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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월의 마지막 밤이예요. 사랑으로 침묵해 주세요

시월, 각 읍면에서 펼쳐진 가을이야기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23.11.02 15:30
  • 수정 2023.11.02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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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이 바다에 미광을 비추면
나는 너를 생각한다
희미한 달빛이 샘물 위에 떠 있으면
나는 너를 생각한다

저 멀리 길 위에서 흙먼지가 날릴 때
깊은 밤 여행자가 작은 다리 위를 지날 때
나는 너를 본다
파도치는 소리가 멀리서 들릴 때
나는 너의 목소리를 듣는다

모든 것이 침묵하면 
나는 가끔 조용한 숲속으로 가
바람 속에서 네 목소리를 듣는다

너는 멀리 있지만 나는 너와 함께 있다
너는 내 곁에 있다

곧 태양이 지고 별이 나를 비추겠지
아, 네가 곁에 있다면

언제 읽어도 아름다운 詩. 영화에서도 나오는 시(詩)인데, 괴테의 연인 곁에서를 가장 잘 표현한 영화 클래식. 그리고 영화에서 또 하나의 명시.

그대 보내고 아주 지는 별빛 바라볼 때
눈에 흘러내리는 못다 한 말들 
그 아픈 사랑 지울 수 있을까

어느 하루 비라도 추억처럼 흩날리는 거리에서
쓸쓸한 사랑되어 고개 숙이면 그대 목소리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류근 시인의 시에 김광석이 작곡하고 부른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그가 살아생전 부른 마지막 노래. 그는 이 노래를 부르고 나서 7시간 후 하늘의 별이 됐다. 주옥같은 시와 김광석의 노래, 황순원의 소나기가 떠오르는 서정적인 풍경에다 배우 조승우, 손혜진, 조인성이 주인공으로 열연. 
보고나면 눈물이 멈추지 않을만큼 슬프고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답다. 개인적으로 명장면은 동영상에서도, 그의 사랑을 알아 모든 걸 얻은 듯 비를 맞으며 달려가던 손예진.

너에게 난 해질녘 노을처럼 
한 편의 아름다운 추억이 되고
소중했던 우리 푸르던 날을 기억하며
후회 없이 그림처럼 남아주기를...

그림처럼 남는다. 눈은 예술의 진미를 모른다. 
보이는 것만을 그리고나서 이내 죽는다. 
눈으로 본 게 살아나는 길은 눈으로 그린 그리움이 지극한 감각 속으로 들어 갈 때다.
부드러운 음성이 사라져도 내 안 어딘가엔가 당신의 메아리가 울리고, 감미로운 꽃이 져도 내 안 어딘가엔가 당신의 향기가 맴도는 것. 그때의 기억들은 머리에서 사라지고, 사라질 수 없는 기억들은 가슴이 차지한다. 완전한 아름다움의 리듬이 되어.
부끄러움이 없다면 관능적이게 되고 부끄러움이 있다면 순결적이라 할 수 있겠다. 그들은 대립한다. 마치 진보와 보수처럼. 하지만, 본래 이 둘 사이에는 어떤 필연적인 대립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 보다 훨씬 더 깊고 삶을 동경하는데, 사랑하는 곳에 더한 인간의 길이 있음으로.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다. 빨리 오라고 재촉하는 게 춘삼월의 봄빛인데 반해 마지막까지 보내기 아쉬운 게 시월의 마지막 밤.
그 밤은 커다란 태양이 정적 속에 가라 앉은 하늘 위로 온화한 밤바다의 물결을 품고 있다. 
시월의 마지막 밤, 그 밤물결은 연인처럼 노래한다.
어떻게? 
내 가슴에 당신의 손을 얹고 다시 그 위에 내 손을 올려 놓으면, 이제 나는 당신을 통과할 거예요.
당신도 없고 나도 없어요. 
모든 게 살아서 춤추며 환하게 웃어요.
시월의 마지막 밤. 그 밤의 휘장이 열리면, 밤의 입김이 이 밤을 그대로 녹여 버릴 쵸콜릿티 생크림 같아요.
밤의 피부는 미네랄 피그먼트처럼 즉각적인 광채로 빛나고, 향기로운 달이 빚어낸 그 밤의 향을 맡는 순간눈부시게 빛나는 태양 아래 꽃들이 만발한 들판 같아서 부드러운 향기가 마지막까지 우아함 그 자체.
밤의 입술에는 당신이 살고 있어요.
밤 안을 밤 안으로 걸어 들어가는 밤.
빛의 한줄기가 당신으로 걸어 나오죠. 걸어 나온 당신의 손을 잡고 눈을 감으면, 그대로 밤하늘을 날아 혈소판 같은 시적 감각들이 소리 없는 왈츠의 박자를 따라 움직여요.
얼마나 황홀할까요! 
그게 시월의 마지막 밤이죠.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를 영화화했던 장면 중 정말, 깜찍했던 오드리햅번이 깜찍한 눈망울을 깜박거리며 췄던 나타샤 왈츠처럼.
톨스토이는 “사랑은 죽음을 방해한다. 사랑은 생명이다. 내가 이해하고 있는 모든 것은 오직 사랑받고 있기에 이해되는 것이다” 
“좋은 전쟁, 나쁜 평화란 이 세상에 있었던 적이 없다. 죽은 자만이 전쟁의 끝을 본다. 칼로써 얻은 국토는 다시 칼에 의해서 탈취당할 것이지만 괭이로써 얻은 나라는 영원한 것이다. 평화는 폭력에 의해서 유지될 수가 없다”
전쟁과 평화에 대해 위대한 통찰의 글을 남겼다. 현재 일어나고 있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우크라이나는 괭이로 일어선 평화를 사랑하는 나라. 시월밤이 사랑과 평화이기에, 푸틴이 이 아름다운 시월에 모국의 대문호 톨스토이의 이 글을 다시 읽었으면 좋겠다. 
마지막 밤, 사랑으로 침묵해 주세요!
당신의 말을 들을 수 있도록...
아직은 아무 일도 생겨나지 않았지만 당신은 모든 일이 일어나게 할테니까요.
각 읍면에서 이뤄진 시월의 마지막 밤이 모두 이런 순간이지 않았을까. 
사랑으로.

김형진 기자

<사진> 10월 완도군 관내에선 다양한 음악회와 바자회, 축제 등이 펼쳐졌다. 신지면주민자치센터가 주관한 시월의 마지막 밤 행사와 시월의 마지막 밤에 노화 전통시장에서 열린 반짝반짝 빛나는 JB 버스킹, 보길도 등불축제, 지난 1일 바자회와 함께 열린 고금면민 가을힐링 음악회 등을 스케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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