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생활속에서-지나고보니 날마다 좋은 날이었다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07.03.11 11:04
  • 수정 2015.11.08 14:19
  • 글씨크기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오정순 수필가 노화향우

17년 전, 현대문학에서 문예대학 연구반을 개설하였다. 그 때, 외항선을 타는 선장님이 들어왔다. 지금은 고인이 되었지만 바다 가운데서 인생을 공부하느라고 사고의 깊이는 바다를 능가하였다.

 

평범한 사람들과의 부딪침을 겪지 않아서인지 균형잡힌 대인관계를 하지 못하여 선장님 스스로도 혼돈스러워 했다.사람들은 그러려니 생각하며 이해 반 포기 반으로 그 분을 접하게 되었고 얼마 간의 휴가 기간이 끝나면 그 분은 배로 돌아갔다.

 

글은 우편을 통해 읽을 수 있었다. 그 분의 글 내용으로 다시 문장을 정리하면 좋은 글이 될 성싶어도 그 분이 보내주는 글 만으로는 수필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웠다.

 

나는 그 분의 문장 중에서 '파도는 겹치지 않는다'와 '육지에서 멀리 있는 바다에는 파도가 일지 않는다'를 잊지 못한다. 인생의 바다에 그분의 문장을 적용해보며 나는 늘 배를 준비하였다. 바다 가운데로 헤엄쳐 갈 자신이 없으므로 배를 마련해야 한다는 생각에 나는 기도생활을 하기로 하였다.

 

파도는 밀려와 육지와의 경계에서 요란하게 부서지지 결코 깊은 곳에서 부서지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결국 깊은 곳에 마음을 두지 않으면 산란스러움을 겪게 되고 갖은 소리를 다 들어야하며, 부대낄 수밖에 없다.

 

 살 때는 열심히 육지 안으로 들어가 분진을 일으키며 살 냄새 풍기고 살아내야 하지만, 틈틈이 바다 가운데로 들어가 고요하게 정화하지 않으면 우리네 영혼은 나도 모르게 혼탁해진다는 것을 잠시 잊을 뻔 하였다.

 

적극적으로 뛰어 들어 중심으로 들어가거나 아주 소극적으로 바라보기만 하려는 의지가 아닌 채 어중 띤 자리에서 발만 담그고 있으면 파도만 맞게 된다.그런데 광고를 어마어마하게 하는 바람에 속초의 워터피아에 갔다가 묘한 경험을 했다.

 

실내 공간에서 아이들과 물놀이를 즐기기는 위험하지 않아서 적격이었으나, 수심 2.85m의 깊은 곳에는 수중 조끼를 착용하지 않으면 들어오지 못하게 하였다.그 곳에서 인공 파도타기를 하는 동안 나는 무섭게 스릴을 느꼈다.

 

파도에 밀릴 때는 잔뜩 긴장을 하다가 잠시 쉬는 동안 안락함을 누리는 반복적 놀이에 재미가 들렸다. 중심을 잡고 버티기에 수영 훈련이 되지 않은 사람은 어려울 듯하였다.아들 아이와 허우적거리며 몸을 놀리고 잠시 휴식을 취한 다음 다시 들어갔다.

 

파도가 일지 않았다. 그저 둥둥 떠 있기만 하였다. 정말 재미가 없어서 그냥 나와 버렸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늘 파도타기와 같은 위기상황을 격을 때는 잠시잠시 쉼의 고마움을 느끼지만, 파도가 없이 마냥 평화롭기만 한 안정권 안에서는 모든 것이 쉬는 것만 같아서 재미를 느낄 수 없었다.

 

나는 오늘 아침 신문에서 왜 그러는지에 대한 과학적 답을 얻었다. 사람이 스릴을 느낄 때에는 PEA-페닐에틸아민-라는 화학물질이 분비된다고 한다. 그 물질은 전쟁이나 부모가 말리는 연애를 할 때 분비가 촉진되며 사랑의 감정을 더욱 뜨겁게 한다고 한다.

 

어떤 일에 애정을 가지고 치열하게 파도타기를 하는 사람들에게서 볼 수 있는 열정이 주는 쾌감을 이해할 수 있게 한다.인생에서 일을 하며 겪던 파도타기가 끝나면 무료라는 병이 침투한다.

 

늘 잘 하고 살았던 것 같은 경험이 장애가 되지 않도록 새로운 일에 도전하며 파도를 타야 신명을 불러일으킬 수 있고, 새롭게 내 안에서 분비될 화학물질을 애용할 기회도 잡을 수 있다.

 

파도의 정도가 심하면 재난이지만, 일상의 파도는 가벼운 호흡이고 심호흡이다. 그러나 쓰나미 같은 돌풍 내지 광풍이 덮칠 때면 재미라는 말이 쏙 들어가고 만다. 그래도 세월이 지나고 나면 범인류의 차원에서 안전불감증을 치료하게 동기부여가 되고 낡은 건물이 새롭게 설 것이며, 아픔 가운데 희망과 용기라는 덕목이 커져있을 것이다.

 

삶은 잔잔하게 파도가 출렁이는 바다같은 재미만 원할 수 없다. 누리다가 잃어버린 자리에서 평화가 빛을 내고, 죽은 자가 가면 새 사람이 오면서 다친 자리, 아픈 자리, 망가진 자리를 채운다.

 

어두움의 자리는 희망을 품은 자리이므로 생각해보면 날마다 좋은 날이다. 충실히 그날만 살면 사람으로 태어나서 제몫을 다 하는 셈이다. 좋은데는 이유가 필요없고 힘들 때면 희망을 잡고 살일이다. 삶을 놓아버리고 싶은 충동이 누구에겐들 없었으랴.

 

그 희망을 갉아먹는 영적 벌레와의 싸움에서 이겨내면서 부지런하면 음지는 양지로 바뀔 것이다.젊은이의 자살뉴스를 또 접한 오늘, 나는 정말 살아남아보라고 권하고 싶다

 

저작권자 © 완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