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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보다 더 절박한 시간이 다시 또 찾아 올까요?

고향 신지에 메타쉐카이어 4백주 구절초 5천본 기부 김태임 할머니와 딸 양임 님

  • 김형진 기자 94332564@hanmail.net
  • 입력 2023.12.21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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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나에게... 당신 보다 더 절박한 시간이 다시 또 찾아 올까요?
당신이 전부란 걸 알게 되었을 때, 당신은 떠나고 없었죠.
하지만 난 그곳에 멈춰 서 있었어요.


다신 볼 수 없는 절망감이었지만, 가련하게 뛰는 심장은 누군가의 숨막히는 사랑으로 잠시 쉬어갈 뿐, 그 치열했던 그리움에 기대고 있음은 더한 사랑의 기억으로 당신 곁에 머물기 위해서였죠.


당신이 다시 올 수 없을지라도 난 그곳에 서 있을 거예요. 영원토록요!


만나야 할 순간, 만나지 못한다는 것. 그것만큼 가슴 아린 것도 없을 것인데, 사랑하는 이에게 자신의 아픈 모습을 보여주지 않겠다는 절대적 각오로 보였다. 

 

 

태임 할머니는 몸이 불편해 병원에 입원했다는 양임 님을 만나기 위해 하루가 멀다하고 전화를 건단다.
물론 양임 님은 태임 할머니에게서 걸려오는 전화는 일체 받지 않는다고 했다. 
그럼, 할머니는 양임 님을 보살피고 있는 딸에게 전화를 걸어 "엄마, 지금 어딨냐?"고 채근하면, 딸은 또 양임 님의 엄명에 따라 "엄마가 지금은 아니란다"면서 더 이상은 묵묵부답. 아니, 그렇게 살갑던 딸이 무슨 동족상잔의 비극으로 세워진 38선을 친 것도 아니고 은산철벽을 세워 한발짝도 못 들어오게 한다. 환장할 일. 


지난 호에 엄마의 말을 들었으니, 이번 호엔 딸의 이야기를 듣고자 이리저리 정보를 취득해보려 했지만 도저히 얻어낼 방법이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지난 19일 의장실을 방문해 허궁희 의장을 만났더니, 허 의장에게도 할머니의 전화가 온단다. 
그럼 허 의장 또한 "엄마, 한 달 뒤면 쌩쌩 달려 다닐텐데, 왜 그리 알려고 허시요" "조금만 더 기달려달라"며 오히려 통사정 할 정도라는데. 이쯤 되면 정말, 남녀간의 사랑은 저리가라할 정도로 열열하다.


태임 할머니 입장에선 순간 괘씸한 마음도 들 터. 모든 걸 터 놓고 이야기해도 될 사이인데 뭘 이리저리 감추는 것인지, 그러다 괘씸한 마음은 야속함으로 바뀌고, 또 다시 딸 걱정이 밀려와 그리움으로 더해 갈 터.
완도읍에서 유일장을 운영하는 태임 할머니의 조카 또한 할머니와 함께 찾아오는 양임 님을 수없이 봐 왔는데, 허궁희 의장을 만나고서야 양임 님이 허 의장의 부인인 것을 알았다고. 


양임 님의 성품을 가늠해 볼만한 대목. 
천재싸움꾼이었던 시라소니 이성순이 몸이 안좋으면 절대 외부 출타를 금했다고 하는데, 대개의 고수들이 이렇다. 
자신에게 안좋은 상황은 홀로 견디면서 이겨낼 뿐,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게 한다.
정으로 맺어졌다면야 치부 또한 부끄러운 게 아니겠지만, 의로 맺어진 모녀이기에 그 마음이 십분 이해된다. 


의(義)라는 것. 
사랑이 어떻게 열렬히 불타오를 때만을 사랑이라 하겠는가? 당신의 사랑이 끝났을지라도 나는 당신을 사랑하는 것. 
본질이 바탕이 된 의(義)가 그렇다.
태임 할머니의 이야기를 계속해 가자면,아들 인수 씨는 전자공학과 기술경영을 공부하고, 우리나라 과학기술 및 산업 핵심기술 개발 연구활동의 책임자를 맡았다고 했다. 할머니는 아들이 나랏돈을 함부로 낭비하지 않도록 가치있게 여기며 연구개발에 성실히 매진해야 된다는 걸 늘 주지시켰는데, 그 엄마에 그 아들답게 중앙부처 연구개발 우수사례로 선정되었다고.


예전에 라도(Rado) 시계가 있었단다.
태임 할머니가 자녀의 첫 학부모 회의에 참석했을 때, 어색한 적막을 깨고 말하길 “제 소개를 하겠습니다. 저는 전라도 완도 출신의 김태임이라고 합니다" 
"경상도에서 전라도를 달갑지 않게 여기겠지만, 그래도 ‘라도’시계는 잘 차고 다닙디다” 그 말에 회의장은 순간 폭소가 터지면서, 냉랭했던 분위기는 일거에 화기애애하게 바뀌었다는데, 태임 할머니는 곧은 정신을 가지고 있었지만, 뛰어난 촉기로 대중을 사로 잡는 유머감각 또한 탁월하다고.


태임 할머니는 자녀들의 학창시절에 학부모회의 임원직을 맡으며 학생과 교사 및 학부모의 유연한 관계 형성에 큰 역할을 했단다. 
초등학교 어린이날이나 고등학교 야간자율학습시간에 학부모들과 함께 간식을 학생들에게 전해주고, 커피가 귀한 시절 비오는 날에는 보온병에 커피를 타서 선생님들에게 건네주는 잔정 또한 유별났다고.
신지도 명사십리 해수욕장을 놀이터로 삼아 자란 할머니는 고향 완도는 언제나 넉넉한 인심 좋은 곳으로 인식하고 있다고. 


어린시절 은혜를 입은 고향에 어떻게하면 보답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다 문득 목욕탕 인연으로 맺어진 김양임 딸에게 나무를 심어 고향의 관광산업이 더 부흥하면 어떻겠냐는 의견을 전달했고, 허궁희 의장의 안내와 군 공무원들의 협력으로 메타세카이아와 구절초 등을 명사십리 일대에 심게 되었다. 섬이 낳은 사람, 어디에 있든 섬 사랑은 떠날 수 없어 가족의 밥상에는 늘 신선한 생선과 미역, 김, 파래 등 해초가 등장했다고. 


심지어, 중요한 시험일에는 미역국을 먹이지 않는 관습에도 불구하고 "미역은 피를 맑게 한다. 그러니, 대학 입시 시험일에는 꼭 먹여야 한다"며 아들의 학력고사 날에 뜨끈한 미역국을 준비했고 그 아들은 연세대학교에 합격했다고.
할머니는 관습에 의존하지 않고, 정확한 지식과 원칙으로 행동하는데 걸음걸이 마저 항상 꼿꼿하게 걸어다녀 동네 주민들로 부터 “군인처럼 걷는 할머니”라는 별칭까지 들었단다. 


1992년부터 현재까지 할머니는 인천에서 거주하는데, 아파트 초대 부녀회장을 역임하며 수익사업 기금으로 벚꽃을 심어서 삶의 공간을 더욱 풍요롭게 하여  “벚꽃회장”이라 불렸다고. 
또, 1200세대 넘는 아파트 단지 내, 전 세대에 태극기를 기증하여 나라 사랑하는 마음을 실천했고 현재 여든이 넘은 연세에도 동대표로 선출되어 이웃 공동체를 위한 섬김의 노력을 계속한다고 했다. 아들 인수 씨는 "우리 조상들은 신언서판(身言書判) 즉, 몸가짐, 말, 글쓰기 및 판단력으로 사람의 됨됨이를 구분했습니다"


"김태임 어머니는 완도군 신지도의 푸른 기상을 가득 품은 인자함이 넘치는 인물로서, 어머니의 신언서판은 타의 모범이 되기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어머니가 제겐, 너무 자랑스럽습니다"
모자가 어떤 성정을 가졌는지 느껴지는 대목. 이 모두가 아름다운 인연이다. 
피천득의 '인연'이라고 하면 누구나 교과서에서 읽은 이 구절이 생각날 것이다.
"그리워하는데도 한 번 만나고는 못 만나게 되기도 하고, 일생을 못 잊으면서도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한다"


사랑이란 말이 손색이 없는 삶이란 만나고 안만나고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 뜻을 위해 나의 모든 걸 바치겠다는 각오. 
자유와 생명은 날마다 어두운 충동 속에서 올바른 길을 향해 치열하게 싸우는 자에게 주어지는 것. 그럴 때 후인은 그들은 삶을 참 많이 사랑했구나! 이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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