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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답장이라도 괜찮았으면

#나김지현
#완도가생각날때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23.07.27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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곱게 모아진 편지봉투들을 보면 떠오르는 종이 안의 이야기들. 그중 잊을 수 없는 것은 너의 편지야. 내가 손편지를 좋아한다는 말에 그동안 하고 싶던 말들을 꼭꼭 담아낸 내용들을 보면 그때 네 마음이 얼마나 따듯했는지 느껴지고는 해.


갓 고등학교에 입학해서 갑자기 새로운 사람들과 만날 일들이 많아지고, 생활이 180도 변하면서 모든 것이 버거웠던 시기라서 그랬던 건지 사실 네 첫인상은 기억나지 않아. 아마 친구의 친구 정도? 그럼에도 친구들과 함께 모이며 너와 즐거운 시간을 보냈던 건 기억나. 고등학생에겐 소중한 점심시간에 도서부 활동을 하는 나를 보러 온다고 매주 수요일이면 도서관에 찾아왔던 기억. 시험이 끝나면 친구들과 피시방에 가 팀을 나눌 때 잘하지도 못하는 나와 같이 하겠다던 기억. 3학년 선배에게 곤란한 부탁을 받자 함께 도와주려고 나서던 기억. 너와 내가 닮았다며 서로 별명을 붙여주곤 했던 기억들. 네 덕분에 고역 같을지도 모르는 고등학교 생활에 조금은 벚꽃이 날렸던 것 같애.


처음 봤을 때부터 내가 계속 머릿속에 남았다던 편지 속 글에서는 늘 나를 웃게 만들던 너의 따듯한 웃음이 담겨있었어. 누군가로부터 이렇게 커다란 애정을 받을 자격이 있을까 생각이 들 정도로 따뜻한 마음과 함께. 그리고 이어지는 뒷장에는 누구에게도 꺼내지 못할 네 깊은 마음속 이야기들을 담아주었지. 나는 편지에 보답하고자 또 다른 편지를 썼지만 너만큼 애정을 담진 못한 것 같애. 그땐 누구에게도 애정을 줄 수 없던 시기이니깐. 어쩌면 나는 그 시절에 아팠나봐. 그래서 밖으로 보내야 할 노력을 안으로 부어도 밑 빠진 독처럼 계속해서 새어나갔으니깐. 그때의 난 정말 못됐나보다.


세상에 나와보니 누군가로부터 맹목적으로 애정을 받는다는 것은 정말 소중하더라. 그때마다 너의 그 애정 어린 글들과 웃음들이 떠오르고는 해. 


하지만 너의 그 깊은 마음에 비해 함께 했던 시간이 짧았던 우리는 깔끔한 매듭을 짓지 못했어. 그것은 어린 나의 잘못이지. 받아본 적 없는 그 애정을 어떻게 흡수해야 할지, 어떻게 되돌려줘야 할지,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 할지 몰랐으니깐. 그래서 앞으로 인사하며 지내자는 우리의 약속에도 불구하고 인사를 되돌려주지 못했나 봐.


 그때의 나는 너와 다른 마음이었을지도 몰라. 어쩌면 단지 누군가 나를 좋아한다는 사실 때문에 너에게 눈길이 갔던 걸지도. 하지만 나는 너와의 시간을 통해 많은 것을 배웠어. 내가 끌리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상대방을 향한 나의 마음이 어떤 형태인지, 애정을 어떻게 표현해야 전달이 되는지. 어쩌면 너에게는 이 말들이 상처가 될 수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감사 편지라는 것을 알아줬으면 좋겠어. 


네가 이 편지를 받아보고 갈기갈기 찢어버릴지, 불태워버릴지도, 소중하게 보관할지 예상조차 가지 않아. 그만큼 우리가 멀어졌다는 증거겠지. 하지만 세상에는 다른 길로 갈라져야만이 성장하는 관계 역시 있으니깐. 더 이상 그때의 너를 창피해 하지도, 나를 피하지도 않았으면 좋겠다. 그 편이 네게는 더 좋을테니깐. 어린 너의 소중한 마음을 곱게 담아 다시 편지봉투 안에 보관할게. 그리고 네가 그리워지는 때가 돌아오면 다시 꺼내 읽어볼게. 언젠가 너에게 이 글이 닿았으면 하는 마음을 담아 글을 마칠게.

 

어떤 날은 내가 사다리를 타고 
그 별로 올라가곤 했다
내가 시인의 사고방식으로 사랑을 한다고 
넌 불평을 했다
희망이 없는 날을 견디기 위해서라고 
난 다만 말을 하고 싶었다
어떤 날은 그리움이 너무 커서 
신문처럼 접을 수도 없었다
누가 그걸 옛 수첩에다 적어 놓은 것일까
그 지붕 위의 별들처럼 어떤 것이 그리울수록 
그리운 만큼 거리를 갖고 
그냥 바라봐야 한다는 걸

류시화 <첫사랑>中

 

해당 글은 나카야마 가호의 <흰 장미의 심연까지>라는 소설을 읽고 써낸 글입니다. 서점에서 친구의 추천을 받았던 작가의 신간을 발견하고는 펼쳐본 주인공에게 다가간 작가. 그렇게 드라마처럼 만남을 시작한 두 사람은 서로 전혀 다른 삶을 가지고 있습니다. 불안정하고 4년간 새로운 글을 써내지 못하고 암울한 어린 시절을 가지고 있는 작가와 평범한 가정에서 평범한 남자와 결혼을 생각하던 주인공. 두 사람의 사랑은 독과도 같음을 당사자들조차 이해하고 있지만 끊어내지 못합니다. 그들이 함께하기까지 수많은 피와 눈물을 내보냈지만 결국 함께하게 되지요. 덥고 나른한 여름날 차가운 겨울의 공기가 느껴지는 책을 읽고 싶은 분들에게 추천드립니다. 

 


김지현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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