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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왜, 한반도의 끝 완도를 선택했나 (17)

완도의 장수도, 제주의 사수도 영토분쟁 (17)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24.03.15 08:34
  • 수정 2024.04.14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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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적 완만한 구릉이 발달해 선사시대 사람들이 거주하기 알맞은 지형이 우리지역 지표조사 과정에서 확인됐다. 2000년대 이르러서야 선사시대 유적 발굴이 이뤄진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그동안 우리지역은 해안지대를 둘러싼 개발행위가 수없이 이뤄졌고, 수산업의 발달로 인한 양식어가 증가로 해안지대 유적들은 알게 모르게 발굴조사도 없이 파괴되어 왔다.


우리지역에서 미약하게나마 출토된 구석기시대 유적의 특징으로는 영산강유역 몸돌석기와 유사하며, 자갈돌을 활용한 몸돌, 격지, 여러면석기, 긁게 등이 확인됐다. 그들은 다른 지역의 자갈돌석기 전통을 따르지 않았다. 주변에서 구할 수 있는 석재들 중에서도 양질의 석재를 배척하고, 의도적으로 석영제 자갈돌과 백색 석영맥암을 선택해 사용한 흔적들을 보이는 특징이 있다.


발굴된 유물의 상태가 좋지 않은 점과 출토된 유물의 수량이 많지 않은 것을 고려한다면, 자갈돌석기의 전통을 따르지 않은 독창적인 기술적 형태를 완벽하게 파악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구석기시대 사람들은 이 지역에서 머무는 동안 기능적으로 도구를 사용한 흔적을 남긴 것으로 학계에서는 유추한다.


그동안 타 지역에서 출토된 자갈돌로 만든 몸돌석기는 서남해안 섬 중에 신안군 압해도를 제외하고 완도군이 유일하다. 이것은 우리지역 구석기시대 인류가 남겨놓은 새로운 유적을 찾을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주었고, 섬으로 이주한 구석기인들의 이동경로에 관한 새로운 인식이 가능해졌다는 것을 알려준다. 

 

완도읍 중도저수지 상류의 고인돌로 추정되는 바윗돌. 마을에서는 아직도 바위를 신성시하는 풍속이 있다.
완도읍 중도저수지 상류의 고인돌로 추정되는 바윗돌. 마을에서는 아직도 바위를 신성시하는 풍속이 있다.

 

 

 

섬 지역 선사시대연구는 해수면의 변화에 관한 연구로 더 깊게 해석해야한다는 주장도 잇따라 제기됐다. 그들이 활동한 당시의 해수면은 지금의 해수면보다 더 낮았을 것으로 추정한다. 우리나라 해수면 연구결과에 따르면, 그 당시 해수면 변동이 매년 상승현상을 보였다. 현재 수심이 3미터 이내인 완도와 해남, 강진군 사이에는 구석기 인류가 이곳에 당도했을 때 보길도 까지 뭍으로 연결되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게 해수면 상승의 연구결과다. 사수도 해역까지 선사시대 인류가 활동무대를 넓히게 된 기틀이 자연적으로 마련된 셈이다.


아울러, 우리지역 선사시대 연구에서 여서도 패총유적의 발굴은 신석기시대부터 철기시대까지 이어지는 해양개척시대로 고대해양문화를 이해하는 필수적인 과정이다. 창조적 역동성을 추적하는 다양한 문화적 특성을 찾는 관점으로 본다면 여서도 패총유적 발굴은 다양한 연구 성과를 얻을 수 있는 토대가 됐다. 


신석기시대 전기의 타제석기제작법, 영선도식토기와 융기문토기가 사용된 점을 따져보면 그들이 활동한 공간의 범위를 더 확대 해석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바다 건너 다른 섬과의 해상교류까지, 이곳에만 머물러 있지 않은 문화교류의 루트까지, 개척정신이 뛰어난 선사시대 인류의 새로운 문화상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고. 


선사시대 인류가 열어놓은 뱃길은 역사시대까지 이어져 옹관고분군과 석관묘 등 전 시대를 아우르는 인류고고학적 문화로 나타난다. 그들이 활동한 시대의 정치적 역동성의 기반을 다진 범위를 학계에서도 이미 발표한 바가 있다. 사수도 해역을 주무대로 활동한 선사시대 인류의 활동상이 청산면 일대 섬들의 선사유적을 통해 확인됐고, 우리지역 고대해양사와 관련해서 완도의 첫 도래인이 구석기시대 인류라는 학계의 논문이 나왔다.


제주도를 오가기 위한 기착지 역할로만 보아 온 그동안 완도군의 고대해양사를 생각하면 그것이 얼마나 큰 오류였다는 것이 새삼 느껴지는 대목이다. 이제는 선사시대 관점에서 인류 역사를 재해석해야만 완도의 본 모습을 그릴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된 것도 우리지역 고대해양사 취재 과정의 큰 수확이다.

 

선사시대 인류는 왜, 한반도의 끝 지점인 완도의 바다를 선택했을까? 사수도 해역을 주름잡았던 선사시대 인류는 바다의 유목민일까? 현대식으로 표현하자면 혹, 그들은 해상왕국 유지를 위해 특전사 임무를 수행한 정예부대는 아니었을까. 

 

정지승 문화예술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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