의 뿌리만큼 연약하다. 억센 뿌리 속에 죽지 않을 만큼 서로 보듬는다. 우리의 이상을 위하여 청춘의 먼 길을 떠났다. 그동안 살기 위해 죽는 자도 있다. 댓잎으로 돌아오는 자는 머리에 하얀 눈이 내려 있다.

 

대밭으로 들어가 가만히 앉아 댓잎 소리를 듣는다. 마른 막대기 부러진 곳에 삑삑, 툭툭하며 댓잎 바람소리에 장단을 맞춘다. 탈춤을 추며 어지러운 세상을 이야기 한다. 죽은 자도 이곳에 와서 장단을 맞춘다. 살아있는 자와 함께 깨끗한 영혼의 노래를 부른다. 


세월이 가면 변하는 것이 세상만사다. 그 위치가 당연한 듯 받아들인다. 맑고 깨끗한 지조 높은 사람들은 어디로 가고 없다. 시대정신이 꽉 차는 분들은 많다. 그러나 쌓아둘 곳간이 넓어서 그런가. 시대정신과 물질이 섞어져 무엇이 오른 정신이고 마음인지 모르겠다. 현대 물질문명에 물질이 없으면 안 되겠지만 먼저 큰 곳간을 짓는다. 거기에다 욕심을 쌓아두면서부터 싸움터가 돼버렸다. 이제는 바람이 잘 흘러가도록 고개를 숙이자. 댓잎 소리 들으면 가장 슬픈 노래를 듣는다. 


겨울 찬바람 소리를 들려오기까지 상처 없는 잎이 있겠는가. 이 바람 저 바람 부딪치며 삶의 희로애락을 겪어왔다. 댓바람으로 달려온 강인함은 연약한 눈물이 받치고 있다. 
음산한 댓잎 삭신이 격한 감정을 다시 가다듬는다. 죽는 자들도 서로 보듬는다. 얼마나 슬프면 댓잎에 가리어 우는 것일까. 이따금 가슴을 툭툭 친다. 아무것도 남기 없이 다 펼쳐지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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