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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녀 당할머니, 서넙도 당제를 가다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24.02.23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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켕~ 갱갱갱
케겡 케겡 갱갱갱
켕~ 켕~ 켕 갱갱갱~~~


 ″우리 마을에 애기들의 울음소리가 영원히 그치지 않게 해 주시고, 전복과 파래, 김 양식으로 떼돈을 벌어 우리 서넙도가 바다에 가라않게 해 주시기를 용왕님께 비나이다~″

 

갯제
갯제

 

지난 정월 초 하루날 진행 된 서넙도(西芿島) 당제 중 갯제에서 나팔수가 용왕님에게 빈 축문이다. 서넙도는 노화읍의 조그한 부속섬으로 넙도라는 큰 섬에 가려져 잘 알려지지 않은 섬이다. 행정지명으로는 노화읍 서리(西里)마을이다, 88가구 160여명의 주민들이 전복양식과 파래, 김 양식으로 살아가고 있다.  

 

당할머니당에 모셔진 꽃신, 당집에는 예쁜 꽃신과 고운 한복이 마련되어 있다 
당할머니당에 모셔진 꽃신, 당집에는 예쁜 꽃신과 고운 한복이 마련되어 있다 
샘굿을 치는 풍물패, 서넙도에는 세 개의 샘이 있는데 제일 큰 샘에서만 굿을 친다. 
샘굿을 치는 풍물패, 서넙도에는 세 개의 샘이 있는데 제일 큰 샘에서만 굿을 친다. 
새로 건조한 잇가리 배에서 선상굿을 펼치는 풍물패
새로 건조한 잇가리 배에서 선상굿을 펼치는 풍물패

 

서리마을은 젊은이들이 많이 살기에 할아버지가 다니고 아버지가 다니고 내가 다녔던 넙도초등학교 서리분교가 지금은 나의 자녀들이 다니는 학교가 되어 문을 닫지 않고 운영되고 있다. 조그한 마을이지만 아기들의 울음소리가 지금도 들리는 마을이다. 인근 넙도의 내리(內里)나 방축(防築)마을에 비해 가구수나 인구가 현저히 적음에도 당제에 대한 애정은 남달라서 마을의 전 주민이 참여한 가운데 전통이 그대로 보전되고 있다.


다만 내리나 방축마을이 일천만원에 호가하는 황소를 자체적으로 도축하여 당제를 모시는 반면 서리마을은 소머리만 별도로 주문하여 당제를 모신다. 
또한 당굿이나 샘굿, 갯제를 모실 굿패의 인원이 부족하여 지난해부터 외국인 노동자들이 참여하여 풍물가락을 맞추고 있다.

 

     이날 당제에는 필리핀 4, 인도네시아 4. 태국 3명 등 11명의 이주노동자가 당제에 참여하였다.     
     이날 당제에는 필리핀 4, 인도네시아 4. 태국 3명 등 11명의 이주노동자가 당제에 참여하였다.     

 

비록 지금은 외국인노동자들이 참여하여 당제를 모실 때 농악을 치지만 원래 서리 농악이 예로부터 그렇게 유명했다고 한다. 이정관(66. 서리마을 상쇠)씨는 ″제가 어릴때만 해도 할아버지가 발동선을 타고 제주까지 마당밝기를 떠났습니다.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농악단의 가락이 아주 섬세하고 흥겨워요. 누구나 들으면 흥을 느낍니다″ ″정월에 떠난 농악단이 보리가 익어갈 무렵 돈을 벌어서 마을에 돌아오기도 했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도 우리마을에는 쌀 한 톨 나올 농토가 없어서 어른들이 돈을 벌기위해 그랬는지 모릅니다.″    


윤종철(45) 서리 이장은 ″가구수는 80가구가 넘지만 노인가구가 많아 지난해부터 외국인 이주노동자들이 당제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꽹과리나 장구는 어려워서 못치고 주로 북이나 소고를 치는데 연습도 열심히 하고 잘 따라다닙니다, 명절이라 이틀간 개(바다)를 막는데 러시아나 중앙아시아 애들은 개인 시간을 갖는데 반해 동남아시아 애들은 당제에 열심히 참여하죠.″   

제주바다로 떠나는 용화선 - 주민들은 이 배의 이름이 달리 없다고 했다. 예로부터 띠(茅 풀)로 만들지 않고 반드시 볏집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스티로폼 박스는 가라앉지 않고 멀리 가라고 짚으로 만든 배를 받쳐준다고 한다. 배에 달려있는 돈은 다른마을 주민들이 주워간 다고 한다.
제주바다로 떠나는 용화선 - 주민들은 이 배의 이름이 달리 없다고 했다. 예로부터 띠(茅 풀)로 만들지 않고 반드시 볏집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스티로폼 박스는 가라앉지 않고 멀리 가라고 짚으로 만든 배를 받쳐준다고 한다. 배에 달려있는 돈은 다른마을 주민들이 주워간 다고 한다.

 

서리마을은 20여년전까지 마을에서 자체적으로 소를 도축하여 당제를 모셨는데 언제부터인가 도축을 하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그 이유는 뚜렷하지 않은데 수천만원을 호가하는 황소를 도축하기에는 일단 마을의 공동기금도 부족하고 당제에서 소머리만을 사용하기에 이제는 당연히  머리만을 구매하여 사용한다고 한다.


고국을 떠나 이주노동자로 살아가는 외국인노동자들이 참여한 서리마을의 당제를 화보로 엮었다. 


유영인  다도해해양문화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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