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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눈처럼 맑고 고운 딸의 미소, 정향자 엄마가 뿌리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24.02.08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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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한 번은 가야할 운명
하지만 어젯밤은 아니었어요
정말 생사를 가른 밤,
마지막을 위해 사력으로 매달렸더랬죠

날이 밝음, 당신에게 내리꽂히고 싶어서

어떤 조건과 타협없이
당신에게 떨어지는 순간
그냥, 팡!하고 터지고 싶었어요
아니 반드시, 터지겠다는 
의지의 발로가 맞겠죠
당신의 몸에 산산이 부서지는 이름이라면
이대로 사라져도 상관없어요

다만, 어젯밤 내 안에 담은 
달빛과 별빛, 아침 동살과 봄바람 한 줌이
당신의 몸 위에 떨어지면서
서서히 풀려나 내밀하게 스며들길 바래요.

 

 

빗방울 하나만 보더라도 땅으로 내려오기까지, 달빛과 별빛을 머금고 바람과 아침해를 만나 대지에 떨어지면서 이 땅의 생명을 살려내고 있다. 빗방울 하나일 뿐인데, 얼마나 갸륵한 일인가.

 

 

그러므로 세상에 하찮은 일이란 없다. 하찮은 자세와 태도만 있을 뿐.
딸의 웃는 모습이 설부화용(雪膚花容)이라. 첫눈처럼 맑고 고운 미소가 꽃보다 아름다운 용모로 빛나고 있는데, 그 뿌리를 따라가면 역시나 엄마였다.


엄마의 웃는 모습이 봄비의 발걸음 같다. 봄비의 발걸음은 옥색의 실로 가만가만 풀어지면서 발걸음이 지나가는 곳마다 푸른 새싹이 돋아나는 생명의 기운.


김성수 신지면장에게 면사무소에서 꼭 필요한 인물이 누구냐고 물었더니, 김 면장의 말. “완도군청에서 주민과 직원들 간 친화력이 가장 뛰어난 이영주 팀장님이 신지면사무소에서 열일을 해주시고, 면 공무원들 또한 주민을 위해 최선을 다 해주고 있는데, 신지면사무소에서 가장 궂은일을 해주시는 정향자 님을 추천합니다”


이어 “프랑스나 유럽 선진국에선 시민들이 일부러 쓰레기를 버린다고 하는데, 그러한 이유가 바로 필수노동자들의 노동의 가치를 존중해주는 행위(쓰레기가 없으면 일자리를 잃을 수 있기에)라고 들었습니다.” “정향자 님의 아름다운 손이 신지면에 적층되어 우리 신지면은 어떤 것도 훼손되지 않고 아름다운 질서를 이루고 있는 것 같습니다”


1960년생. 61년생이 소띠이니, 쥐띠겠다.
고향은 신지면 월부리로 현재 신지면사무소 청소 업무를 맡고 있는 정향자 님. 

 

 

“우리가 걷는 길, 사용하고 있는 건물들이 깨끗한 이유는 바로 저와 같은 분들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화장실 청소를 한다고 하면 표정을 찌부리시는 분들도, 왜 다른 일도 많은데 그런 일을 하냐고 투박을 주는 분들도 많습니다. 또 어떤 누구는 더러운 일을 왜 하냐고 말하지만, 저는 이 일이 너무 자랑스럽습니다”


“깨끗해진 건물들과 주변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다른 사람들이 행복해 하는 모습을 보고 있는 게 너무 좋거든요”
“청소라는 의미는 누군가에게 친절한 태도로 순수한 사랑을 전하는 것 같아요”


“깨끗해진다는 건, 누군가를 축복하고 고양시키는 일이며, 나의 억울함이 풀리면서 누군가의 잘못을 용서하는 일 같습니다”
“이 일을 하기 전에도 명사십리 해수욕장 화장실과 모래사장 청소를 했었는데, 그때부터 청소라는 일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게 된 것 같습니다”


어려웠던 순간을 묻자, 향자 님.
“아이들 아빠가 당뇨 진단을 받았을 때, 그리고 세상을 떠났을 때, 가장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풍족하진 않았지만, 아이들 셋을 낳고 정말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아이들 아빠는 교통도 불편했던 1980년대, 다리도 안 놓인 완도에서 서울을 하루만에 다녀올만큼 열심히 용달 일을 하면서 가족을 위해 헌신하는 삶을 사셨었죠” 


“남편이 당뇨 진단을 받고 왔을 땐 하늘이 무너진다는 표현도 부족할 만큼 너무 힘들었습니다” 


“너무 젊은 나이에 병마와 싸우게 된 남편이 안쓰러우면서도 한편으론 아이들 셋을 키워내야 했기에 앞날이 막막하기만 했었죠” “남편이 당뇨 합병증으로 눈도, 신장도 안좋아지고 투병생활을 시작하자 생활을 위해 제일 처음, 시작했던 일이 해수욕장 화장실 청소였습니다”
“집안 일만 하다가 처음 접하게 된 청소일은 정말 낯설고 힘들었지만 이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 더 이상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없었기에 최선을 다했던 것 같습니다”


기뻤던 순간에 대해선 역시나 자녀들.
 “부모로써 가장 기뻤던 순간은 자식들이 잘될 때가 아닐까 합니다. 남들처럼 잘해주지 못하고 부족하게만 키운 것 같아서 항상 미안한 마음이 가슴 깊이 자리잡고 있었는데, 아이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자리 잡고 있는 모습이 가장 기쁜 것 같습니다”


“혼자 외지에 떨어져 있던 첫째가 회사에 합격 했을 때, 홀로 있는 엄마 곁에 있겠다며 완도로 내려왔던 둘째가 공무원 시험에 합격 했을 때, 사고만 치던 막둥이가 엄마랑 살겠다면서 완도로 내려와 수협에 입사 했을 때 가장 기뻤던 순간이였던 것 같습니다” 


정향자 님은 “청소 일을 하는 것이 예전엔 부끄러운 적도 있었지만, 저에게는 어떠한 직업보다도 멋지고 아름다운 일입니다”
“무엇보다 저를 필요로 하고 제가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이 일을 사랑합니다”


 “물론 나이가 들수록 몸도 예전처럼 움직이지는 않아 속상하고 힘들 때도 있지만, 이 일을 할 수 있는 동안은 최선을 다하고 싶습니다”
고마웠던 사람에 대해 향자 님은 “길면 길고 짧으면 짧았던 65년 인생을 뒤돌아볼 때 정말이지 고마웠던 사람은 셀 수 없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래도 그 많은 사람들 중에 제가 세상을 버틸 수 있게 해 준 우리 자식들이 가장 고마운 것 같습니다”
“현경이, 현선이, 순민이, 그리고 우리 하나뿐인 사위 준영이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게 빛나는 보석, 우리 손자 승우”
“너희의 엄마가 될 수 있었던 하늘의 축복에 감사하고, 자식으로 내게 와 준 너희에게 너무나 고맙고 또 고마워”


 “사랑할수록 더 사랑스러운 나의 사랑”

“사랑해. 동해물이 마르고 백두산이 닳도록”


너와 나의 완벽한 거리는 천문학적인 그리움과 기하학적인 고독 사이에 흐르는 중력으로 그 중력에 저항하는 궤도 속의 표면장력은 어디로든, 낙하하지 않기 위해 이 밤을 건너 새벽하늘을 날아 너에게로 가는 길.


그 길에서 하늘은 결코 기적을 주지 않고 인내에 응답하는 믿음으로 약속했기에 숭고한 노동의 의미와 그 가치의 소중함을 아는 그는 오늘의 빛이고 내일의 희망이다. 
딸 보단 엄마가 김 한장 차이로 이뿐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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