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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대학법인으로 새출발하는 서울대에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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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호
등록일
2012-03-17 14:39:28
조회수
10558
국립대학법인으로 새출발하는 서울대에 바란다.
정병호 / 서울시립대 제24대 교수협의회장

학내외적으로 반대가 많았음에도 결국 서울대가 법인화됐다. 현재 야당이 서울대 법인화법 폐기 법안을 국회에 제출한 상태이다. 또 서울대법인화 반대 공동대책위원회는 즉시 법인화를 취소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고, 서울대 학생회도 법인화를 철회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국립대학법인’서울대의 미래를 정확히 예측할 수 없다. 또 필자는 개인적으로 서울대를 포함한 국립대 법인화에 반대해 왔고, 지금도 서울대가 다시 예전의 국립대로 돌아가는 것이 최선이라고 본다. 하지만 서울대의 원상회복은 쉽지 않을 것이고 설령 원상회복되더러도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서울대가 바로 서야 대학이 바로 선다는 믿음에서 법인운영대학으로 새로 출발하는 서울대에 몇 가지 충고를 하고자 한다.
무엇보다도 서울대는 법인화 반대론자들의 우려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아직 국립이라는 수식어가 붙어있는 한, 대학 운영에 있어 고등교육의 공공성 확보를 최우선 과제로 삼아야 할 것이다. 입학, 장학 등에 있어 사회소외계층에 대한 배려를 강화해야 한다. 그리고 법인화는 등록금 상승을 초래해 교육을 통한 부의 대물림 현상을 심화시킬 것이라는 우려를 불식시켜야 한다.
또한 재정여건이 열악한 사립대학이 소홀히 하기 쉬운 기초학문에 대한 특별한 진흥책을 마련하여야 한다. 국고지원 예산 가운데 상당부분에 대해서는 우선적으로 기초학문에 투자하기를 기대한다.
그리고 대학의 엄격한 서열구조가 사교육 망국론으로 대표되는 교육문제의 근본 원인이라는 지적이 많다. 그리하여 지방 국립대를 지역거점별 네트워크로 묶어 서울대 수준으로 발전시킴으로써 서열구조를 완화시키자는 제안이 있고, 또 이렇게 하는 것이 지역균형발전이라는 헌법적 요청에도 부합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따라서 서울대가 국립대 네트워크 구축에 적극 참여하고 또 도움이 필요한 대학에는 지원을 아끼지 않았으면 좋겠다. 서울대가 지속적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국민적 지지가 불가결한데 과거의 독점적 지위만을 고집해서는 국민적 지지를 얻을 수 없다는 점을 상기해야 할 것이다.
대학은 학문공동체이기 때문에 대학운영의 자율성과 의사결정의 민주성이 보장돼야 한다. 그러나 서울대법인화법과 서울대정관은 이를 담보하지 못하고 있다. 대학의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이사회의 구성부터 대학 외부세력의 부당한 압력에 취약한 구조로 되어 있다. 이사회에 2명의 정부관료가 당연직 이사로 참여해 예산지원 등을 빌미로 여전히 서울대를 통제할 수 있게 돼 있으며, 처음 구성된 이사회에도 기업 및 사립대학 재단의 이익을 대변하는 인사들이 다수 포진하고 있어 고등교육의 공공성이 훼손될 우려마저 있다. 대학은 외부세력, 특히 국가의 부당한 간섭에서 자유로워야만 본래의 기능을 다할 수 있다는 훔볼트의 경고를 잊어서는 안된다. 대학의 자율성이라는 헌법적 가치를 훼손하는 시도가 있다면, 서울대 구성원들 스스로 이를 단호히 거부해야 할 것이다. 평의원회가 심의기구이긴 하지만 실질적으로 대학 집행부를 견제하는 기능을 할 수 있도록 평의원회의 의결을 존중하는 전통이 세워지기를 기대한다.
또한 서울대의 기업화에 대한 우려가 적지 않음을 명심하기 바란다. 이미 국내외적으로 대학의 기업화 경향에 대한 경고가 점점 커지고 있는 상태에서, 기업 등으로부터 투자재원을 손쉽게 얻고 또 이를 자유롭게 활용하자는 것이 서울대 법인화를 추진한 주된 이유였기 때문이다. 산학협력이 필요하지만, 대학은 기업과는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렇지 않으면 자유로운 학문연구를 통해 인류문화 발전에 기여한다는 대학 본연의 임무를 수행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학문후속세대에 대한 배려와 지원을 아끼지 말 것을 부탁한다. 서울대 출신의 우수한 인재들 상당수가 외국으로 유학하고, 그 빈자리를 국내의 다른 유수한 대학 출신들로 채우고 있는 것이 불편한 진실이다. 학문후속세대가 안정적으로 연구할 수 있도록 획기적인 지원책이 마련되길 기대한다.
작성일:2012-03-17 14:39:28 210.125.184.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