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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댄스를 보다가 늘봄학교를 걱정하다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24.02.01 16:10
  • 수정 2024.02.01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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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살 손주와 과학관에 소풍을 간다. 주중 오전이라 관람객이 없어서 여유 있게 특별전 ‘신나는 자동차세상’을 구경하고 실내 놀이터 아이누리를 독차지해 놀다가, 로봇 댄스 공연 시간이 되어 1층 로비 에스컬레이터 아래 마련된 무대 앞에 앉아 기다린다. 이내 아기를 동반한 가족들이 모여들고, 어린이집 교사들이 아기들을 인솔해 견학을 온 팀도 여럿이 눈에 띈다. 


어린이집 교사들이 포토존에서 아기들 사진을 찍는데, 그게 보기에도 쉬운 일이 아니다. 주변에 시선을 끄는 것이 많아 사방으로 종종거리며 공처럼 굴러가려는 아기들을 한곳에 모으기가 쉽지 않다. 어렵게 사진 촬영을 마친 교사 둘이 옆으로 지나가며 얘기한다. “여기서 로봇 댄스를 하나 봐요.” “응, 그런가 보다.” 그들은 아기들을 재촉하며 무대를 지나쳐 밖으로 나간다. ‘사진만 찍고 공연을 안 보고 가다니….’ 

 

 

또 다른 어느 교사가 휴대폰 통화를 한다. 버스 기사님에게 출구 바로 앞으로 와달라고 약속 시간과 장소를 변경하는 상황으로 보인다. 통화를 마친 교사는 아기들을 나란히 앉힌다. ‘그렇지. 이게 얼마나 멋진데, 안 보면 안 되지.’ 


드디어 흥겨운 음악과 함께 화려한 조명이 켜지고 ‘얼굴로봇’이 나와 인사를 한다. 아기들은 벌써 눈이 휘둥그레져서 집중한다. 이어서 깜찍한 로봇 여섯 명(?)이 BTS의 ‘다이너마이트’와 동요 ‘아기상어’에 맞춰 춤을 춘다. 로봇들은 동작이 정교하고 대열을 자유자재로 바꾼다. 믿을 수 없이 환상적이다. 


감탄사를 외치는 아기, 자리에서 일어나 통통 튀며 춤을 추는 아기들이 사랑스럽다. 젊은 부모들은 아기들 사진 찍어주랴, 무대 관람하랴, 분주하다. 어른들도 어깨를 들썩이며 잠시 동심으로 돌아가 즐긴다. 온전히 빠져든다. 


그런데 시작 전 전화 통화를 하던 교사가 아기들을 일으켜 세운다. 한 손에 두 아기의 손을 붙잡고 아기끼리도 손을 잡게 한다. 이름을 불러도 무대만 바라보고 있는 다른 아기 두 명을 남은 한 손으로 이끄는데 수월치 않다. 도와줘야 하나, 내가 망설이는 사이 교사는 급기야 한 아기의 패딩 모자를 잡아 끌어당긴다. 교사에게 손과 모자를 잡혀 끌려가는 아기들, 발걸음은 출구를 향해 이동하지만 고개는 줄곧 뒤를 돌아보며 무대를 바라본다. 한 아기는 문을 나갈 때까지 무대 쪽을 향해 작은 손을 흔들어 작별 인사를 한다.


로봇 댄스는 오전 11:30, 오후 15:30, 하루 두 번 15분씩 공연한다. 15분은 아기들이 집중할 수 있는 최적의 시간이다. 아마도 어린이집 점심시간이 12시라서 시간을 맞추기 위해 도중에 나가는 듯했다. 아기들에게 15분의 여유를 주기 어렵다니….


얼굴로봇의 마무리 인사가 끝나고 로봇 친구들이 모두 퇴장했는데 손주는 자리를 떠날 줄을 모른다. 무대 뒤로 따라가 보자고 조른다. 오후에 또 보러 오자고 겨우 달래서 왔는데 집에 들어오자마자 로봇 댄스 흉내를 낸다. 거기서는 아빠 품에 안겨서 가만히 보고 있더니 집에서는 활발하다. 


주중에는 공원, 놀이터, 수영장, 키즈 카페, 그림책 원화 전시회, 어린이도서관 등에 아기들이 없다. 아기들은 작은 배낭을 등에 메고 노란 버스를 타고 어린이집과 유치원에 간다. 어린이집에서는 어린이가 아니라 한 돌 이전의 영아부터 보육하고 있다.
개학을 앞두고 늘봄학교에 대한 논의가 뜨겁다. 7살 아기가 아침 7시부터 저녁 8시까지 13시간을 학교에 있을 수 있다니, 발상이 놀랍고 결과가 걱정스럽다. 


하루 24시간 중 8시간 노동으로 누구나 생계 걱정이 없는 나라에 살고 싶다. 8시간은 잠을 자며 몸을 돌보고, 나머지 8시간은 스스로 원하여 선택한 무엇인가를 즐기며 살고 싶다. 동네 산책, 노을 바라보기, 식물 가꾸기, 동물 돌보기, 음악회와 연극과 미술관 관람, 공예품 만들기, 악기 연주하기…, 하루 일과를 마치고 해가 저물면 가족과 친구와 연인과 이웃이 집에 모여서 저녁밥을 같이 먹는 나라는 얼마나 멀리 있는가. 


이 세상에 사람으로 와서 0세부터 집이 아닌 곳에서 부모가 아닌 사람과 집단생활을 시작하고, 교실 유리창 밖이 캄캄해지도록 일 나간 엄마 아빠를 기다리며 유년을 보낸 아기들이 자라서 어른이 되는 나라, 그 나라가 끝내 지불하게 될 사회적 비용이 두렵다.


사람 일생의 모든 시기가 중요하지만, 특히 유년기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카라마조프 형제들’에서 말한다. ‘유년 시절 즐거운 추억이 많은 아이는 삶이 끝나는 날까지 안전할 것이다.’ 그리고 ‘어린이의 1시간은 어른의 10년과 맞먹는다. 내가 좋은 애니메이션을 만들기 위해 애쓰는 이유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이 말은 과장일까?


오늘 로봇 댄스 공연 도중에 나간(끌려 나간) 아기들이 주말에 엄마 아빠와 함께 과학관에 가서 처음부터 끝까지 공연을 볼 수 있기를 바란다. 현수막과 광고 배너 앞에서 인증사진은 안 찍어도 되니, 맘껏 공룡 모형을 만지고, 아이누리 놀잇감과 신기한 과학실험을 하나하나 빠짐없이 다 해보고, 궁금한 것은 엄마 아빠와 눈을 맞추고 질문도 하고, 그러기를 바란다.

 

 

강정희 강진대구중 교사
著 다정한 교실에서 20,000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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