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문화자원 넘쳐나지만 그것에 관심 밖인 사람들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24.01.26 08:58
  • 수정 2024.02.17 07:29
  • 글씨크기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지난해 완도군의회는 지역관광 활성화 차원의 선진지 견학으로 부산 등지를 다녀왔다. 그곳으로 목적지를 정한 것은 예술촌으로 바뀐 깡깡이 마을과, 완도군과 비슷한 조건의 어촌마을에 형성된 문화관광 활성화 프로젝트를 배우자는 의미였다. 그리고 한 지역의원은 경남 통영의 바다 경관 디자인을 지목하여 본보에 기고했다. 발전지역을 조사하고 애써 그것을 배우려는 완도군의회의 노력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었다. 

한국전쟁으로 인해 부산은 국제시장으로 변했고, 경남 통영은 문화예술인의 고향이 됐다. 통영을 한국의 나폴리로 부른 것은 뛰어난 바다 경관 때문이기도 하지만, 유난히 많은 예술가를 배출한 지역적 특색이 한몫했다. 그 바다는 시인 유치환, 김춘수, 소설가 박경리, 음악가 윤이상, 미술가 전혁림 등 다양한 장르의 예술인을 키워냈고, 그들이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했다. 전문예술인의 창작활동 때문에 통영은 문화가 살아 숨 쉬는 명실공히 예향의 도시로 발돋움할 수 있었다.

세계 어느 곳을 가보더라도 자연 경관과 함께 문화예술이 살아 있는 지역은 유명한 관광지다. 아름다운 곳을 오래도록 기억에서 머물러 있게 한 것은 그 지역이 지닌 독창적인 문화예술의 힘이 작용한 결과다.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문화예술 행위를 창조의 기본 동력으로 삼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그렇다면 해양관광시대를 꿈꾸는 완도는 어떤가. 완도의 바다는 통영의 그것과 무엇이 다를까? 완도의 바다는 통영보다 덜 아름다울까? 완도의 섬들은 문화자원이 없을까? 그 문화자원은 다른 지역보다 더 후지고 뒤떨어졌을까? 무수한 궁금증만 남긴 나의 의구심은 여태 떨쳐버리기 힘든 큰 짐이었다.

흔히 하는 말이 ‘경제 위에 정치, 정치 위에 문화예술’이라는 표현을 쓴다. 가장 완벽한 결과물을 두고 하는 말이 있다면 “이것이 바로 예술이야!”라는 그 한마디로 정리된다. 이것은 인간이 생산한 최고의 산물이 예술분야라는 뜻일 게다. 그래서 역사적으로 가장 완벽한 때를 가리켜 ‘르네상스 시대’라고 부르는지도.  

지난 연말 완도 출신의 문인 3인방을 만났다. 그것도 완도군이 아닌 곳에서 그들을 영접한(?) 기분은 아득했다. 제1회 이외수 문학상에 당선되어 1억 원 상금을 받은 청산도 출신 소설가 정택진, 금일읍 출신 신춘문예 당선 소설가 이원화, 2023년 신춘문예와 송순문학상을 동시에 거머쥔 완도읍 출신의 오후랑(필명) 시인이 그들이다. 그들을 이웃 동네에서 열린 북 콘서트 행사장에서 만났다. 이외에도 여러 출향민 예술가들을 알고 있지만, 그들은 문화예술 환경이 잘 형성된 곳에서 창작활동을 하고 있다. 고향 바다에서 얻은 감성을 타지에서 오롯이 키워내고 있는 것이다.

당선된 상금의 크기가 전부는 아니겠지만, 적어도 그들은 그 어렵다는 공인된 문단에 보란 듯이 등용했다. 평산 책방지기 문재인 전 대통령은 오후랑 시인의 작품을 친히 SNS에 홍보하여 메시지를 국민께 알리는 것으로 시인의 탄생을 축복하기도 했다. 당연히 수상 소식을 취재했어야 했는데, 이미 늦게 우리의 만남은 이루어졌다. 만나고 싶어 만난 게 아니라 우연히 알게 된 소식이었다. 수상 소식을 듣고 가장 기뻐했을 당사자들은 지역신문에 알리는 것 조차도 어쩌면 겸연쩍게 느꼈는지 모른다. 창작활동에 방해가 될 것을 염려해 외부로 알려지는 것을 거부하는 전문예술인이 많다. 

반면, 생활 예술인은 조금 다르다. 그들은 스타가 된 것처럼 언론에 노출되기를 극도로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 취미생활을 하면서도, 동호회나 민간단체를 꾸려 활동하는 것이 전부이면서도, 나서기 좋아하고 자랑을 일삼는 특징을 보인다. 그들은 일반 공모전 입상마저도 훈장쯤으로 여겨 주위를 떠들썩거린다. 취재하는 과정에서 느껴왔던 솔직한 나의 경험담이다.

우스갯소리 같지만 작가에게도 여러 종류가 있다. 나쁜 작가, 좋은 작가, 훌륭한 작가, 위대한 작가 등등 구분한다. 세상이 어떻게 되든 말든 자기 자랑만 일삼는 작가는 나쁜 작가이고, 본인의 창작물이 자신을 성장시키고 공익에 우선하면 그는 분명 좋은 작가이며, 시대의 아픔을 함께하는 작가는 위대한 작가라는 뜻이다. 이것은 작가의 세계에서 깰 수 없는 불문율이다. 창작을 위해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가, 어떤 사상을 지녔는가를 가늠하는 것이 평가의 기준이기에, 작가의 길을 흔히 산고의 고통이 따르는 가시밭길이라고 말한다.

예술의 본질을 인문학적 소양에서 찾는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고 했다. 정식으로 문단에 출사한 이들의 당선 소식은 앞으로 더 큰 일을 이루어 가라는 증표이다. 그들 앞에 놓인 것이 꽃길보다는 가시밭길임을 잘 알기에,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걷는 것으로 예술혼을 불태운다. 이것이 진짜 작가와 무늬 작가를 구분하는 척도이다.

완도는 문화예술의 불모지다. 완도의 섬들은 훌륭한 예술인을 다수 배출했다. 그들은 다른 지역에서 얻을 수 없는 감성을 고향 바다에서 얻었지만, 지역 사회는 그들을 품지 못했다. 먹고 사는 것에만 급급하여 아직도 보석을 찾는 눈을 뜨지 못했다는 표현이 적합할 것 같다. 취재하는 과정에서 느낀 것이 있는데, 완도 출신들은 대다수가 섬에서 나고 자란 것을 부끄럽게 여긴다는 점이다. 그것은 평온하고 아름다운 바다가 주는 무형의 것에 눈뜨지 못했다는 증거이다. 

섬 문화가 뭍으로 가서 뿌리를 내리고 문화예술인의 창작 영역에 큰 힘을 보탠 것으로 예향의 도시 목포가 탄생했다. 목포는 전남의 섬 지방에 흩어진 문화가 결합해서 오늘날의 예향이 됐다. 문화예술의 힘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연구결과다. 신지도에는 조선의 르네상스를 이끈 인물이 있었고, 유무형의 문화재급 자원이 완도군에는 여전히 존재한다. 그런데도 지역사회는 그들에게 관심 조차 없다. 그것을 볼만한 눈이 없다. 진짜를 못보니 가짜가 판을 쳐도 그게 맞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완도군의 큰 병폐로 여겨지는 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 아닐 터다. 

인류의 가장 완벽한 시대는 문화예술이 융성한 때이며, 그것이 생활 곳곳에 스며있는 삶을 유지해야만 지역의 발전 가능성을 점지할 수 있다. 완도의 섬 곳곳에는 문화자원이 넘쳐난다. 그것을 빛나게 만들 수 있는 인적자원을 키워내는 일은 지역 사회가 관심가져야 할 중요한 과제 중 하나이다. 

고향 바다는 모두에게 충분한 자양분을 공급했고, 세찬 파도는 세상을 살아갈 용기를 얻게 했다. 완도군이 해양관광시대를 잘 이끌어 가려면 얽혀진 실타래를 하나씩 풀어야 한다. 그럴 때라야 저 바다에 점점이 떠 있는 섬들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언어로 반짝일 수 있기에. 

 

정지승 문화예술활동가

저작권자 © 완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