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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호라, 가리포진 청해관은 호남제일번이라

발길 닿는 곳마다 문화유산 산재 해
소중한 유산 잘 보존하고 알리는 일
지역 정체성 찾는 중요한 의식 일 터 

  • 정지승 기자 p6140311@hanmail.net
  • 입력 2023.12.21 15:54
  • 수정 2024.01.11 2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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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도의 옛길을 걷다가 찾은 청해관. 이곳은 통영 세병관, 여수 진남관과 함께 현존하는 유서 깊은 수군 진의 객사이다. 완도군립도서관 앞에 자리한 청해관은 한국의 전형적인 단층 건물로 완도군에서 가장 오래된 건축물이다. 

청해관은 1722년 가리포진 124대 첨사 이형이 창건했다고 전한다. 1869년 204대 첨사 이위소가 중수했고, 196대 첨사 홍선은 호남제일번(湖南第一藩)이라고 쓴 현판을 삼문에 걸었다. 지난 1990년대에 뜻하지 않게 현판이 도난당해 옛 자료를 토대로 복원했다. 

호남에는 '호남제일'이라고 쓴 현판이 여러 곳에 붙어있다. 그중에 호남제일루는 보물 제281호인 남원 광한루, 호남제일정은 보물 제289호인 정읍 피향정, 호남제일성은 보물 제308호인 풍남문이다. 호남평야 첫 관문인 전주에는 호남제일문과 호남제일관도 있다. 

그런데 청해관이 호남제일번이라니, 그 뜻이 매우 심오하다. 이곳에 서면 괜스레 마음이 경건해진다. '호남제일'이라고 이름 붙은 유적지는 왜적의 침입을 막아낸 요새가 많다. 청해관도 그 중 하나.

여기에서 번의 뜻은 지킨다, 수호한다는 의미가 짙다. 그래서 '호남제일번'은 가리포진 청해관의 역사에 걸맞은 표현인 것 같다.

호남제일번을 사용한 곳이 하나 더 있다. 전주에 있는 만마관이다. 1868년 간행된 김조순의 문집 풍고집에는 만마산성 신축기를 소개했다. 여기에는 호남제일번(湖南第一藩)과 호남제일관(湖南第一關)을 함께 사용한 만마관이 나온다.

만마관은 굽이굽이 돌아가는 도관마을 중턱인 협곡을 끼고 성을 축조했다. 만마도관으로도 불렸는데, 산성과 관문을 갖춘 난공불락의 요새였다. 전주부성인 전라감영의 축성으로 남원, 나주, 광주를 포함해 멀리는 제주도까지, 한양으로 올라 가려면 반드시 이곳을 거쳐야 했다.

정부차원의 복원사업이 추진되고 있으며, 지역 랜드마크로 재탄생 해 천년고도의 자긍심과 관광객 유치에 큰 효과를 기대한다고.

전주의 만마관이 육지에서 왜적을 물리친 요새였다면, 가리포진의 청해관은 해상에서 왜적을 물리친 요새로써 의미가 크다. 청해관 뒤쪽과 건너편에 보이는 망산은 조선 수군의 요충지로써 이순신과의 인연이 깊다. 완도군도 역사적 자긍심 회복을 위해 성터 복원을 추진 중이다.

청해관은 객사로서의 역할을 주로 했다. 객사는 궐패를 모셔놓고 관아를 방문하는 관리나 사신들이 머물던 곳으로 관아에 있던 시설물 중에서 서열이 가장 높다. 일제강점기에는 소학교, 광복 후 지역의 교육기관과 향토방위군 교련장, 완도교육구청 청사로 사용하는 등 우리지역 근현대사의 역사까지 고스란히 스며있다. 

조선 초기 객사는 평안도와 경상도에 집중했고, 성종 때 사림파를 등용하여 전국적으로 번져갔다. 향촌에 성리학을 전파하려고 객사의 중심 건물인 정청에 궐패를 안치해 망궐례를 행하기 시작했으며, 임진왜란을 거쳐 18세기에 들어서 그 행사가 일반화됐다. 망궐례는 수령과 관원들이 초하루와 보름, 명절, 그리고 나라에 큰일이 있을 때 전패를 북쪽에 안치하고 그 앞에서 임금이 있는 방향을 향해 절하는 의식이다.

지난 2019년 9월 24일 청해관에서는 완도문화원이 주관하여 헌다의례로 망궐례를 재현했다. 그때 이순신과 명나라 장수 진린의 추모 의례도 함께 진행해 의미를 더했다. 가리포진 객사에서는 매월 초하루와 보름마다 궐패를 모시고 임금의 만수무강을 빌며 예를 올렸던 만큼, 완도군의 역사성과 문화적 가치가 크다. 그것을 자원화 삼으려던 지자체의 관심은 좋은 예다.

이런 의미에서, 지역의 문화유산을 더 효과적으로 관광자원화 하려면 시대 흐름에 맞는 문화콘텐츠 개발에 지역사회가 발 벗고 나서야 한다는 생각을 전한다. 

세계 어느 나라를 가더라도 전통을 지키는 일을 중요시 여긴다. 그리고 자신들의 문화를 계승하여 더 발전시키려고 연구한다. 문화와 전통을 허투루 여기는 나라는 세상 어디에도 없다.

완도군은 발길 닿는 곳마다 문화유산이 산재해 있다. 선조들이 물려준 소중한 유산을 잘 보존하고 알리는 일은 지역의 정체성을 찾는 중요한 의식이기도 하다. 

 

정지승 문화예술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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