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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허한 언어와 부드러운 말씨의 무게를 매달고

신복남 기자의 ‘어젯밤 어느 별이 내려왔을까?’

  • 신복남 기자 sbbn2000@hanmail.net
  • 입력 2023.09.15 12:14
  • 수정 2023.09.15 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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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빨래가 가을하늘을 날리고 있다. 때가 빠지고 무게가 가벼우면 마음도 뽀송하다. 낮달은 저녁별처럼 반짝이지는 않지만 깨끗한 가을 하늘을 만든다. 멀리 있을수록 눈을 감고 기도하게 한다. 


그렇게 멀리 있는 시간이 가장 깨끗한 길을 만든다. 몇백 광년 지나야 지금 생각하는 것들이 전달될 수 있는 거리다. 그 여정은 얼마나 외롭고 쓸쓸할까. 아마 생각하는 것들이 멈춰있을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안으로 묵혀두기로 하는 것들이 쌓일수록 가만히 눈을 감게 된다. 


그러면 거기에서 별이 될 수 있을 테니까. 가장 맑고 깨끗한 곳일수록 멀리서 바라봐야 한다. 그 길만큼 우리의 삶을 채워 널 수 있을 테니까. 수평선이 그 길이만큼 우리를 편안하게 한다. 
가을 햇살은 공평하다. 산등성이, 산골짜기 어느 곳이든 햇살이 비친다. 계절은 또 다른 길을 만들다. 자연은 틈새를 만들어 곡식들이 익어가게 만든다. 시간의 흐름이 자연의 변화에서 알 수 있듯이 지금까지 지나온 길 위에서 많은 변화를 느꼈다. 


아마 시간과 거리는 우리에게 없어서는 안 될 진귀한 정보다. 어느덧 천천히 왔는데 빨리 와버렸네. 그런데 시간만 보면 그렇고 내 안에 쌓아두었던 기억들이 살아왔던 거리인 것이다. 


그 거리에서 삶의 애정을 쏟아 부었다. 가을의 열매들은 목이 휘어지고 있다. 그동안 열정을 쏟았던 결과다. 그의 삶의 무게 중심이 사랑을 위해 지탱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모자란 세월을 굳건히 지켰던 어머니의 눈물이 보인다. 수수밭에서 쪼그려 앉아 콩밭 매는 어머니는 보이지 않는다. 세월의 그늘로 점점 감춰져 버렸다. 가을 햇빛은 점점 살찌우고 있다. 


세월의 무게에 점점 땅으로 향하고 영혼의 목마름은 별빛으로 향하고 있다. 가을 무게를 벼, 조, 수수 위에 실었다. 계절의 무게는 다르다. 그중의 가을 무게는 제일 무겁다. 눈빛으로 그 무게를 보지만 마음은 풍요를 느낀다.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살면 될 것인데 필요 이상 가지려고 하니까 문제가 생긴다. 가을은 햇빛도 나누고 곡식도 나무고 마음도 나누라는 지상명령이다. 


지상에서 밤하늘에 별까지 그리운 관계를 맺으려면 지상에서 충분조건이 충족되어야 하지 않나 생각된다. 하얀 빨래가 보이는 뜨락에서 가을 하늘을 본다. 하얀 낮달을 보면서 배추와 무 그리고 상추도 옮겼다. 


지상에서 가장 맑고 깨끗한 사람은 정이 많은 사람이다. 가지가 휘어지도록 가을이 왔으니 그 깊이를 알려 하는 사람이 많이 있었으면 좋겠다. 수수가 고개를 많이 숙였다. 겸허한 언어와 부드러운 말씨가 있다. 대지는 항상 변함없이 안아주었다. 그 무게중심이 험한 세상에도 지탱해 주었다. 어머니는 땅에서 지혜를 얻어 우리에 주었고 지속적이고 부드럽고 끈질긴 근성을 주어 세상을 헤쳐 나오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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