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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짝이는 별님이 가을비에 젖었을 때

신복남 기자의 ‘어젯밤 어느 별이 내려왔을까?’

  • 신복남 기자 sbbn2000@hanmail.net
  • 입력 2023.11.09 15:26
  • 수정 2023.11.10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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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싸늘해지면 국화꽃이 내 곁으로 온다. 산 넘어 피는 국화꽃도 가까운 산 밑으로 왔다. 따뜻한 된장국도 먼저 내음을 데운다. 나보다 먼저 그리운 사람이 생각난다. 
낙엽을 보면서 지나온 일이 생각나는데 그 사연은 가물가물하다. 그런데 그 사람은 아직 살아있겠지. 인생은 돛단배처럼 아득하게 멀어져 가지만 실낱같이 희망을 품어본다. 


보일 듯이 말 듯이 삶은 운명처럼 떠간다. 새벽달은 유난히 밝다. 그 곁에 초롱초롱한 별이 있기 때문이다. 낙엽 지는 소리는 들리지 않지만 처마의 풍경소리는 이따금 내 마음을 울린다. 
커피 향기 그윽한 곳에서 마주 앉은 그 사람은 지금은 없어도 금방 올 것 같다. 그러나 살면서 잊는 것도 크나큰 공부다. 자기의 의지대로 세상이 이루어지면 재미가 없다. 


설령 이루어진다고 해도 피해 갈 것이다. 지난날을 당당하게 잊고 서 있는 겨울나무는 허전함보다 무엇인가 채워지는 느낌이 든다. 바람 한 점에서 흔들리는 억새풀은 가장 큰 슬픔이다. 
한 순간에도 그 간절함이 이 세상 끝까지 찾아갈 것 같다. 들깨 한 보따리 내 안에 있어도 채워지지 않는 늦가을이다. 들깨 가루 한 숱 푼 넣은 된장국이 그리워진다. 계절은 점점 잊혀지는데 사람이 점점 그리워진다. 


보랏빛 들국화 한 송이 주고 싶은데 그리운 사람은 또한 점점 멀어져 간다. 산국화 한창 피었지만 어디론가 떠나고 없다. 마른 잎 속에 외롭게 피어 있는 용담꽃이 보랏빛 눈물만 흐르고 있다. 산그늘에서 누구를 간절히 기다릴까. 계절이 깊어질수록 산감마저 쓸쓸하다. 아직은 등불을 켜고 너의 마음에 전하고 싶은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진심이 오늘도 운명처럼 살아가고 있다. 산 넘어 여러 계곡을 걸쳐 내려온 노란 국화꽃은 계절의 끝에서 제일 외로운 모양이다. 두 팔 벌려 반겨 주지는 못하지만 삶의 고뇌와 온갖 사연들을 네 앞에서 내려놓는다. 작년에도 이 자리에서 피었지만 언제 또 여기까지 와서 피었느냐. 


숲속에서 나와 꽃이 되기까지 마음은 늘 열려 있었다. 살아있다는 것은 반은 취해 있었고 나머지는 외로움이다. 
이것이 시심으로 돌아가게 한다. 봄부터 여태까지 숲속에 있다가 사람이 그리워서 들판으로 나왔다. 한번은 지나갔을 법한 들판은 사람 냄새라곤 찾아보기 힘들다. 수많은 작은 미소가 오히려 눈물만 난다. 


들판에 꽃으로 오기까지 마음이 먼저 꽃이 되었겠지. 사랑하기까지 먼저 눈물 꽃이 되었겠지. 내 마음의 언덕에서 꽃으로 오기까지 많은 세월을 기다렸다. 찬비에 젖어 있는 네 모습이 옷깃을 여미게 한다. 따뜻함과 외로움이 같이 있을 땐 토란국 냄새 나는 어머니 밥상이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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