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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서도는 완도 땅이요, 비양도는 제주 땅이라

유래가 같은 섬, 서도(瑞島)
지역 관광테마 베끼기 수준

향토사학의 올바른 견해가
탄탄한 지역관광 견인 역할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23.07.13 14:48
  • 수정 2023.08.10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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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도(瑞島). 상서로운 섬이다. 게다가 아름다움까지 더하니 여서(麗瑞)다. 그런데, 이 아름답고 신성한 땅 여서도 이름표에 어느 누가 ‘고려시대의 화산섬’이라는 누명을 덧씌웠을까. 


완도군지 여서도의 유래를 보면 흥미로운 대목이 나온다. 고려 목종 10년, 탐라 근해에 일주일 동안 대지진이 발생한다. 천지가 진동하고 지축이 뒤틀리면서 화산이 폭발하더니, 이내 바닷속에서 큰 산 하나가 불쑥 솟아난다. 완도군 최남단 청산면 남쪽의 여서도에 가면 마치 정설처럼 붙여진 이야기다.


이와 흡사한 내용이 제주도에도 있다. 지역의 관광자료에 근거해서 볼 때 신기하게도 완도의 여서도와 제주의 비양도가 형성되는 시기를 서로 비슷하게 이야기한다. 도대체 무슨 조화일까? 


세종실록지리지와 신증동국여지승람 제주도 편에 보면 제주 서쪽으로 '비양도(飛揚島)'라는 섬이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신증동국여지승람 제주목 산천조에 “비양섬은 제주목 서쪽 80리에 있다. 물길은 5리이고, 양목장이 있다”고 기록되었다. 여지도서의 옛 기록에 ‘상서로운 산’이라는 뜻으로 서산(瑞山)이라고도 한다.


세종실록지리지는 조선 초기의 지리서다. 한국 역사상 세 번째로 만든 지리지인데, 이름 그대로 세종실록에 실려 있는 전국지리지로서 부록이 아닌 독자적인 형태로 만들어졌다. 세종 6년, 1424년에 세종은 변계량에게 우리나라 지리지를 편찬할 것을 명한다. 그래서 경상도지리지를 시작으로 1432년에 이르러 신찬팔도지리지가 완성된다.

경기도 41개, 충청도 55개, 경상도 66개, 전라도 56개, 황해도 24개, 강원도 24개, 평안도 47개, 함길도 21개 지역에 대한 기록이다. 각 고을의 공물, 조세, 군역 등 국가가 징발할 수 있는 모든 요소를 총정리 해 놓았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은 조선 성종 당시의 지리서다. 정확히는 성종 때 간행된 것은 동국여지승람이고 이를 다시 증보, 개정한 것이 중종 때 간행된 신증동국여지승람이다. 여기에 각 도의 지리를 수록했고, 기존 지리지와 크게 달라진 것은 토지나 군사 보다 인물의 비중을 다뤘다. 역대 지리서 중 가장 종합적인 지리서로 꼽히며 정치사, 제도사는 물론 향토사 연구에도 중요한 자료이다. 


거기에는 제주섬 비양도의 기록이 있다. 고려 목종 5년, 6월에 산이 바다 가운데에 솟아 나왔다. 산에 네 구멍이 뚫리어 붉은 물이 솟아 나와 닷새 만에 그쳤는데, 그 물이 모두 엉기어 기와 돌이 되었다. 


목종 10년, 다시 상서로운 산이 바다 가운데에 솟아 나왔다. 태학박사 전공지를 보내어 가서 보았다. 사람들이 말하기를 “산이 처음 나올 때 구름과 안개가 자욱하고 지동이 우렛소리 같아 무릇 일곱 날 아침과 밤 만에 비로소 개였다. 산의 높이가 백여 길이나 되고 주위가 40여 리나 되는데, 초목이 없고 연기가 그 위에 덮이고 바라보기에 유황 연기 같아서 사람들이 두려워서 감히 가까이 가지 못했다. 공지가 친히 산 밑에 이르러 그 모양을 그리어 바쳤다”고 전한다.


탐라지에도 이 섬을 비양도라고 표기했는데, "제주성 서쪽 10리에 있다. 바닷길로 5리에 있고, 둘레는 10리이다. 화살대가 많다"고 기록했다. 고지도첩의 탐라전도에도 비양도라 불렀고, 서쪽에는 고려시대 화산폭발로 생겼다는 서산(瑞山)이 그려져 있다고. 제주삼읍도총지도에서도 마찬가지다. 일명서산(一名瑞山)이라 하여 서산을 비양도에 비정하기도 했다. 그 외 해동지도의 제주삼현 편, 영주산 대총도, 대동여지도, 조선지형도, 남환박물 등에도 같은 내용을 수록했다.


사람들의 생각은 다양하고 각자의 의견이 분분하다. 관점이 서로 다르고 판단이 엇갈린다. 그래서 사람들은 근거 자료를 만들고 수집해서 정확한 기준을 정하고 그것을 지표로 삼는 것 같다. 

어느 날, 여서도 섬 둘레길 표지판에 자랑스럽게 그 이야기가 새겨졌다. 한때나마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다. 여서도는 선사시대 유적이 발굴돼 학계에서도 놀랄만한 상황이 연출되었음에도 그 이야기로 인해 고려시대의 화산섬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급조한 관광정책으로 인한 지자체 간 베끼기 전략을 사용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우리나라 관광기획이 지역에 맞는 스토리를 입히는게 대세라지만, 그냥 웃어 넘기기엔 관광정책의 허점이 너무 드러난 게 아닌가 싶다.


재미로 풀어가려는 지역의 이야기 하나 때문에 중요한 역사적 근거 자료가 신빙성을 잃을 수 있다. 그러면 지역의 가치가 떨어지는 건 시간문제, 지역 경제에도 큰 타격을 미칠 수 있다. 이번 장수도와 관련한 영토분쟁에 휘말린 것도 마찬가지다. 지역의 역사적 사실에 정확성이 떨어진다면 속수무책 당할 수밖에 없는 근거를 우리 스스로 만들어 주는 것이리라.


아름답고 상서로운 섬, 여서도! 선사시대부터 인류가 살았던 곳. 그때는 분명 다른 명칭이 사용됐을 것이지만, 망망한 바다에 솟은 봉우리는 누가 보더라도 신령스런 땅으로 여겼을 법하다. 그래서 그 이름도 여서도라. 이러하니, 완도의 여서도가 제주도의 비양도로 둔갑할 일은 추호도 없는 일 아닌가. 


정지승 문화예술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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