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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잡을 데 없는 선생님입니다

교원능력개발평가, 괜찮은가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23.11.16 15:23
  • 수정 2024.02.02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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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잡을 데 없는 선생님입니다.' 

몇 해 전, 어느 고등학교 학생이 교원능력개발평가 학생만족도조사 서술형 문항에 답한 내용을 어느 교사에게서 우연히 들었다. 이 학생이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학교의 모든 교사에게 똑같이(아마도 ‘복붙’으로) 이렇게 썼다고 했다. 학생들이 쓴 서술문이 교사별로 가나다순으로 정리되어 있어서, ㅎ으로 시작하는 이 문장은 평가 결과지 마지막에 마치 노래의 후렴구처럼 반복되어 있었단다. 

모든 교사에게 공평하게(?) 적었다는 이 문장이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웃어야 하나, 울어야 하나. 요즘 아이들 말대로 웃픈 심정이다. 

흐음, 흠이라니, 상품에 흠이 있으면 가격 할인을 해준다. 모르고 구매한 경우, 교환과 환불을 청할 수도 있다. 그런데 흠잡을 데 없는 선생님이라니…. 학생과 교사는 어떤 사이인가? 어떤 사이여야 하는가? 학생은 흠을 잡으려는 마음으로, 흠을 잡으려는 대상에게 수업이나 상담을 받는가? 교사는 자신의 흠을 잡으려는 학생들을 인솔해서 동아리 활동을 하고 학교 밖 체험 나들이를 가는가? 

이게 모두 교원능력개발평가 때문이다. 교원평가, 2010년 많은 우려와 반대 속에 전면 도입되었으니(수동태로 써야 한다.), 올해로 14년째다. 요즘은 성희롱과 외모 비하, 비속어와 욕설, 인격모독 등의 표현으로 많은 교사가 상처받고 우울해하고 분노하는 지경인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뉴스에서 공개적으로 다룬 것만 해도 다시 옮겨 인용할 수 없을 만큼 그 실상이 처참하여 서술형 문항에 대한 재고와 필터링이 논의되고 있다. 그리고 올해는 ‘한시적으로 교원평가 실시를 유예’한다고 한다. 
 

사실 부끄럽지만, 나는 그동안 이 제도에 관심이 없었고, 잘 몰랐고,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대충 들어도 목적과 절차가 옳지 않고 반교육적이며, 필요가 없으니 곧 사라질 것이고, 무엇보다 나는 이런저런 제도나 점수에 연연하지 않고 내 할 일을 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동료평가에 참여하지 않았다. 

아마 많은 교사가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지 않을까 짐작한다. 오늘 인터넷과 공문을 검색해서 알게 된 것은 교원평가 중 학생만족도조사는 초4 학년부터 고3 학년까지, 학부모 만족도 조사는 초1 학년부터 고3 학년까지 한다는 것, 그 결과가 교사의 학습연구년 특별연수 혜택과 능력향상 연수와 차등성과급과 이동 승진 점수에 반영된다는 것이다. 

흐음, 교육의 주체는 학생 학부모 교사이니, 그 3주체가 상호 평가를 하게 하자는 것인가 보다. 그러니까 교사가 학생을 평가하듯, 학생과 학부모는 교사를 평가하고, 교사는 동료 교사를 평가한다는 것이다. 지금도 그런 게 있는지 모르겠지만, 어릴 때 도덕 시간에 배운 북한의 ‘5호 담당제’가 떠오른다.

그런데 정식 명칭인 ‘교원능력개발평가’는 무슨 의미인가? 사전을 찾아본다.
교원: 각급 학교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사람을 통틀어 이르는 말
능력: 어떤 일을 해내는 힘
개발: 새로운 것을 연구하여 만들어 냄
평가: 사람이나 사물의 가치나 수준 따위를 일정한 기준에 의해 따져 매김
 

좀 이상하다. 교원의 능력을 개발하고 평가하자는 것인가? 교원의 능력과 개발 정도를 평가하자는 것인가? 단어의 조합만으로는 어디까지 목적어인지 모르겠다. 왜 ‘교원평가’가 아니고 ‘교원능력개발평가’인가? 능력이란 말을 더하고 개발이라는 단어를 붙이면 뭐가 달라지는가? 이 제도로 교원의 능력이 더 개발되는가?
 

교사의 능력과 연구개발의 결과, 수업방식과 교육활동, 학생에 대한 진정성과 영향력 등을 어떤 기준으로 수량화하고 평가하여 순서를 매길 것인가? 혹시 객관적이고 공정한 기준을 따져서 만드는 게 가능하다면, 교사는 가시화와 수량화가 가능한 일만 하면 되는가?
 

학생과 학부모는 언제 어떤 상황에서 교사에게 만족하는가? 우리는 그들을 만족하도록 해야 하는가, 교육을 해야 하는가? 학교는 시장인가, 기업인가? 가전회사인가? 보험사인가? 만족도와 교육 사이의 거리는 얼마쯤인가? 교사는 뭘 해야 하고, 뭘 할 수 있는가? 

  ‘이 기간 동안 아이들에게 잘해줘야겠네.’ 
  11월이 되면 교사들은 이런 농담을 한다. 아이들도 이제 그 미묘한 분위기를 알고 있다. 잘해준다는 것은 또 어떻게 해주는 것인가?
 

교원평가, 이 천하고 박한 제도는 벌써 크게 ‘성공’했다. 무한협동으로 지식공동체를 이루어 살아가던 교사들을 점수와 차등성과급, 학생 학부모 반응과 승진을 놓고 경쟁과 불화와 질시와 반목으로 분열시키는 데 성공했다. 교사와 학생의 관계를 왜곡시키는 데도 한몫했다. 교사의 업무와 서류는 늘어나고 그만큼 아이들과 교사는 멀어졌으리라.

생활지도든 진로지도든 실패담을 부끄럼 없이 공유하고, 혼자 힘으로 해내기 어려운 일에는 스스럼 없이 손을 내밀어 도움을 청하고, 말하지 않은 걱정에도 기꺼이 손길을 건네는 무한 협동 공동체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토의 토론 협의라는 쉽고도 아름다운 방법이 있다.
 

서늘하고 맑은 가을날, 아이들과 가우도 바닷가에 놀러 가고 공연장과 미술관에 구경 가는 이야기를 써야 하는데, 구절초와 억새와 단풍나무 가지를 꺾어와 도서실 항아리에 꽂는 이야기를 써야 하는데…

 

 

강정희 강진대구중 교사
著 다정한 교실에서 20,000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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