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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매객을 부르는 매화, 완도에도 있을까?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24.02.23 09:56
  • 수정 2024.03.04 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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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꽃들이 일제히 기지개를 켠다. 꽃망울을 시샘하는 바람에도 아랑곳 없이, 봄을 알리는 첫 신호탄은 역시 매화소식이다. 섬진강변 따라 펼쳐진 광양 매화마을은 봄의 전령 매화로 널리 알려졌다. 


매화의 개화 시기는 모두 다르다. 납월매는 주로 눈 속에 핀 설중매의 일종으로, 순천 낙안면 금둔사는 2개월 먼저 꽃이 피는 납매가 유명한 사찰이다. 그런가하면, 3월이 다 지나서야 피는 구례 화엄사의 홍매도 있다. 일반보다 더 붉은색을 띠기에 흑매라고도 부른다. 사찰 지붕의 검은색과 꽃의 진한 빛이 환상의 조합을 이루는데, 근래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됐다. 


몇해전 눌인 선생을 알게 됐다. 그는 경남 청송에서 대규모 매화단지인 눌인매화숲을 조성해 우리나라 토종매화를 연구한다. 그동안 서로 교류하며 매화이야기로 우리의 인연은 깊어졌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 여러 나라의 야생매화를 찾아다니며, 그는 나무에 깃들인 옛 사람들의 이야기를 조사 중이라고 했다. 중국과도 교류하면서 매우(梅友, 매화를 찾는 사람)들과 깊은 인연을 쌓고 있었다. 우리지역 야생매화에 대해 물었더니, 강직한 선비들이 유배했던 곳에서 토종매화를 찾아볼 수 없는 것이 못내 아쉽다고만 전했다. 


내친김에, 주변에 물어물어 완도의 토종매화를 찾아 나섰다. 당인리와 불목리, 대야리에 그나마 진매의 특징을 지닌 매화가 자라고 있었다. 눌인 선생뿐만 아니라 전국에는 토종매화를 연구하는 사람이 많다. 이것은 한중일 3국의 공통이다.


옛 선비들은 탐매의 풍류를 즐겼다. 춘설에 피어 바람결에 실려 오는 매향을 쫓아 떠나는 여행, 유서 깊은 고택의 담장이나 뜨락을 오랫동안 지켜온 격조 있는 매화를 찾는 탐매객이 여전히 늘고 있다.


호남을 대표하는 매화가 있다. 백양사의 고불매, 전남대 교정의 대명매, 담양 지실마을의 계당매, 선암사의 선암매, 고흥 소록도의 수양매를 호남5매라 부른다. 그중 으뜸은 600년 수령의 천연기념물 제 488호 선암사의 선암매이다.  


호남5매 외에 산청3매, 경북2매, 오죽헌의 율곡매 등이 각 지역을 대표한다. 탐매의 풍류가 중 조선시대 매화와 인연이 깊은 사람은 일평생 매화를 사랑한 퇴계 이황이다. 가사문학의 산실인 담양은 누정문화가 발달했다. 그로인해 선비들이 아끼던 매화가 담양에는 유독 많다. 400년 된 하심매와 350년 된 와송당매, 300년 된 미암매 등이 그것이다.


강직한 성품을 지닌 선비의 흔적이 뚜렷한 이곳에서 세월을 견디며 피어 있을 법도 한데, 이름난 매화를 찾아볼 수 없으니 아쉽다. 찬바람을 이겨내고 피는 그 꽃을 보려고 선조들은 정원에 매화를 심었다. 그러나 과실이 빈약한 야생을 요즘 사람들은 관심두지 않았을 것이다. 열매를 얻기 위함이 아닌, 꽃을 보려고 매화를 심는 것이 사치스러움이었을까? 절해고도 유배지에서 잘 알려진 고매를 볼 수 없는 이유를 들자면 이렇게 추측할밖에. 


매화는 야생 본연의 특성을 지닌 진매계와 살구와 접목한 행매계, 자두와 교잡종인 앵리매계가 있다. 매화를 찾는 탐매객이 오래된 나무를 찾는 것은 매화를 아끼고 가꾸던 선조들의 정신세계를 잇기 위함이기도 하다. 


신안 임자도에 유배했던 우봉 조희룡은 매화 그림으로 이름을 날렸다. 그는 무인의 벼슬을 얻었지만 문무를 겸한 인물이었다. 그의 글씨는 추사체에 가깝고 난초와 매화 그림을 주로 남겼다. 1846년 그가 58세 때 왕명을 받아 금강산 절경을 그렸고, 임자도 유배 중에는 꾸준히 매화 연구에 몰두했다. 향기로운 눈꽃의 바다처럼 빛나는 향설해를 남긴 우봉선생은 매화백영루라고 이름 지은 집에서, 매화 병풍을 둘러놓은 채, 매화를 새긴 벼루와 먹을 쓰고, 매화차를 마시며 지냈을 만큼, 무척이나 매화를 사랑했다. 


그는 매화를 그릴 때 “한 줄기를 치더라도 용을 움켜잡고 범을 잡아맨 듯해야 하며, 꽃 한 송이를 그려 넣더라도 하늘의 선녀와 같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의 그림 속 '홍백매도 대련'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렬한 기세와 화려한 색채의 향연은 보는 사람을 흠뻑 빠져 들게 한다. 그래서 우봉선생을 ‘묵장의 영수’라고 부르기도. 


완도읍 당인리 자은사에는 운용매가 두 그루 있다. 구불구불한 가지가 특징인 운용매를 15년 전에 가져다 심었는데, 꽃이 피면 사람들이 찾는다. 용이 구름 위를 나는 것 같은 형태를 지녔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매화나무다. 

군외면 완도과수연구소 마당에는 수양매가 있다. 50~60년 수령으로 연구소 설립 당시 영암군에 사는 개인에게서 매입해 심어져 관리하고 있다. 
군외면 완도과수연구소 마당에는 수양매가 있다. 50~60년 수령으로 연구소 설립 당시 영암군에 사는 개인에게서 매입해 심어져 관리하고 있다. 
군외초등학교 불목분교의 도서관 건물 뒤뜰에는 제법 큰 키를 자랑하는 토종매화가 있다. 아는 사람만 안다는 불목매이다. 
군외초등학교 불목분교의 도서관 건물 뒤뜰에는 제법 큰 키를 자랑하는 토종매화가 있다. 아는 사람만 안다는 불목매이다. 

 

군외초등학교 불목분교의 도서관 뒤뜰에는 제법 큰 키를 자랑하는 매화가 있다. 아는 사람만 안다는 불목매이다. 도서관을 짓고 나서 심었는지, 학교가 설립될 때 심었는지는 알려진 바가 없다. 분명 누군가는 오래도록 향기를 잃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교육시설을 기념해 심었을 것이다.

 

또, 군외면 과수연구소 마당에는 수양매가 있다. 50~60년 수령으로 연구소 설립 당시 영암군에 사는 개인에게서 매입해 심어져 연구소에서 관리하고 있다. 호남5매 중 소록도의 수양매가 고사해서인지 유독 관심을 끈다. 세 곳을 찾아 본 것만으로도 그나마 우리지역 탐매기행의 위안을 삼는다. 


지금 완도읍 염수골이나 서부도로 따라 줄곧 이어진 상왕산 지류 골짜기 마다 매화가 만발했다. 매화는 봄의 전령이다. 바람에 날려 꽃잎 하나하나가 산화하기 까지 이 봄은 사람들의 마음을 달뜨게 한다. 


마오쩌뚱이 좋아하던 모란을 제치고 국화로 정해질 뻔한 매화, 중국에도 매화를 사랑한 선비가 있었다. 송대 사람 인포는 평생 혼자 살며 300그루의 매화를 심어 아내를 삼고, 두 마리의 학을 길러 자식으로 삼았다. 그를 기념해서 유유자적 자연을 벗 삼아 사는 선비를 비유한 '매처학자'라는 말이 생겨났다. 그의 글에 새긴 소영과 암향은 성긴 그림자와 그윽한 향기를 풍기는 매화를 뜻한다. 


곰곰이 생각하며 다른 장소를 물색하다가 고산 윤선도를 연구하는 지인에게 물었다. "보길도 원림 어디쯤에 고산 윤공께서 아끼시던 매화나무가 있는지요?" 
하지만, 돌아오는 답변이 강한 부정이었다. 

고산 선생은 매화보다 배와 복숭아꽃을 즐기셨다는 것. 매화에 관한 자료를 정리하다가 한참 후에야 그 말뜻을 이해했다. 고산은 선비의 풍류보다는, 신선의 삶을 살고자했던 차원이 다른 세상과 교류하고 있었음을.


정지승 문화예술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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