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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어떤 신비한 인연으로 내게 오게 된 것일까요

고향 신지에 메타쉐카이어 4백주 구절초 5천본 기부 김태임 할머니와 딸 양임 님

  • 김형진 기자 94332564@hanmail.net
  • 입력 2023.12.14 15:32
  • 수정 2023.12.15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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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순간 내가 별을 쳐다본다는 것은
그 얼마나 화려한 사실인가

오래지 않아 내 귀가 흙이 된다 하더라도
이 순간 내가 제9교향곡을 듣는다는 것은
그 얼마나 찬란한 사실인가

그들이 나를 잊고
내 기억 속에서 없어진다 하더라도
이 순간 내가 친구들과 웃고 
이야기한다는 것은
그 얼마나 즐거운 사실인가

 

인연으로 유명한 피천득의 시, 마치 상냥한 바람 사이를 걸어 당신에게로 가는 길이 열리는 듯하다. 피천득의 시는 꼭 남녀간의 열열한 사랑만을 말한 것은 아니다. 친구 간, 동료 간, 사제지간과 형제지간, 부녀모자 지간의 사랑이 저러해야 한다는 걸 말하고 있는데. 그렇기에 남녀간의 열열한 사랑만이 최고의 인연은 아니다. 제자를 사랑하는 스승의 정이나 신의를 두고 사선을 넘나드는 사나이들의 우정이 남녀의 사랑을 넘어서기도 한다는 것. 


다만 보기에 귀한 것 중 하나가, 여성과 여성 간의 우정과 사랑인데, 지난달 28일 신지면 향우인 김태임 어르신(80대)이 신지 명사십리 주변에 1500만원 상당의 메타쉐카이어 400주와 구절초 5000본을 기부했다는 보도.


기부의 사연이 흥미로웠다. 아니, 사연보다도 그 인연이 더.
사석에서 만난 허궁희 의장. 아내 김양임님의 생일을 맞아 깜짝 이벤트를 펼칠만큼 아내 사랑이 유별난데, 요즘 양임 님의 몸이 예전같지 않아 표정이 그리 밝은 빛이 아니다.


"몇 해 전인가, 아내가 자태 고운 할머니 한 분을 모시고 집에 왔습디다"
허 의장이 궁금한 표정을 짓자, 아내 양임 님은 함박 웃음을 보이면서 하는 말이 "우리 엄마예요" 
허 의장, 속으로 ‘웽!!!’ 
양임 님은 더 놀려줄까하다가 할머니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 생각해 "목욕탕에서 처음 만났더랍니다"


목욕탕에서 만난 인연, 그 인연이 기부까지 이어졌는데, 양임 님이 목욕탕을 찾았을 때 혼자 온 듯한 할머니가 보이더란다. 
생각하길, ‘이곳에 오는 사람들은 모두 일면식이 있는 사람들인데, 모르는 사람도 있었구나’ 또 ‘대개 목욕탕은 친한 사람이 동행하는데, 혼자 오셨구나!’ 싶어, 다가가 "등 좀 밀어 드릴까요?"했더니, 그 말에 할머니 "그러면 내가 미안한데요!"


그렇게 말문이 트이면서 등을 쓸어주는데, 3자가 봤다면 이건 필경 수 십년을 함께 해 온 엄마와 딸이었을 터. 할머니에겐 지금, 등을 밀어주고 있는 양임 님 또래의 딸이 있었는데, 그만 자신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 보내게 됐단다.


딸 같은 사람이 자신의 등을 밀어주니, 설움이 북바쳐 올라 할머니의 눈에선 눈물이 났다. 조심조심 등을 밀어주는데도 슬픈 모습 때문에 우리의 양임 씨 “어디 편찮으세요?” 그 말에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며 흐느끼는 할머니. 한참동안 말을 잇지 못하다가 "딸이 내게 왔나 보오" 


그 말에 현명한 양처, 양임 님은 딸을 잃은 할머니가 더욱 애틋하게 가슴으로 들어와 '아, 나에게 엄마가 오셨구나!' 
'이제부터 완도에 오시면 우리 집에서 모셔야 겠구나'
등허리를 쓰다듬는 그 손길이 어떻게 마음을 통과하여 영혼에 이르는 지를...
할머니의 조카집은 약산면과 완도읍도에 있었지만, 완도에 오면 마치 딸네집을 찾듯 허 의장 집에 머물렀단다. 


김태임 할머니는 신지면 신리가 고향으로 "어릴 적 고향을 떠나 타지에서 온갖 고초를 겪었지만 지금까지 고향의 정으로 그 힘든 길을 이겨 냈다"고.
또 "내 고향을 찾을 때마다 어머니 품에 온 것처럼 늘 편안해지면서 몸과 마음의 치유를 받고 간다"며 "내 고향 완도에 다리가 놓아지고, 올해엔 해양치유센터가 들어서는 등 눈에 띄게 발전한 것을 보니 가슴이 울컥할만큼 감격스러워 나무를 기부했다"고 밝혔다.


건네 받은 몇 장의 사진, 눈길이 가는 건 구름 위에 앉은 듯 우아한 자태로 책을 읽고 있는 할머니의 모습, 

읽고 있는 책은 프랑스 혁명사. 우리에겐 베르사유 장미로 잘 알려진 비운의 왕비 앙투아네트, 화려한 왕궁에서 어둠의 감옥으로, 왕좌에서 단두대로 사라지면서 촉발된 프랑스 대혁명. 프랑스 혁명이 세계사적으로 유의미한 가치는 나폴레옹의 황제 등극이 혁명이다 쿠테타다의 논란이 있지만, 그 보단 자유와 평등이라는 두 개의 근대적 가치가 표상되며 결과적으로 오늘날의 민주주의를 탄생시켰다는 것. 


특히 평등이라는 가치에 방점이 찍히는 시기로써 이로 인해 진보와 보수가 세계의 정치사를 양분하는 역사의 전형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 
그 자유와 평등은 예수와 싯탈타 등 최고의 성인이 설파한 인간 본연과 완성의 길로, 할머니가 품고 있는 의식의 깊이가 전해진다. 온갖 고초를 겪으면서 타락하지 않고 오히려 그를 통해 자신의 영혼과 정신을 찾았다는 것. 영혼은 별과 같아서 그 별은 바라보는 자에게 절대자는 빛을 주는 것이기에, 그 빛을 받아 다시 세상으로 내보내는 일을 상실하지 않는 자아(自我).


연로한 할머니를 대신해 아들인 김인수 님에게 인터뷰를 청했다.
아들 인수 씨는 "신지도가 고향인 어머니는 8남매의 막내로 사랑을 독차지하며 자랐는데, 당시 할머니는 형편이 넉넉지 못한 이웃들에게 늘 양푼 가득 먹을 것을 대접하였고, 어머니는 어릴 때 부터 이런 모습을 보며 자랐기에 누군가를 섬기는 마음씀이 유독 남달랐던 것 같습니다"


"이후 고향을 떠나 부산에서 생활을 하신 어머니는 월남 파병 해병대 장교와 결혼 후 경남 진해에서 삼십여년을 사셨는데, 당시 새마을 지도자 시 부녀회 회장을 맡으셨답니다"
1970~80년대 호남인이 영남지역에서 인정을 받는다는 건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는데, 언행이 일치되고 봉사에 누구보다 솔선수범하는 어머니의 성정 때문에 1982년 당시 서정화 내부무장관이 줬던 전국 주민 반장 봉사 표창까지 수여받게 되었다고.
그 당시 경상남도에서 4명만이 선출되었다고 했다.  


1980년대는 매월 전 주민들이 반상회를 하던 시절로, 당시 반상회 회보에 내무부장관 표창 기사가 실려, 경남 진해시에선 김태임을 모르면 간첩이다는 말이 나돌았을 정도였는데, 자녀들에게 당부 또 당부했던 건 무엇보다 신용이 중요하다. 이를 꼭 명심하라는 말이었다고.


또 자녀들의 어린 시절에는 하굣길 탱자나무가 울타리 쳐진 동구밖까지 마중을 나가면서, “오늘 선생님에게 무엇을 배웠니? 친구들과는 어떤 이야기와 무슨 놀이를 했니?”하고 물으며 그 대화속에서 자녀들이 자신이 한 말을 어떻게 실천하는 지를 관찰하면서 신의와 신용에 대한 조언을 해줬다고.(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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