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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그랜드오픈, 완도해양치유센터 그의 영혼을 갈아 넣었다

완도해양치유센터 착공부터 준공까지
해양치유담당관 김광호 해양치유시설팀장

  • 김형진 기자 94332564@hanmail.net
  • 입력 2023.11.23 15:07
  • 수정 2023.11.24 0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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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It ain’t over till it’s over)” 
스포츠 해설을 듣다 보면 자주 등장하는 말로 미국의 유명한 야구선수 요기 베라(Yogi Berra)가 남긴 명언이다. 결과는 아무도 모르니 끝까지 최선을 다하라는 뜻으로 무릇 존재라면 이 끝을 가 볼 수 있느냐?없느냐?다.


그 끝에 섰을 때 찾아오는 환희와 희열, 또 다른 차원의 문이 열린다는 말로,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다 쏟아 붓는 일이란 그 만큼 숭고하고 위대하다.
끝을 가보지 않았기에, 유혹의 시대에 너무 쉽게 타락하는 것이고, 탄압을 받을 땐 더 큰 위기에 빠지는 것. 


결론적으로 이 끝에 대한 철학이 없기 때문이다.
그 끝에 이르면 이를수록 더 순수해지고 더 단단해진다. 끝을 가기 위한 핵심은 머리와 마음보단 정신의 의지이고, 그러한 의지는 모든 생명체에게 가장 확실하고 진실한 사실이 되면서, 존재의 직관을 절정으로 이끈다. 


완도해양치유센터 그랜드오픈을 앞둔 상황이라 아직은 마음이 편하지 않는 듯 보였다.
해양치유센터 그랜드오픈에 맞춘 특집 주간이라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외엔 소개될 인물이 없어 보여 두어번 치유센터를 찾아갔는데도 한사코 지금은 아니라는 말로 상황을 피해 갔다.

 

24일 그랜드오픈이 끝나야만이 마음의 짐을 내려놓을 듯 보였지만, 신문이 24일날 발행되기에 지금이 아니면 그에게도 본보에게도 기회는 없을 것 같았다.
사진을 찍으려해도 손은 눈보다 빠른 모습. 독자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 같지만, 상황을 짐작하기엔 가장 맞는 사진이라서 메인으로.


많은 말을 나누지 못했다.
만날 때마다 그의 호흡만 느끼고 왔다고 해야할까?
아직은 샴페인을 터뜨릴 때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듯, 끝날 때까진 끝난 게 아니라는 마음가짐.


신문의 특집판을 꾸릴 때면, 종종 활자에 영혼을 갈아 넣었다는 말을 하게 되는데, 해양치유센터는 그의 영혼을 갈아 넣었다고 해도 무방하겠다.
착공이 시작됐던 2021년, 1년여의 시간이면 센터의 위용을 볼 수 있을 것이란 기대.
하지만 기대완 달리 준공일은 차일피일, 미뤄졌다.


보여줄 때에 보여주지 못한다면 군중은 기대보단 실망감을 더 토로하게 되고, 견제기능을 하는 의회나 언론은 질타의 목소리가 커질 수 밖에 없는데, 여기에 지방선거를 거치며 정쟁의 한 가운데 서 버린 해양치유.


그런 질타와 정쟁거리가 나올 때마다 가장 가시방석에 앉아 있을 사람이 바로 김광호 해양치유시설팀장이였겠다.
연말. 그런데 해를 넘겨 4월, 다시 5월. 또 다시 10월.


군수 또한 각종 언론에 나올 때마다 준공과 오픈 일이 바뀌었다. 악재가 많았다. 원자재가 공수돼 오는 옛나라 이름 터키인 튀르키예의 지진과 고유가, 여기에 화물노동자 파업과 우기로 인한 공사 지연. 10월 중 오픈한다고 했다가 다시 한 달여가 늦춰지면서 마침내 11월 24일 그랜드오픈 발표. 한 번은 건물의 공기를 확인 차, 방문했을 때 설명 도중 아내가 급작스럽게 쓰러졌단 전화를 받고 황급히 달려가는 모습을 보았는데, 당시만 해도 그의 모든 순간이 위태로워 보였다.


지난 20일 월요일 방문 때도 그의 말을 들을 수 없었는데, 때마침 의회 행정사무감사였기에 더는 찾아가 설득할 시간이 없어 함께 근무하는 학보사 출신의 김미령 주무관(군민이 시범운영에 참여했을 때, 옷차림은 선머슴처럼 털털하지만 상냥한 말씨와 공손한 태도로 프로그램을 안내해주던 친절 공무원)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김 팀장에 대해 아는 만큼만 써달라고. 센터 준공 때까지 옆에서 그를 쭈욱 지켜본 사람 아니냐면서. 


김광호 팀장은 완도읍에 첫 공직생활을 시작해 올해로 30년이 다되어간다고 했다. 현장에서 쌓은 짬밥(경력의 은어적 표현)이 이제 ‘놋쇠그릇‘이 될만큼 단단해지고 커졌는데, 해양치유담당관실에 근무한지는 3년이 다 되어 간다고. 


해양치유담당관실에 근무하기 전엔 문화재팀장과 주택건축팀장 등의 자리를 거치며 완도군의 굵직한 건축허가와 민원들을 해결했으며, 완도군 창설 이래 단일 건축물로 가장 큰 320억 규모의 해양치유센터의 건립을 책임지게 됐다고.


국내 최초로 해양치유산업을 추진하는 선도지자체로 누구도 건립해 본 적 없는 ‘해양치유센터’를 건립하기까지 그의 고생은 말로 다하지 못했을 것이다고 했다. 해양치유센터는 바닷물을 활용하는 시설 특성상, 특수 기계설비 시설이 많은데 16개 종류의 테라피를 구현하기 위한 각양각색의 설비들을 설치하고 운영하기 위해 다양한 전문가의 의견을 들어야 했으며 수차례 벤치마킹을 다녀왔는데도 정답은 없었다고.

 
누구도 가르쳐 줄 수 없는 해답. 완도만의 특색 있는 해양치유센터를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연구하고 발로 뛰며 시행착오를 겪어야만 얻어낼 수 있는 답. 
치열한 과정이 답이 되는 이유인데, 해양치유센터 건립 공종별 사업추진을 위하여 여러차례 행정절차를 거쳐 협의하고 승인을 받으면서 말하지 못한 우여곡절이 많았다는 후문. 그 만큼 복잡하고 어려운 사업임에 틀림이 없었단다.


예상치 못한 건설노조 파업으로 물류운송이 늦어지고, 길어진 장마에 떨어지는 빗줄기를 원망할 때도 그는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어야 했다고.
그의 속을 누가 알 수 있을까?라고 했다. 
당초 예정된 일정보다 공사가 늦어지게 될 때마다 그의 속은 새까맣게 타 들어갔을 것이라고. 


 해양치유센터 건립을 위해 신지 명사십리 해변에 기초 파일을 박은 그 순간부터 개관식이 열리는 11월 24일 오늘까지. 완도 해양치유센터 곳곳에 그의 땀과 시간이 녹아 있다고 했다. 그가 쏟은 땀과 열정의 시간이 이제 빛을 낼 순간이 왔다고 했다.
이렇게 써 주면서 아래사진을 함께 보내왔다.


글을 쓸 때 "함축 함축"하는데, 버릴 게 없을 때까지 쓰는 글이 시(詩)다. 버릴 게 없는 사람들이 또 이렇다.
아름다운 시(詩)를 쓰는 사람은 지하와 지상을 불문하고 그 노선을 따라서 강물이 흐르듯 번져간다. 


그렇게 번져가는 일은 한편의 전쟁과 같다.
전쟁은 병장기만으로 하는 게 아니고 병력만으로 하는 것은 더욱 아니다. 승리의 가장 큰 관건은 이길 수 있다는 확신, 나에게 찾아온 모든 순간 순간을 다할 수 있다는 의지의 발로. 머리와 마음을 넘어 의지까지 모두 소진시켰을 때, 온몸은 너덜너덜해지는데, 상관없다. 가치의 이름으로 행동한 것이니까.  

 

김 팀장의 아래사진은 완도해양치유센터 앞 명사십리의 바닷물이 밀려오는 모습인데, 자세히 보면 하얀 설산같기도 하고 큰 산맥이 펼쳐져 있는 것 같다.
언제 들어도 좋을 명사십리의 밀려드는 파도의 속삭임 속에 월령 5일 때의 달빛을 갈아 넣어 지친 그가 위무받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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