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상왕 장보고대사는 1200년전 한· 중· 일을 잇는 동북아의 해상권을 장악하고 우리 민족의 웅대한 기상을 떨친 무역상이자 군인이었고 정치가이자 항해가(航海家)이고 특히 당나라를 떠돌던 우리 유민을 거둔 박애주의자(博愛主義者)였다. 장보고대사는 대략 790년경 완도에서 태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어려서의 이름은 궁복(弓福). 궁파(弓巴). 장보고(張保皐)로 되어있고 일본의 역사서에는 장보고(張寶高)로 되어있다. 대사는 일찍이 그이 친구이자 동료인 정년(鄭年)과 서기 810년경 중국으로 건너가 무령군소장(武令軍少將 우리나라의 대~연
남도민주평화길을 걷는다.남도 어디를 가든지 풍전등화 백천간두 나라를 지키고자 했던 구국의 의병들이 있다.‘사생취의(捨生取義) 삶을 버리고 의로움을 취하다’. 의병들이 간직한 정신을 다시 새긴다.난망한 시국이다. 공정과 상식이 무너지고, 민주와 평등이 흔들리고, 냉혹한 국제정세 앞에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신뢰와 협력의 정신이 무너지니 국가 안위가 위태롭다.도대체 이 시국이 어떻게 될까, 걱정하는 시민들의 한숨소리가 아프다.남도 끝자락에 자리잡고 있는 두륜산(700m)은 소백산맥의 최남단에 위치한 전라남도 해남군의 명산이며 다도해해
장보고기념관이 새 단장을 마치고 지난달 16일부터 시범 운영 후, 9월 1일 정식 개관했다. 기념관은 해상 무역 왕 장보고의 업적과 해양 개척 정신을 기리기 위해 지난 2008년 개관했으나, 내부시설 노후화로 국비 26억 원을 들여 지난 2021년 전시 콘텐츠 개편과 시설 개선 사업을 추진했다.이번에 재개관한 장보고기념관은 2층 구조인데, 1층에는 동아시아 바다를 누빈 장보고 상단의 무역선을 복원해 거센 파도를 항해하는 정신을 표현했다. 2층은 장보고와 관련된 지도, 바다, 적산법화원, 무역, 도전 정신 등을 주제로 미디어아트를 선
목이 길어서 흔들리는 가을. 그 배경이 고요하기 때문에 가느다란 목이 보인다. 어느덧 찬바람이 나니 목을 불쑥 올라온다. 나락, 코스모스, 쑥부쟁이, 강아지풀이 달그림자까지 올라온다. 누가 기다리지 않아도 기다릴 것 같은 초가을은 애잔한 슬픔이 밀려온다. 단조롭게 타전을 친 귀뚜라미는 현재의 고요함을 누구에게 전하고 싶은 것일까. 계절은 수많은 꽃을 피고 지게 하는데 그것은 아마 쓸쓸함을 알기 위해서다. 시간에 쫓기지 않기 위해선 아주 천천히 단조롭게 걷는다. 마치 음악 캐론 코드처럼 단조로운 코드 진행으로 반복해서 듣는다고 해도
소안면에서 근무하다 고금면사무소로 자리를 옮긴 김현미 팀장. 지난 호에 소개된 김동일 님의 취재 차 고금면사무소를 방문했을 때, 뜬금없이 한 사람을 데리고 나타나 다짜고짜 하는 말이 "사회복지직인데요 고흥군청에서 근무했어요" "고금면에서 축양장을 하는 남편을 따라 왔어요! 이쁘지 않으십니까?"김 팀장의 말에, 묻기를 "타 지자체로 전출하게 되면, 한 직급 내려서 오잖아요"김 팀장은 "당연히 내려서 왔죠" 그 뒤로 "체전" "자원봉사" 기타 등등 무슨 말을 했던 것 같았는데, (전라도 말로 무엇인가 사끌라는 뉘앙스도 있어서 경계심에)
헤밍웨이.이제 끝났다는 말이 들려왔다. 하지만 노인은 청새치를 끝끝내 끌어올렸다. 상어는 끝에 끌을 더한 끝. 노인은 헤밍웨이였다. 다음이란 없다. 그래서 지금은 끝나지 않은 것이고, 끝날 수 없는 것이며, 끝내서도 안되는 것.모든 것은 얼마나 그걸 원하는가에 대한 인내력의 시험. 시험의 고통이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다.극한의 고통이란 가보지 못했던 세계의 진입으로써 상상할 수 있는 어떤 것보다 좋은 것이라서 선물이고 축복 같은 것.. 말하자면 냉정과 열정 사이의 일, 더 엄밀히 말하자면 냉정과 열정을 오가며 둘의 시공간을 좁히려는
요즘사람들은 복잡한 생활패턴에서 잠시 벗어나 휴식을 갖기 원한다. 그래서인지 여유가 생기면 공원, 강변, 숲속, 해변 등을 거닐면서 재충전의 기회를 놓치지 않는다. 여름의 끝자락, 바닷가 산책이 조금 누그러질 때는 잠시 산길을 걸어보는 것도 좋겠다.숲속을 거닐면서 숲의 기운을 만끽할 수 있는 환경과 시설을 갖추어 놓은 곳이 산림욕장이다. 이름난 산이 있는 주변에 주로 갖춰져 있는 게 보통이지만, 섬 중에 산림욕장이 있다는 제보를 받고 취재에 나섰다.고금도 덕암산 꽃누리 생태공원이다. 오래전 완도군이 시행한 사업인데, 생태공원 숲길
9월이라 하면 참으로 듣기가 좋다. 많은 식물이 하나의 정점으로 수렴될 것이고 자연의 법칙에 따라 다양한 모양이 그려진다. 별이 펼쳐진 우주에도 둥그런 원으로 그려질 것 같기도 하다. 또한 그 한계가 무한한 공간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우리 눈에 보이는 것들은 물질적인 한계에 있다. 그러나 신은 그 물질을 다양하게 만들어 낼 수 있었다. 보이지 않는 것들 속에 실상이 있다는 것이다. 깨알 같은 작은 열매 속에도 별빛 같은 빛이 나온다. 살아오면서 많은 경험을 하면서 보이지 않는 실상이 있다는 것을 느껴왔다. 연꽃 속에 한 생명
해풍을 맞고 자라 향과 당도가 높은 ‘완도해변포도’가 본격 출하되고 있다. 완도군은 13개 농가, 대략 5ha에서 켐벨에서 부터 거봉, 샤인머스캣 등을 재배하며 한해 예상 수확량은 평균 45~7톤이다.목포대학교 산학협력단이 실시한 '해풍의 농업적 이용 가치에 대한 연구 용역'에서 완도해변포도는 타 지역 대비 안토시안 함량과 당도가 높다고 발표하기도 했다.예로부터 포도는 신의 과일로 알려졌다. 인류가 최초로 재배한 과일이며, 섬유질과 비타민, 무기질이 풍부하여 면역력 강화, 노화 방지, 시력 개선 등 다양한 역할을 한다. 게다가 동서
인간은 자신의 별이다. 정직하고 완전한 인간을 만들 수 있는 영혼은 모든 빛과 모든 힘과 모든 운명을 지배한다. 그에게는 어떤 일도 너무 빠르거나 너무 늦게 일어나지 않는다. 우리의 행위는 곧 우리의 천사. 선이든 악이든, 조용히 우리와 함께 걷는 운명의 그림자다.이 아름다운 말은 소문난 독서광인 버락 오바마 미국 전대통령이 가장 애독하는 책 중의 하나인, 랠프 월도 에머슨의 ‘자기 신뢰(self-reliance)’ 서문에 인용된 시다.언제나 사소한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생각은 일상의 감각이 더해져 한 사람의 태도를
″오매매 사진 찍는 줄 알었으먼 머리에 물이라도 조깐 무치고 올것인디″제주도 성산읍 시흥리가 고향인 김영숙 해녀는 병원에 다녀오는 길이라 화장을 안했다며 멋쩍은 표정.″내가 스물두 살 때 고향 친구가 육지에 물질을 가자고 꼬시는 거여, 그때 수영을 할 줄 알아도 남들처럼 잘하지 못했거든. 물질을 하는 건 많이 봤어도 물질하는 기술은 없었고 거기에 수영도 잘 못함서 겁도 없이 친구를 따라 나섰어“이렇게 시작된 김 해녀의 물질은 오늘날까지 47년을 이어지고 있다. 첫 원정 물질은 완도의 대모도(大茅島)로 왔다고.″처음 모도로 와서 갓
8월에 바닷가에서 자란 야생화는 순비기나무와 대나물 그리고 갯메꽃이다. 순비기나무와 대나무는 바위틈에 자라고 갯메꽃은 모래밭에서 자란다. 바닷가 야트막한 산에선 백합과 노랑 원추리 꽃이 핀다. 뱃사람과 섬사람들을 오고 가는 모습을 자세히 보고 있다. 바닷가 언덕과 작은 섬들의 땅은 천박하다. 빗물이 혹시 머물다 갈 수가 없다. 오자마자 흘러버린다. 우리의 인연도 옷깃을 단정하게 차릴 시간이 없다. 방금 지나버린 시간도 잡을 수 없어 아쉽다. 순간순간 정이 쌓이고 나도 모르게 눈물이 될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어린 날에는 좋아하는
내가 숲으로 간 것은 신중하게 살기 위해서, 삶의 정수만을 마주하고 싶어서, 그것이 가르쳐 주는 것을 내가 배울 수 있는지를 알아보고, 내가 죽을 때 진정으로 살지 않았음을 후회하지 않기를 바라서였다. 나는 진실로 삶이 아닌 삶은 살고 싶지 않았다. 삶이란 너무나 소중한 것이고, 삶에서 꼭 필요한 것이 아니라면 체념이라는 것은 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길게 살고 싶었고 삶의 골수를 모두 빨아들이고 싶었으며, 삶이 아닌 것은 모두 뿌리 뽑아 버리는 스파르타인들처럼 강인하게 살고 싶었다. 넓게 베어내고 가까이 잘라내 삶을 구석까지 몰고
완도군은 7개의 천연기념물을 보유했다. 완도읍 주도 상록수림(제28호), 보길도 예송리 상록수림(제40호), 예작도 감탕나무(제338호), 소안도 미라리 상록수림(제339호), 맹선리 상록수림(제340호), 군외면 대문리 모감주나무군락(제428호), 보길면 정자리 황칠나무(제479호), 이 중 3개는 보길도에 있다. 예송리 상록수림과 정자리 황칠나무, 예작도 감탕나무가 그것이다.지금은 아쉽게도 예작도 감탕나무 천연기념물 지정이 해제된 상태다. 주민들의 관심과 보살핌으로 살아온 이 나무는 민속, 생물학적 자료의 가치가 커서 천연기념물
천하를 살아감에 있어 반드시 그래야한다는 마땅한 법도 없고, 그래선 절대로 안 된다는 법도 없다. 있다면, 의로움을 잣대로 삼아 해야하고 안해야만 있을뿐.조선후기 과거시험에도 채택됐다는 삼국지.삼국지는 천하의 인걸들이 드넓은 전장에서 다양한 전략과 전술을 펼치며 천하통일을 목표로 싸움을 펼치는 인문고전으로써 오늘날까지 가장 사랑받고 있다. 삼국지의 백미 중 하나는 폭발적인 전투력으로 조조의 백만 대군을 필마단기, 창 한자루로 가로지르며 주군인 유비의 아들 아두를 구출해 온 장면. 최고의 명장면으로 꼽히는 상산 조자룡이다.유비마저 자
석잠풀, 누리장나무, 파리풀, 며느리밥풀, 개암나무 열매, 달개비, 꼬리조팝나무, 익모초, 달맞이꽃, 싸리꽃 등이 8월에 피는 야생화다. 이중 달맞이 꽃은 밤에 핀다. 8월의 별자리는 게자리다. 아침에 해와 같이 동쪽에서부터 시작하여 서쪽으로 진다. 그러나 태양과 같이 있기에 볼 수가 없다. 게자리부터 궁수자리까지 6개의 별자리를 태양 빛 때문에 볼 수 없다. 1개월이 지나야 하나가 빠지고 하나가 더해진다. 어찌 보면 태양과 같이 동행하는 삶인지도 모르나 지구가 공전하기 때문에 위치가 바꿔지는 것처럼 보인다. 이것을 시차라고 말한다
태극기의 물결이 찬란하다. 완도 화흥포항에서 대한, 민국, 만세호를 타고 소안도에 가면 집집마다 내걸린 태극기가 자랑스럽게 여겨지는 8월이다. 언제 보아도 그 모습은 당당하고 아름답다. 소안항일운동기념관 내 당사도 등대 습격사건을 재현해 놓은 전시실에는 다양한 종류의 태극기가 걸려있다. 여러 문양의 태극기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일까? 우리나라 최초의 태극기는 조선통신사에 의해 일본으로 가는 배에서 뚝딱! 만들어졌다고 배운 적 있다. 제아무리 국권을 잃었다지만 국가의 상징을 어찌 그렇게 쉽게 만든단 말인가? 국기로서의 논쟁거리도 많다.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만큼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신약에 나오는 말씀인데, 우리의 길이란 함께 가는 서로의 등 뒤에서 만들어진다는 것.길을 가다 샘 곁에 심어진 나무가 풍성해져 가지와 열매가 담을 넘어 이웃에게 유익을 준다면, 그 길은 가도가도 눈부시게 아름답기만 하고 가도가도 그 삶은 눈물겹도록 사랑스럽기만 하다. 돌아보면 남는 것, 그건 내가 얼마나 그 순간을 사랑했느냐로 설령 지금 받고 있는 것이 오해의 돌팔매일지라도 사랑하고 있음으로 맞을 수 있는 것이다.7월 초 군의회에 방문했을 때, 낮선 남자의 모
노랫말에 “산모퉁이 바로 돌아 송학사 있거늘 무얼 그리 갈래갈래 깊은 산속 헤매냐”라고 하였는데 송학사는 그리움의 상징적으로 썼을 것이다. 산모퉁이 바로 돌아가면 이름 없이 꽃들이 보인다. 깊은 계곡에 무릉도원이 있을 것인데 여기에도 산꽃이 있다. 원초적 본능에 그리움이다. 꽃과 물 그리고 깊은 골짜기에서 울려 퍼지는 음악이 삶의 근원을 파헤친다. 조용히 음미하고 있으면 피아노의 아름다운 선율이 들린다. 자주 서양 클래식 음악을 듣는다. 그중 프레드릭 쇼팽 작곡가 지은 피아노와 가곡을 듣는다. 꽃과 피아노 선율은 하나이다. 깊은 산
7년 전쟁을 모두 승리한 장수가 왜 죽음을 선택했는지, 이순신의 죽음을 놓고 여러 가지 설들이 많다. 이순신의 삶 중에 7년 넘게 끌었던 임진왜란이 한 편의 드라마처럼 끝났다. 그의 극적인 최후 때문에 자살 의도설이나 사망 위장 후 은둔설 등 여러 낭설이 퍼졌다. 이순신의 자살 의도설은 행장에 면주(免胄, 투구를 벗다)라는 표현 하나 때문에 일부러 갑옷을 벗고 전선에 나갔다는 추측이 난무했다. 퇴마록으로 판타지의 지평을 연 이우혁이 왜란종결자에서 이순신의 '사망 위장 후 은둔설'을 채택하면서 그것이 이순신에 대한 정당한 보답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