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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하! 서라벌의 하늘이 금빛으로 찬란히 빛나고 있습니다

지방소멸대응프로젝트 완도의 숲과 나무 황칠나무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있는 보길도 정자리의 황칠목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23.11.30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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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못 보았더냐!
궁복산 가득한 황칠나무를
금빛 액 맑고 고와 반짝반짝 빛이 나네
껍질 벗겨 즙을 받기 옻칠 하듯 하는데
아름드리 나무에서 겨우 한 잔 넘칠 정도

상자에 칠을 하면 검붉은 색 없어지니
잘 익은 치자 물감 이와 견줄소냐
서예가의 경황지가 이로 인해 더 좋으니
납지, 양각 모두 다 무색해서 물러나네
이 나무 명성이 자자해서
박물지에 왕왕이 그 이름 올라 있네
공납으로 해마다 공장(工匠)에게 옮기는데
서리들의 농간을 막을 길 없어
지방민이 이 나무 악목(惡木)이라 여기고서
밤마다 도끼 들고 몰래 와서 찍었다네
지난 봄 조정에서 공납 면제 해준 후로
영릉에 종유 나듯 신기하게 다시 나네
바람 불어 비가 오니 죽은 등걸 싹이 나고
나뭇가지 무성하여 푸른 하늘 어울리네
다산 정약용의 시 ‘황칠(黃漆)’

1200년 전 서라벌의 어전회의. "전하! 우리 서라벌의 하늘이 금빛으로 찬란히 빛나고 있습니다."
″허~ 다 청해진의 진귀한 물건들 때문이요.″
1200년전 청해진 종합물류상사에서 거래하는 여러 가지 물목중에 으뜸으로 치는 물건이 있었으니 그것은 황칠이었다. 국립경주박물관에는 통일신라시대 왕경도(王京都)가 디오라마로 전시되어 있다. 여기에 금입택(金入宅 황금박을 두른 호화로운 집)이 35채가 복원되어 있다, 학자들은 당시 사회의 여력으로 보아 수십채의 집에 금을 두를 수는 없고 황칠이 상당히 쓰였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안타까운 것은 몽골의 칩입으로 모든 금입택이 불에 타 기록으로만 전해올 뿐 연구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황칠은 수액을 받기가 이만저만 까다로운 것이 아니지만 ″옻칠 백년 황칠 천년″이란 말이 있듯이 황칠은 한번 도포를 해 놓으면 여간해서는 변질이 되지 않은 것이 특징이다. 일본 왕실의 보물창고인 쇼쇼인(正倉院)에는 통일신라시대 가야금(신라금이라 불리우며 장보고선단의 물목으로 추정하고 있음) 3점을 지금까지 보관하고 있는데 그 표면에 황칠,을 도포했다고 한다. 
그러나 쇼쇼인의 비 협조로 황칠인지 옻칠인지 정확한 조사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완도에는 엄청난 면적에 수십곳의 황칠나무 군락지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아직 정확한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앞으로 체계적이고 정확한 학술조사가 이루어져야 한다.
다만 완도의 상왕봉(象王峰)과 보길도의 적자봉(赤紫峰)에는 수십년 된 황칠나무 자생지가 여러군데서 발견되고 있다. 특히 적자봉의 끝단인 정자리 우두(牛頭)마을에 완도 정자리 황칠나무(莞島亭子里黃漆木)가 지난 2007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다. 
수령 200여년으로 추정되는 이 황칠나무는 흉고둘레 115cm, 수고 15m로 전라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가 역사성과 문화적 가치, 크기에서 그 가치를 인정받아 지난 2007년 천연기념물로 승격 재 지정되었다. 우두마을의 가장자리이자 산으로 오르는 초입에 있는데 인근 주민들에게는 재수 없는 나무 또는 신목(神木)으로 불리우며 사람들의 손을 타지 않았다. 
주민들의 전언에 의하면 땔감으로 화를 면하게 된 설이 두 가지가 있는데 설은 비슷하다.
하나는 사랑을 이루지 못한 비련의 주인공이 삶을 비관하여 목을 매 죽었다는 설이고 다른 하나는 우두 마을의 젊은이가 삶을 비관하여 목을 매 죽었다는 설이다.   
전자는 우두마을의 부자집 아가씨와 그집의 머슴이 서로 사랑하였는데 처녀의 아버지가 반대하여 이룰 수 없는 사랑을 비관하여 일어났다는 이야기이고 후자는 1970년대 초 마을에서 발생한 이야기로 전하고 있다.   
완도 상왕봉 뿐만 아니라 보길도에서 자생하는 황칠나무는 다른 나무들에 비해 수령이 매우 짧은데 다산선생이 말한 것처럼 아전들의 수탈이 심해서도 나무가 훼손되었지만 근대에 들어서까지 황칠나무는 농어촌의 땔감과 염소먹이로 이용되었기 때문이다. 황칠나무는 가벼우면서 휘발성이 강해 시골에서 땔감으로 최고 인기가 있었는데 높은 산에서 둥치나무(나무의 가지만을 골라 묶은 땔감)를 해서 지게에 지고 다니기가 수월해서 1980년대까지 무분별하게 벌채가 이루어 졌다고 한다. 보길도의 노인들은  이 나무를 ‘상철나무’ 라고도 불리나 그 어원에 대해 아는 사람은 없다. 
황칠과 관련된 기록은 역사적으로 수없이 나온다. 삼국사기나 고려사절요 계림지(鷄林志) 등에 신라칠(新羅漆)로 나타나 있고 임원십육지(林園十六志)에는 천금목(千金木)으로, 해동역사(海東繹史)에는 황칠이 완도산이라고 밝히고 있다. 
황칠은 세계적으로 우리나라에서만 나며 그것도 난대림이 펼쳐진 완도 등 서남해안에서만 생산된다. 칠을 할 경우 찬란한 황금빛을 내는데다 은은한 안식향을 풍기기 때문에 대대로 귀하게 쓰였으나 조선 후기로 오면서 안타깝게도 관리들의 수탈이 심해지자 백성들이 심기를 꺼려하여 아예 맥이 끊겨 버렸고, 또한 칠을 구하기가 워낙 힘들고 그 채취나 정제법이 까다로워 100년 전부터는 아예 자취를 감추었다. 
그러나 최근에 들어서 전통 황칠을 다시 살리기 위한 연구가 공예가들 사이에서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또한 현대인들에게는 약용식물로도 큰 인기를 끌고 있는데 정혈 작용, 간기능 개선, 항산화 작용, 면역력 증진, 항균 작용, 신경 안정에 도움을 주는 것으로 연구되고 있다.
특히 ​황칠의 안식향(安息香)은 신경 안정 효능이 매우 뛰어나서 우울증과 불면증, 스트레스가 심한 현대인들에게 좋은 약리 작용을 나타내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꽃은 암꽃과 수꽃이 따로 있고 6월에 흰색으로 핀다. 타원형의 열매는 20~30개씩 모여 달려 푸른색을 띠다 11월이 되면 검게 익는다. ​수액채취는 음력 6월(여름이 오기 전)쯤 나무줄기를 칼로 여러갈래로 긁고 하단부를 V자 형으로 홈을 파서 수액을 채취한다. 
수령 20년 이상의 나무에서 채취가 가능하며 양은 매우 적게 나온다. 우윳빛 칠이 흐르면서 공기 중에서 산화되면 황색이 되고 굳으면 마차 송진처럼 된다. 
채취된 황칠은 바로 사용 할 수 없고 정제법을 거쳐 사용 되는데 금빛을 띠고 있으면서도 투명하여 쇠, 종이, 가죽, 나무에 칠 할 경우 황금색으로 변하고 특히 나무에 칠할 경우 나뭇결을 생생하게 보여주면서도 표면은 황금색을 띤다. 칠이 워낙 귀하고 비싸다보니 금빛을 더욱 강하게 내기 위하여 목재나 종이의 경우 먼저 치자 우린 물로 초벌을 한 후 황칠로 마감하기도 한다.

 

유영인  다도해해양문화연구원 원장

완도에는 집집마다 황칠나무 한그루 이상이 식재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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