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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정식 안의 나, 밖의 나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23.12.21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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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나를 포함하는 방정식이다.
 내게 주어진 주변의 값이 무엇이든 내가 달라지면 결과는 변한다. 나의 자유를 막고 있던 결정적 한 사람은 다름 아닌 바로 나, 결국 나는 스스로를 죽음으로 내몰다 스스로 그것을 만류하기에 이르렀다. 나는 그 사실을 이제야 깨달은 것일까, 아니면 지금껏 인정하지 않으려 도망치기 바빴던 것일까. 머리를 채 말릴 겨를도 없이 서연우에게 달려갔다.


 “저는 수학을 좋아했어요. 아무리 복잡한 계산이라고 해도 늘 자신 있었어요. 내가 풀어야 할 문제는 단 하나의 답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에요. 내 인생은 꼭 정답이어야만 했어요. 답이 있다고 집착했던 거죠. 그래서 지금까지는 인생이 ‘항등식’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살았어요. 그리고 거기에서 바로 오류를 범한 거예요. 나라는 존재에 대한 해석이 포함되지 않았던 거죠. 그러니까 내 인생을 풀이하는 증명에 정작 내가 빠져 있었던 거예요. 내게 필요했던 건 마법 같은 공식이 아니라, 나에 대한 이해였어요.


그동안 나라는 존재는 외로움이라는 덫에 고정되어 있었을 뿐이에요. 단지 나를 둘러싼 세상을 변수로 설정해두었을 뿐이죠. 이제야 깨달았어요. 인생이라는 ‘방정식’에서는 나 또한 변수에 포함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내가 ‘x’인 것이고, 나를 둘러싼 그 밖의 모든 것들, 즉 ‘y’가 무엇이든 내가 어떻게 변하느냐에 따라 이 식은 참이 될 수도 있고 거짓이 될 수도 있었던 거예요. 인생은 항등식이 아니라 방정식이었어요. 늘 참이어야만 하는 게 아니라, 때로는 거짓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진실일 수도 있는 수많은 가능성이었던 것뿐이에요. 그렇다면, 아무리 세상이 어두워도 내가 스스로 빛이 될 수 있다면, 지독하게 어두웠던 내 삶에서도 길을 찾을 수 있다는 뜻인가요? 가르쳐줘요. 답을 알고 싶어요.”


 “네? 그러니까 항등식이랑 방정식이... 변수가...”
 서연우는 양치질을 하다 말고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날 밤, 그 방에는 아무도 없었어요. 단 한 명을 제외하면 말이에요. 휴대폰에 남아 있는 통화 기록은 단 하나, 누군가 흔적도 없이 내 방으로 들어오려면 비밀번호를 알야아만 하고, 그 비밀번호를 아는 사람 역시 세상에 단 한 명뿐이죠. 이혜원, 바로 나.”
서연우의 얼굴에 옅은 미소가 번졌다. 이 순간을 줄곧 기다려온 듯한 표정이었다.


 “혜원 씨, 무슨 말을 그렇게 어렵게 해요. 맞아요. 역시 당신은 포기할 줄을 모르는군요. 지금까지 당신이 애써 포기하지 않고 살아왔다는 사실 자체로, 당신은 충분한 답을 알고 있다고 생각해요. 아무리 현실이 어둡다 할지라도, 혼자라는 말이 지극히 당연했을 때에도 당신은 잘해왔어요. 본인은 지금껏 인정하지 않았고 미처 깨닫지 못했지만, 당신은 진실하게 세상을 살고 있었던 거예요. 삶을 포기하려 했던 것도, 그것을 다시금 살고자 하는 의지로 되돌려놓았던 것도, 그 누구도 아닌 바로 당신이었어요. 마음 속의 소리들에 귀를 기울여보세요.”


나는 언제나 혼자였다. 키가 아주 작았을 때도, 첫 번째 월경을 경험했을 때도, 장학금을 받고 대학에 입학한 뒤에도 나는 늘 혼자였고 혼자여야만 했다. 마음이 맞는 친구도, 나를 이해해주는 가족도 없었다. 하루 종일 아무 말도 하지 않아서 입에서 단내가 날 정도였으니까. 


그냥 내가 직면하고 있는 모든 것이 부질없게 느껴졌다. 영양가 없는 빈껍데기 수업들은 전공에 대한 흥미를 잃게 했고, 어떤 과제나 시험도 그저 성적을 나누기 위한 기준이 될 뿐 나를 성장시켜줄 계기가 되지는 못했다. 나는 늘 알고 싶었다. 나에 대해서 그러나 한번도 나를 깊이 들여다보지는 않았던 것이다. 


겁이 나서, 이혜원이라는 사람이 틀렸을까 봐. 그녀의 삶이 오답이라는 결론을 얻게 될까 봐. 나는 주변의 것들로 나를 포장하려 했지만 그 무엇도 나를 대변할 수는 없었다. 나에게 있어 홀로서기는 오래된 수학적 가설들을 스스로 증명해보는 것이었고, 흥미로운 물리학 실험 과정을 직접 반복해보는 것이었다. 나는 완벽하게 단절된 세계에서 살았다. 


진언 씨를 만나기 전까지, 그를 좋아하게 되기 전까지는 그랬다.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그 낯선 감정을 처음 알게 되었을 때, 내 안에서는 그동안 존재하지 않았던 생각들이 뿌리를 뻗고 싹을 틔웠다. 타인을 이해하고 싶었다. 그를 지키고 싶었다. 그와 함께 시간을 공유하고 싶었다. 사랑을 말하고 싶었다. 이렇게나 후회할 줄 알았다면, 그때 망설이지 말고 따듯한 말 한마디 건네어 줄 것을, 가지 말라고, 내 곁에 있어 달라고, 당신을 좋아한다고, 당신을 이해하고 싶다고, 내가 당신이 되고 싶다고, 하나의 불순물도 거짓도 없는 고백을 전해줄걸 그랬다. 시간이 꽤나 흘렀다. 


그리고 결국 깨닫고 말았다. 어쩌면 운명이었거나, 혹은 아주 우연한 생각으로부터 시작된 것일 수도 있다. 나는 첫돌을 지난 이후로 줄곧 혼자서 서 있을 수 있었다. 나는 이미 오래전부터 삶의 방정식을 성립시킬 수 있었다. 혼자서 걸음을 옮길 수 있었던 그때 그 순간 이후 나는 이 깨달음으로 직접 다가갈 수 있었으나, 바보같이 나를 들여다보지 못하고 다른 사람들의 걸음만 종종 쫓았던 것이다. 
나와 세상의 경계에서 짙은 선을 그었던 그 순간 나는 스스로 인정해버린 것이다. 달도 없던 그 밤에, 나는 전화기를 붙잡고 고백하고야 말았던 것이다. 아직까지 나를 포기하고 싶지 않다는 사실을, 아직 결론에 도달하기에는 조금 이르다는 사실을 말이다.

 

 

김지현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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