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시간을 달리는 기차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24.01.18 16:55
  • 글씨크기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갈 수 없는 어떤 날로 가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만화 속 은하철도 999 같은 기차를 상상한다. 끝이 보이지 않는 은하를 달리던 C6248. 무한히 뻗은 궤도는 꿈으로 달릴 수 있는 희망이었다. 
기계 인간이 되어 영원히 살기를 원했던 엄마의 유언에 따라 우주 열차를 타고 행성을 여행하는 철이가 마치 내가 된 것처럼 한때 기차는 진심이었다. 그래서였을까 기차는 어린 시절 꿈의 대상이었다. 어디든 가고 싶은 곳으로 데려가 줄 것만 같은 기대감이기도 했다.


처음 기차를 탄 것은 도시인이 되고 싶어서 고향을 떠나던 날이었다. 좋은 곳으로 데려다줄 거라 믿고 있던 기차가 기쁨보다는 낯선 곳으로 향하는 두려움이었다. 다행히 기차는 그날 이후 집으로 가는 길의 설렘이 돼주었다. 서울역에서 목포로 향하던 막차는 달려도 달려도 지루하지 않았다. 생각해 보면 그때 느꼈던 감정은 이젠 다시 느낄 수 있는 종류가 아니란 생각이 든다. 


그리운 것들에 대한 그리움도, 태어난 곳으로 다시 돌아가는 판에 박힌 감정도 아니었다. 타향과 고향을 연결한 통로였고 떠나기도 돌아오기도 하는 길목이라서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파동 같은 것이었다. 


이상하리만치 평온하면서도 서러움 같은 것도 조금은 섞여 들었을 두근거림이었다. 지금은 그 통로에서 너무 멀리 떨어진 것 같아 씁쓸하기만 하다. 마치 간이역에 서 있는 것 같은 마음이다. 역장도 없이 들고나는 사람처럼 가슴 한쪽이 휑해진다.
며칠 전 지방에 내려갈 일이 있어서 기차표 예매 사이트에 들어갔다. 홈페이지를 열자, 명절 기간 표 예매에 대한 공지가 떴다. 지금도 여전히 명절 표는 특정한 기간에만 예매할 수 있는 듯했다. 자연스럽게 이십 대 때 목포행 기차표를 구매하려고 했던 순간들이 스쳐 갔다. 귀성 당일보다 길게 줄을 섰던 사람들, 표를 손에 넣지 못한 사람들이 매진이라는 글자 앞에서 허탈해했던 표정들이 지나갔다. 


예매 실패로 ‘표 구함’이라는 종이를 들고 애타게 서 있었던 사람들은 여전히 고향을 찾고 있을까. 
명절 고향에 갈 때 교통수단은 기차나 고속버스였다. 
그런데 고속버스는 새벽에 출발해도 자정이 다돼서야 집에 도착했다. 그러니 정해진 시간에 도착할 수 있는 기차표 예매가 명절 전 통과해야 하는 최대 관문이었다. 운 좋게 표를 구해 밤새 달리던 그 길이 행복한 기억일 수밖에 없는 것은 수고로움이 있어서일 게다. 


사람들로 붐볐던 객실에서는 서로의 관심사를 찾아 얘기를 나누곤 했다. 
오랫동안 앉아 있어야 해서 자연스럽게 음식이 오갔고, 홍익 매점의 간식 차도 한번 객차를 지나가면 텅 비기도 했다. 
낯선 사람과 쉽게 친해지는 성격이 아니었던 나도 옆사람과 얘기를 곧잘 나누었다. 타인이지만 아마 같은 쪽으로 가고 있다는 것이 서로의 접점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객차는 저마다의 사연이 섞여 혼잡했고 시끄러웠다. 그런데 그 혼란에 섞일 수 있어서 다행이었던 날들이다. 


그때 비몽사몽으로 깜깜한 바깥을 내다보면 고향 집 툇마루에 앉아 웃고 있던 내가 보였던 것도 같다. 
소란에 지쳐 잠이 들기도 했고, 종착역을 알리는 ‘목포의 눈물’이란 노래에 맞춰 단잠에서 깨기도 했다. 그래서 그 밤이 내가 돌아가고 싶은 어떤 날 중 하루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가끔 장거리 여행을 할 때 기차를 타곤 한다. 두 시간 남짓이면 목포역에 내릴 수 있다. 빨라진 만큼 객실도, 밖으로 펼쳐지는 풍경도 낭만과는 거리가 멀다. 혼잡하거나 시끄러움도 자연스레 사라졌다. 
그 시절 소란이 그립기도 하다. 옆 사람은 어디까지 가는지, 무슨 일로 기차를 탔는지, 고향에서 기다리는 사람은 부모일지, 아니면 편도인지 왕복인지 그런 사소함이 위안이 되기도 할 테니까.


몇 주 후면 설 명절이다. 그래서인지 몸속에는 그리움의 핏물이 돌고 돈다. 앨범에 꽂아둔 사진 속의 색바랜 얼굴들을 문지른다. 설 쇠러 가고 싶다. 엄마 아빠가 버선발로 나와 반겨주는 그곳으로 가고 싶다.
부모가 부재한 고향 가는 기차는 아픈 마음을 담고 기적이 울리고, 아픈 마음을 싣고 기차가 달린다. 


그래서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고향 가는 길은 어린 시절의 나와 매번 작별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 보니 어쩌면 어린 시절의 나와 만나러 가는 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생각하니 고향이란 단어가 다시 포근해진다.
시간을 자유롭게 달리는 기차가 있다면 그 시절 목포행 객차 한 칸에 앉아 있고 싶다. 통일호여도 무궁화호여도 좋을 것 같다. 옆좌석은 엄마 같은 후덕한 아주머니가 타면 좋겠다. 
그러면 나는 집으로 가는 길에 내 고향 얘기를 들려주며 밤을 달려갈 것이다. 
가족의 웃음이 붐비는 마당으로 ‘엄마’를 크게 부르며 들어서고 싶다. 

 

 

 

김지민 수필가

저작권자 © 완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