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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먼 나라에서 너의 영혼이 여기까지 온 이유는

신복남의 ‘어젯밤 어느 별이 내려왔을까?’

  • 신복남 기자 sbbn2000@hanmail.net
  • 입력 2023.06.22 15:25
  • 수정 2023.06.23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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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 내게로 왔다. 뜰 안에 그들이 와서 주인을 부르는 것이다. 꽃과 나무는 그 자리에 평생토록 머무는 것이 아니라 꽃씨 하나만으로 온갖 지구 위에서 핀다. 옷깃에 우연히 묻혀 집에 들어왔다. 


뭇 생명들 틈에서 나와 대면하는 시간은 길지도 짧지도 않다. 순간들이 모여 하나의 세월이 되듯 씨앗 하나는 길 위에서 끝없이 걷는다. 지구 반대편에서 어떻게 여기까지 왔을까. 


대답은 간단하다. 생명은 시공간을 초월할 수 있다. 내가 사랑하기 이전에 이미 내 속에 와있다. 꽃씨가 내 뜰 안에 와있다는 것도 내 의지와 관계없이 꽃씨가 떨어져 꽃을 피운다. 우연히 정원수 몇 그루 심어 놓았는데 이들이 건강하게 잘 자라 꽃밭을 크게 만들라고 한다. 작물은 주인의 발소리만 듣고도 더 건강하게 자란다. 


씨앗은 생명이 잉태하기 이전 영혼이라는 정보를 갖고 있다. 그것이 어느 자리에 싹을 틔우려면 천만번 경우의 수를 갖고 태어난다. 그것도 자라면서 죽을 확률이 더 높다. 내 뜰 안에 화초 하나라도 태초의 보살핌이 없이 살아남을 수가 없다. 지구 위에 물의 양이 태초부터 그대로 유지 할 수 있는 힘은 어디에서 나올까. 


무릇 생명의 씨앗들이 물질의 양을 보듬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에키네시아는 북아메리카 원산의 국화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풀이다. 줄기에 어긋나는 잎은 끝이 뾰족한 달걀형이며 7~10월경에 피는 꽃은 연한 자주색이나 분홍빛으로 피고 꽃 중심부의 반구형 통꽃은 자갈색으로 윤기가 있어 반짝이며 꽃잎처럼 보인다. 특히 더위에 잘 견딘다. 요즘 화단에 많이 심는다. 꽃보다 마음이 먼저 와서 피는 꽃. 그 먼 나라에서 왔을 이유를 알겠다. 


그 옛날에 배고픔도 모르고 꽃씨를 움켜잡았던 것은 우리 영혼을 키우기 위함이다. 지금도 길 위에 떨어지는 꽃씨를 날마다 줍고 있는지도 모른다. 내 주위에 꽃씨는 하늘 높게 채우고 있다. 보이지 않는 꽃씨는 나의 발걸음을 재촉한다. 


너는 무게 달아 지상에서 꽃이 되었을 때 최초의 만남이었다. 아직도 만나지 못한 꽃들이 많다. 


이들이 내 안에서 향기 있는 꽃이 되기를 바란다. 소망이 내 안에서 바로 서기 위해서 꽃씨 하나 평생 간직해야 할 일이다. 자연을 정직하게 품기 위해선 끊임없이 사유해야 한다. 


무작정 기다리지 않고 간절히 찾아다니는 꽃씨처럼 유랑자가 되어도 좋으리. 지상에서 첫입맞춤이 그것이 너의 이름이다. 생명은 간단하면서도 지속적이다. 


끊임없이 찾아다니는 힘은 반복된 행위에서 나온다. 지구 반대에서 걸어온 이 꽃은 끝끝내 살아남기 위해 넘어지지 않았다. 씨앗들이 이어지는 세상은 믿음의 세계다.

이제 비로소 흙냄새가 생명 그 자체라는 걸.

 

신복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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