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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모른다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23.06.01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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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의 시간이 지났는지
긴 잠을 자고
일어난 것만 같습니다.

조용히 살고 싶다는
생각이 우울증이 되는 것인지
자꾸만 까칠해지는
자신을 봅니다.
장미도 아니면서
가시가 마음에 돋치는 듯 하고
이러다 섬이 되는 건 아닌지.

갈 곳  잃어버려
다시금 나를 열어
징검다리를 놓아 봅니다.

 

부처님 오시는 날 비도 함께 왔다. 죽을 시간 없이 바빴던 나날 위로 차분하게 비가 왔다.


저녁 즈음에 고향에 사는 오빠로부터 전화가 왔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안부는 침묵 깊이 만큼 아득하다. 오빠가 수상하다. 자신의 목숨 보다 더 소중히 여기는 땅을 모조리 팔고 쉬고 싶단다. 호흡이 진심이다. 외로워 지쳤을까. 나에게는 따뜻하고 다정한 오빠다. 일벌레, 일중독, 땅부자 오빠에게 걸맞는 별명과 함께 땅땅거리며 살 것이다! 호탕하게 웃던 자랑스러운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사랑하는 오빠다. 


무인도에 갔다놔도 거뜬히 살고도 남을 멋진 사나이,온 동네가 인정하는 불굴의 오빠다. 
근면의 근본이 되는 몸과 정신으로 심고 가꾸고 거두는데 목표를 두어 입는 거 먹는 거 노는 거 몽땅 반납하고 세상 남부러울 것 없이 사는 사람이다. 그런 오빠였는데 땅 다 팔아도 서운하지 않겠느냐? 내게 묻는다.


번아웃이구나. 오빠는 아버지의 모든 것이다. 땅은 오빠의 모든 것이고. 
갑자기 변하면 안 돼는데...
아버지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던 그 시간이 그리웠는지 두런두런 내리는 빗소리가 오빠의 목소리와  닮아 있었다. "이제 와서 말하는데 아버님 살아계실 때 그러시더라. 나도 애들 귀하게 여기고 때리지 않는데 너는 뭐라고 동생들 때리느냐."
"나는 막내야, 동네 사람들이 누구 동생 이러쿵저러쿵 하는 거 못견디게 듣기 싫었다. 그래서 아버님이 동생들 관리 하지 않으시길래 내가 동생들 잡았다."

"선숙이는 때리면 악을 쓰며 "죽여라 소리치고 덤벼 더 맞았다."
"그런데 인숙이 고것은 약아서 오빠 잘못했어. 싹싹빌어 덜 맞았지."
오빠가 깊은 속을 끄집에 냈다.

 

"막내 너도 마음 고생 많았지만 오빠도 이루 말할 수 없이 죽살나게 마음고생했다." 아버지는 오빠바라기였다. 아들이라는 이유로만으로 오빠는 기쁨이었다. 오빠는 엄마의 꿈이기도 하다.
"오빠는 아버지와 엄마의 사랑 독차지 했잖아. 공부하라 할 때 도망 다니지 말고 공부 하지 그랬어."
"오빠는 남자라고 가르치려 했잖아"


"그래 아버님과 어머님의 사랑 많이 받았지. 그런데 어머님 돌아기시니 나는 이 세상에 그 무엇도 아니더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박탈감으로 힘들었을 오빠의 쓸쓸함이 느껴졌다.
"새엄마가 오빠를 질투했어. 그래도 새엄마는 아버지 하나 보고 우리집에 오셔서 호미자루 닳듯이 고생만 하셨지. 아버지만을 진정으로 사랑하셨어. 가난한 집에 당신 자식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남의 자식 떠맡으며 함께  산다는 건 아버지를 많이도 사랑하신 증거가 돼." 


오빠가 엄마 떠올리면 서럽던 시절이 솟구치는지 목소리가 커졌다.
"아주 말도 마라 아버님 살아계실 때, 아버님과 잠시 이야기라도 나눌라치면 재산을 빼돌리는 사람 취급하고 쌀 퍼갔다 뭐 없었졌다. 억지소리에 집을 확, 불지르 싶은 마음 꾹, 누르고 살았다. 오로지 아버님 보고 참고 참았다. 얼마나 참았는지 너는 모른다"

 

오빠는 숨을 깊이 내쉬며 말을 이어갔다.
"집에 빚을 두 번이나 다 갚고 내가 송아지도 사줬는데 소 팔 때 나에게 고맙다. 한 마디 안했어도 이렇다저렇다 암말 안했다. 그것 뿐이겄냐" 결혼하고 하도 억지소리 하길래 고향을 아주 가지 않으려했다.


"멀리 떨어져 있는데도 무엇을 훔쳤갔다는 생사람 잡을 때 천불이 올라와 아주 그냥 쫓아가 끝내고 싶었다."
"아버님 보고 참았다. 아버님 보고" "집을 확,불지러 버릴 분노, 말로 다 못한다."
아버지에게 고백하는 넋두리 같았다.


"너도 알지. 나 방위 받을 때 집에 오면 간장이랑 고추장에 찍어 먹으라 밥을 줘 하도 먹을 게 없어서 김을 사다 먹었는데 당신이 감춰둔 김 훔쳐 먹었다" 
집을 발칵 뒤집어 놓더니 당신 김은 그대로 있는 것을 확인 하고도 나에게는 미안하다는 사과도 안했다. 너는 모른다. 아무도 내마음 모른다. 오빠의 지난 상처가 흩어지는 것 같았다.


1년 농사의 시작인 못자리가 잘못 돼 모두 망친 줄 알고 300판을 주문하고 모판 근처에 아예 안 갔단다. 그 애탔던 심정을 누군가와 나누고 싶은 오빠다. 감정을 주체 못하더니 이번에는 감당 못하는 밑바닥 감정 위로 받고 싶어 다시 또 나를 찾았던 것이다. 하늘에서는 쉼없이 오월의 푸른비가 허한 오빠의 마음을 위로하듯 토닥였다.
당신은 지금 자신의 전부를 내려놓고 어디로 가려하는가.

 

 

이의숙 필수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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