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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파수를 맞추다

김지민
수필가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23.11.02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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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가 푸르스름한 시간. 라디오를 켰다.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이 들린다. 언제부턴가 주파수를 맞추며 지직대는 소리를 듣는 것을 즐긴다. 
그 소리가 좋은 걸 보면 아날로그 시대는 오랫동안 지속할 것 같다. 이른 아침에 라디오 소리는 시선을 뺏길 필요가 없어 자유롭다. 특히 클래식 FM은 낮은 조도의 조명 아래서 감정이입의 맥을 끊어버리는 광고가 없으니 오롯해지기 좋은 채널이다. 처음부터 클래식을 듣는 마니아는 아니었다. 
새벽의 적요를 해치지 않고 품을 수 있는 음악이 클래식 채널이었을 뿐이다. 그렇게 난 하루를 시작하기 전 처방전의 약을 삼키듯 라디오로 몸을 고르게 다지는지도 모른다. 그 시간이 지나면 동트기 전 아파트 산책로를 따라 걷는다. 
한 발 한 발 내디딜 때마다 차분한 대기로 내가 스며드는 것 같은 시간이다. 보도블록 틈에서 자라는 풀잎이 발목을 스칠 때면 이슬의 축축함이 느껴진다. 그 축축해진 이물감은 내가 나로 살고 있음을 각인시키는 감각이다. 금세 해가 뜨고 빛은 지상의 모든 뒷길까지 구석구석 뻗어간다. 이내 눈부시고 선명한 10월이 깊이 있는 색을 펼쳐놓는다. 
색과 질감이 뚜렷해서인지 몽롱한 아침에서 빠져나왔을 때 나는 그 풍경의 한 조각을 껴안고 있는 것만 같다. 
자연과 동행하는 산책은 모든 감각을 깨워주는 채널이다. 시각과 촉각이 주변에 반응하며 세상은 내적으로 친밀감이 도타워진다. 그뿐인가 감성의 결은 아주 미세한 바람에도 흔들거린다. 
벌써 간간이 춥다는 말이 입술 사이로 새 나온다. 토하듯 푸른 잎을 쏟아내던 나무들이 이젠 각혈하듯 잎을 떨어뜨린다. 매일 마주치는 산사나무는 나뭇가지 사이를 넓히며 허공에 서서히 자리를 내주고 있다. 대추나무잎들 역시 느닷없이 불어닥친 바람에 찢어진 종이처럼 흩어진 지 오래됐다. 바닥엔 쓸어 담아야 할 이파리들이 갈피를 잡지 못하고 굴러다닌다. 불과 몇 달 전까지 병원을 오가던 내 감정들이 저렇게 나뒹굴었다. 
그래서 난 낙엽을 밟아서 바스러지는 소리도 하나의 생이 부서지는 소리처럼 들리기도 한다. 일 년 중 내가 나무를 올려다보는 횟수가 많아지는 때는 가을과 겨울 사이에 걸친 지금이다. 
바람의 색, 구름의 속도, 햇살의 강도, 하늘의 높이, 그리고 사람의 표정이 달라지는 시간. 나는 이 시기를 계절과 계절 사이에서 사람이 끼어들 수 있는 틈이라고 생각한다. 그 틈에서 어딘가의 너머로 건너가기 위해 나는 낯섦에 단련 중인 것이다. 마음 한쪽에서는 붉은 낙엽이 비처럼 내린다. 마치 병처럼 쓸쓸함이 몰아친다. 
여름이 남겨놓고 간 석양이 더 붉어지듯 내 맥박과 체온도 서쪽을 향해 더 달아오른다. 눈으로 보기엔 여름에서 가을로 그냥 훌쩍 뛰어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시간 속의 당사자는 절대 그렇지 않다. 
뛰어넘은 게 아니다. 계절과 계절의 틈을 차곡차곡 천천히 메꾸며 지나온 것이다. 그러니 저무는 것도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이 사는 일에도 틈 같은 공간을 어떻게 채워야 할지 나는 나무를 올려다보며 알아간다. 내 틈으로 차오르고 있는 것들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때론 감성이 이끄는 대로 따라가 보면 꽤 멋진 시간이 되기도 한다. 봄부터 몸은 불협화음이 시작됐다. 
그동안 무난하게 끌고 왔던 생의 순간들이 어긋나고 있다는 생각, 아픈 곳이 늘어났고, 그때마다 병원 가는 횟수, 몸으로 들어가는 약물이 함께 늘었다. 쉴 곳이 필요했다. 내가 들어가 숨거나 잠깐 피할 수 있는 곳, 그래서 찾아낸 게 라디오다.
비가 오든 눈이 오든 똑같은 시간에 정해진 목소리를 들려준다.
새벽부터 늦은 저녁까지 적절한 바이브로 내 삶의 박자를 지휘한다. 마치 나와의 약속을 지켜주러 온 사람이라도 되듯 나는 그 성실함에 위로를 받는다.
사람들은 어차피 각자의 속도로 살아간다. 벗어날 수 있든 없든 무겁거나 가벼운 시절을, 내려놓을 수가 없는 무게를, 그때그때 견디든 무시하든 자신의 속도로 살아야 한다. 
아무리 덜어내도 덜어내지지 않는 무게와 해결하지 않을 질문이 오늘을 가로막는대도 살아야 한다. 
나도 마찬가지다. 
그러니 안락한 동굴 같은 라디오 하나를 건진 건 얼마나 다행인가. 집에 있는 대부분 시간은 라디오를 켜놓는다. 힘든 순간들을 모아 그 동굴에 밀어 넣고 잡음이 잡힐 때까지 나의 주파수를 맞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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