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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예방, 괜찮은가?

강정희 강진대구중 교사
著 다정한 교실에서 20,000시간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23.07.13 15:16
  • 수정 2023.07.14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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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리스트 주>이 지면에 내가 쓰는 글이 연재물은 아니지만, 지난 5월 4일 자 ‘선생님이라는 이름-아이들은 누구에게 배우는가?’에 이어 더 하고픈 말이 있어 조심스럽게 두어 단락 더해본다.

 

장면 하나, 지금으로부터 약 40년 전 초임 학교에서 있었던 일이다. 동기 교사가 종이 기안문에 결재를 맡기 위해 교감 책상 앞으로 갔다. 
  “선생님, 이거…” 
순간 결재판이 교무실 바닥에 내팽개쳐졌다. 그리고 이런 말이 들려왔다. 


“○선생, 내가 선생인가? 아무리 신규라지만 직위 직책도 모르다니…” 
대학을 졸업한 지 며칠 지나지 않은 우리는 그때, 교감과 교장은 선생님이 아니라는 사실을 미처 알지 못했다. 학교에는 모두 아이들을 가르치는 사람은 모두 선생님인 줄 알았다. 선생님이라고 불리는 걸 모욕으로 느낀 그는 그때 승진을 해서 이제 막 교감이 된 터였다.


장면 둘, 그로부터 40년쯤이 지난 어느 2월 말 일이다. 학교를 옮겨가게 된 교장이 교장실에서 짐을 싸고 있다. 교장은 종이 상자에 물건들을 담으며 말했다. 
“내 꿈은 원래 선생이 아니었어요. 내 꿈은 더 컸었죠.”
정년을 앞두고 학교 이동을 하는 상황에서 얼마든지 할 수 있는 말이었다. 


하지만 꿈의 크기는 무엇으로 잴 수 있는 걸까? 월급이나 연봉, 사무실이나 책상이나 의자의 크기, 관리(?)하는 직원의 숫자, 사용하는 예산의 규모… 같은 것일까? 약간 회한이 담긴 음성으로 말한 그 자리에서 조금은 숙연해져야 할 터인데, 나는 슬그머니 의문이 드는 것이었다. 
40여 년을 선생님이라는 이름으로 아이들 곁에서 살아온 나의 이력 역시 작고 하찮은 것인가? 더 큰 꿈을 가졌어야 하는가?
사실 지금 학교와 교육계의 분위기는 이런 주제를 논의한다는 것마저 호사스러운 일이다. 극한직업이 된 교직, 교직을 떠나는 교사가 화제가 된 지 오래다. 


교사는 교육과정에 정해진 수업과 업무포털의 온갖 행정 서류를 오류 없이 해내기만 하면 된다고 자조적으로 말하곤 한다. 학생에게 학교는 필요한 과정을 이수하고 이를 증명해 주는 기능을 하는 기관일 뿐이라고도 말한다. 교사와 학생이 친밀하고 특별한 관계를 맺을 필요도 없고 가능한 객관적인 거리를 두고 지내는 것이 좋다고도 한다.


보충수업 시간에 아이들과 나눈 대화이다.
나: 독해 문제 풀자. 문학을 먼저 할까, 비문학을 먼저 할까?
아이들: 저는 상관없어요.


상관이 없단다. 무엇을 먼저 해도 ‘괜찮다’는 의미인 줄은 나도 안다. 그런데 ‘상관이 없다’의 사전적 의미는 ‘서로 관련, 관계, 연관이 없다’이다. 아이의 대답에 뭐라 말을 잇지 못하고 망연하게 생각에 잠겨있는 나를 아이는 멀뚱히 바라본다. 


우리는 언어를 도구로 삼아 사고하고,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는 우리의 사고를 규정한다. 학교에서 많이 사용하는 단어 ‘학교○○ 예방’의 의미를 새겨본다. 학교 교육과 무관한 사람은 아무도 없기에 의미 있는 일이라 여긴다. 학교는 지적 정서적으로 예민한 성장기를 지나는 유소년과 청소년이 사는 곳이니 모든 면에서 깊이 배려한 최상의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 


인터넷 검색창에 ‘학교’를 쓰면 상위 몇 순위에 ‘학교○○’이 뜬다. 
이는 어느새 한 단어로 합성되어, 보통명사처럼 당연하고도 빈번하게 사용된다. ‘학교’라고, 누군가 말을 하면, 듣는 이는 그에 이어질 단어로 ‘○○’을 떠올릴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양순 파열음 ㅍ으로 시작하는 2음절의 이 단어를 듣기만 해도, 아니 떠올리기만 해도 우리는 뇌리에서 신경 세포가 어그러지는 부정적 자극을 받는다. 다양한 매체의 발달로 인해 아름답지 못한 수많은 이미지와 사례도 함께 떠오른다.


그리하여 학교마다 ‘학교○○ 예방 교육’을 한다. ‘학교○○예방’이라고 쓴 현수막을 교문과 교실에 걸고 표어 짓기, 포스터 그리기, 6행시 짓기를 했으리라. 행사가 끝나면 그 글자가 잘 보이도록 현수막을 양쪽에서 붙들고 기념사진도 찍었으리라. 표어 당선작은 현수막으로 제작하여 교문에 걸거나 전광판에 명멸하는 글자로 송출하여 널리 알린다. 우리 학교에서도 도서실에 모여 ‘학교○○ 예방 교육’을 여러 번 했다. 


교육 뉴스를 하나 열어서 읽어본다. 학교○○대책심의위원회에 관한 것인데 길지 않은 기사에 ○○이라는 단어가 수십 번 이상 반복해서 나온다. 교육청에서 발행한 책자 원고를 읽다가 붉은 볼펜을 들고 ○○ 단어에 동그라미 표시를 해본다. 두세 줄마다 한 번씩 그 단어는 나온다. 온통 붉은 표시가 가득하다. 이런 뉴스 기사와 원고야말로 읽는 이에게 ○○적으로 ○○을 주입하는 격이다.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는 미국의 인지언어학자 조지 레이코프의 저서이다. ‘생각하지 마’라는 부정 명령어가 있음에도 코끼리라는 단어를 들은 인간은 ‘코끼리만’ 생각한단다. 언어의 힘은 강력하다. 


인간의 뇌에는 부정하고 지우는 기능이 없기에 귀로 듣는 단어를 그대로 인지한다. 흰곰실험과 흰곰의 법칙도 마찬가지다. 


○○을 예방한다고 하면서 ○○을 각인시키고 있는 격이다. 친구 사랑, 좋은 관계, 우정 만세…, 들으면 마음이 순해지는 긍정어들을 모으고 모아서 손글씨도 꾸미고, 4행시와 표어도 짓고, 포스터도 그려서 다정하고 몰랑몰랑한 언어환경을 우리 아이들에게 만들어줄 수는 없을까?

 

 

 

강정희 강진대구중 교사
著 다정한 교실에서 20,000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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