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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소녀가 그리움으로 고향 들녘에 일렁이는

신복남 기자의 ‘어젯밤 어느 별이 내려왔을까?’

  • 신복남 기자 sbbn2000@hanmail.net
  • 입력 2023.09.22 09:15
  • 수정 2023.09.22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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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은 항상 그리움의 대상이다. 우리가 낳고 자라는 곳을 다시 찾고 싶은 데에는 별다른 이유가 없다. 고향은 맑고 깨끗했기 때문이다. 논 한 마지기에 나락이 몇 섬이 나오는지 관심이 없었다. 


단 그것이 삶의 밑천이 되는 줄만 알았지만 세어보지는 않았다. 아무 욕심 없이 친구들과 놀기에 바빴다. 친구들과 들판을 가로지르며 푸른 하늘을 보았던 그때가 가장 깨끗하였다. 미래에 대한 이상만 꿈꿨기에 현재에 대한 욕심이 없었다. 이것이 바로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다. 그리움은 지나버린 것이 아니라 지금 다시 그리움의 향수를 만들어 가고 있는지 모른다. 단 조건이 하나 있는데 자연이 깨끗해야 한다. 


자연은 물질의 화학적 변화를 통해 자연 그대로 유지된다. 강물이 자연스럽게 흘러가듯 변화의 총량이 거슬림 없이 흘러가면 공기는 깨끗해질 것이다. 물가에 자라는 풀 중에 물을 깨끗하게 만드는 식물이다. 대표적으로 미나리, 부들이, 꽃창포, 어리연 등이 있다. 


이들은 잔뿌리가 많다. 물과 많이 접하기 위해서다. 산소를 내어 물을 깨끗하게 한다. 어린 날에 돼지풀이라고 했던 고마리 풀은 도랑에 물의 흐름을 줄인다. 도랑을 터지지 않도록 방지해 준다. 


우리는 그냥 지나쳐 왔지만 마음과 몸에 배어있어 깨끗하게 해주었다. 삶은 늘 변화만 간다. 세월이 갈수록 물질에 너무 지쳐있다. 마음이 깨끗할 나이에 오히려 더럽히고 있는지 아쉬움이 남아있다. 너무나 빠른 시대에 어느 한 가지만 집중되어 있다. 나무는 잔뿌리가 많아야 건강하게 잘 자란다. 물을 전달할 중간 단계를 걸쳐서 꽃을 피운다. 빛은 물을 만나 수소와 산소를 분해한다.

 

이런 단계는 자연이 알아서 하겠지만 최소한의 기본을 건드리지 말아야 한다. 생태계의 다양성이 있으므로 건강하다. 건강한 사회 문화도 마찬가지다. 요즘 디지털 시대에 사고하는 단계가 너무 단순화됐다. 모 아니면 도하는 이분적 사고에 접해있다. 뿌리에서 꽃을 피우기까지 인내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잔뿌리가 많은 식물들은 물가에도 있고 산에도 있다. 이는 하나같이 더불어 살고 있다. 


창포꽃도 함께 모여 산다. 물을 깨끗하게 만들어 다른 식물들에도 도움을 준다. 물속에 산소가 없으면 죽은 물이 된다. 고마리는 서로 뿌리를 엉키어 물을 깨끗하게 걸러낸다. 이물이 강물이 되고 바다가 된다. 
고향은 이상이 있고 꿈이 있었기에 가장 깨끗하다. 그래서 나이를 먹어도 우리의 그리움의 대상이다. 학창 시절은 꾸밈이 없다. 그 자체가 꽃이었기에 그리운 얼굴들이 되고 만다. 개울물 돌아가는 곳에 재잘대는 소리가 난다. 그곳에 그리운 친구들이 모여 있다. 물가에 물풀이 모여 꽃을 피우고 있다. 물봉숭아 꽃잎 옆에서 아직도 하얀 얼굴로 기다리는 소녀가 앉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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