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너의 세계를 들여다본다

김지민
수필가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23.09.15 11:38
  • 수정 2023.09.15 13:05
  • 글씨크기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 세계가 들어온다. 
여름 더위가 웃자란 풀처럼 기승을 부린 날. 익숙한 고양이 한 마리가 무턱대고 내게 들어온다. 세상 눈치 보는 일 없이 자유로운 자세로, 혼자지만 초라하지 않고 평화롭기까지 한 세계. 꼬리를 내린 고양이와 눈이 마주친다. 


동네 사람이 돌보는 고양이 뭉치다. 우연히 마주치는 것들에는 우연만큼 뭉근한 떨림이 있다. 그래서 우연을 기대하게 된다. 
도서관을 오가는 길에 작은 공원이 있다. 불쑥불쑥 눈에 들어오는 것들로 가득 찬 곳이다. 그래서 손바닥만 한 공원을 지나는 시간은 마음이 출렁거린다. 


어느 날은 야들야들한 새싹이 들어오고, 또 어느 날은 아무도 밟지 않은 첫눈이 사람의 발걸음을 놀라게 한다. 그뿐인가 더위만 있을 것 같은 여름의 공원은 소란이 기다린다. 나무 이파리를 뒤덮은 매미 소리가 있고, 나뭇가지를 건너다니는 새소리가 있다. 방학을 맞은 아이들 웃음소리까지 합세해 공원을 뛰어다닌다. 그 소란의 무등을 타고 다니다 보면 어느새 나는 동심으로 빠져든다. 


어느 날 퇴근길에 공원에 오랫동안 머문 적이 있다. 뭉치와 만났던 날이었다. 처음 만났을 때 풀숲에서 졸고 있던 모습이 마치 오래된 털옷을 풀어 뭉쳐놓은 실뭉치 같아서 내 취향대로 지은 이름이다. 등산로로 이어지는 길목에 있어서 사람이 자주 드나드는 곳임에도 뭉치는 긴장하지 않았다. 


아이들이 후다닥 달려가는 그 와중에도 의자에 몸을 펼쳐놓고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옆에 다가가 눈을 들여다보았다. 오묘한 눈빛에 안 빠져들 재간이 없었다. 어찌나 깊은지 푸른빛에서 허우적대다 집으로 갔던 기억이 있다. 사람 사는 곳마다 꼭 이런 길고양이가 있다. 십여 년 전의 일이다. 근무하던 곳에 드나들던 길고양이가 새끼를 낳았다. 갓 태어난 것들이 얼마나 예뻤는지, 속절없이 아지랑이처럼 꼬물거리는 것들에게 빠져들었다. 동물을 향한 사랑이 뭔지도 모른 채 난 그날 이후로 고양이들의 대모를 자청했다. 사료 사서 밥 챙기고, 아프면 병원 데려가고, 시간을 쪼개 무릎에 올려놓고 애교를 만끽했다. 


그러기를 일 년 남짓, 사무실 이전이 확정됐다. 고양이와 헤어져야 할 때가 된 것이다. 살아 숨 쉬는 것들과의 이별은 꽃이 지듯 거둬지는 것이 아니었다. 도둑처럼 살며시 비열하고 쩨쩨하게 고양이의 삶에서 빠져나오고 싶었다. 그런데 마음과는 달리 감정이 축축해졌다. 어찌어찌 떠나는 왔지만, 두고 온 고양이들이 눈에 아른거려 한동안 새로운 곳에서 무기력했다. 


그런 기억 때문에 사람을 따르는 동물은 적정한 거리에서 바라보기로 마음먹은 적도 있다. 아마도 내가 반려견을 입양하지 않았다면 난 여전히 거리 유지에 성공했을지도 모른다. 내가 사는 집으로 반려견인 미니가 들어오면서 네발 달린 동물과의 교감이 되살아났다. 십여 년 전 고양이에게서 받았던 다정한 몸짓의 아류처럼 모든 길고양이한테서 감정이 되살아났다. 


그렇게 그들의 세계를 다시 마음에 들었다. 내가 사는 아파트 단지에도 사람 손을 두려워하지 않는 고양이가 두어 마리 있다. 그래서 오가며 길들지 않은 야생의 아양을 받는다. 그렇게 지내다가도 깊은 밤 어둠을 가르며 낯선 음성신호로 갸릉갸릉 한다. 그 신호를 알아들을 수 없지만 난 그들이 말을 건네는 거로 생각한다. 새가 창문에서 지저귀듯, 갓난아이가 시도 때도 없이 옹알이하듯…. 


가끔은 야생이 짙은 소리가 들릴 때는 놀라기도 하지만 눈앞에서 배를 뒤집고 잠든 모습을 보면 웃어넘길 수 있는 소리다. 고양이를 향한 내 사랑이 그리 짙지도 치열하지도 않을지 모른다. 


내가 그들에게 다가가는 게 아니라 그들이 나에게 곁을 준 까닭이다. 안 보이게 숨지 않고 딱 보일 만큼의 거리에서 혼자서 살아가기를 원하는 아이들, 그 세계가 마음에 든다. 고양이는 한 번 가까워졌다 싶은 사람에게 일관되게 충실하다. 그렇게 마음을 준 사람을 한없이 따르는 세계를 동경하는지도 모르겠다. 


오늘은 뭉치가 의자를 차지하고 누웠다. 옆에 다가가 쭈그려 앉아 보지만 눈을 뜨더니 다시 감는다. 얼마나 밤을 가르고 다녔는지 고개를 가누지 못하는 어이없는 느긋함에 웃고 만다. 


괴롭히지 않으면서도 적당히 방관하고, 그러나 사람에게 돌봄 받는 고양이답다. 발가락에서 힘을 다 빼고 누워서 간혹 앞발을 까딱이며 잠에 취해 늘어져 있다. 그 모습이 사람의 마음에 여유를 들이게 한다. 
높아진 하늘에 구름 한 점 흘러가며 가을이 무르익고 나무들이 단풍이 들 때 그 아래 풀밭에서 나는 뭉치와 바람을 맞고 싶다. 공원 의자에서 오늘처럼 우연히 만나는 날에.

 

 

김지민 수필가

저작권자 © 완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